일본 ‘동성 파트너십 제도’ 도입 후 “우리 삶의 변화는요?”
일본 지자체 255곳 동성 파트너십 인정
1심 법원 “동성혼 인정하라” 판결도
일본 동성혼 법제화 찬성 64%, 한국 동성혼 법제화 찬성 38%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성소수자는 국가에) 마이너스다. 보기도 싫다. 옆집에 사는 것도 싫다.”
지난 3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비서관 아라이 마사요시가 기자들과 대화하면서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튿날 기시다 총리는 “정권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언어도단”이라며 아라이 비서관을 경질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우리보다 앞서 성소수자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했다. 255개 시 단위 지자체(1월10일 기준)에 파트너십 제도가 있다. 파트너십 제도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동성커플을 승인하고 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병원에서 가족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등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파트너십 등록 후 동거 중인 일본인 세 커플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성소수자들 사정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의) 솔직한 경험담이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뜻을 전하며 취재에 응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쓰야마 고헤이(40)는 9세 무렵 같은 학교 남자아이를 좋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히라타 가네시게(36)는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교 졸업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11년 성소수자 모임에서 알게 됐고 11년째 함께 살고 있다. 2021년 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파트너십 등록을 마쳤고 지난 연말에는 지인들의 따뜻한 축복 속에 결혼식도 올렸다.
“가족은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이었어요. 저희는 아직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어요.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지금까지 길러준 시간을 부정당했다는 절망감을 부모님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가쓰야마는 경찰관, 히라타는 소방관이었다. 두 사람은 파트너십 선서 이후 ‘있는 그대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각각 16년, 11년간 이어온 공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현재는 각각 LGBT 활동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제2의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KANE and KOTFE’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별다르지 않은 동성커플의 삶을 공개하고 있다. 가쓰야마는 “LGBT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며 당신 주변 어느 장소든 당연하게 LGBT가 있다는 사실만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유튜브 일상 브이로그를 운영한다든가 미디어에 출연해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전해요. 기업이나 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LGBT 관련 강연도 하고 차별 반대 메시지를 담은 곡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도쿄도는 2015년부터 세타가야구와 시부야구를 시작으로 동성 파트너십 제도 법안을 승인했다. 2022년에는 도쿄도 전체가 이 제도를 승인하면서 국내 언론도 주목한 바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파트너십 제도는 정부가 인정하는 법적 혼인 제도와는 다르다. 법률상 가족이 아니기에 상속을 받거나 수술 동의서를 쓸 권한이 없다. 아직 국민적 인식이 높지 않아 일부 병원에서 ‘법률상 가족이 아니면 환자 면회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 도리가 없다. 가쓰야마에 따르면 등록증을 보여주면 면회를 허락하는 병원도 있지만 여러모로 불안감은 존재한다.
가쓰야마는 아직 아쉬움은 있지만, 파트너십 도입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내 주변에는 ‘없겠지’에서, ‘있을 수도 있지’라는 일반인의 인식 변화는 그들에게 큰 의미라는 것이다.
“파트너십 제도가 법적인 효력은 거의 없다지만 내가 사는 지자체가 ‘우리가 가족임을 인정해주고 있다’라든가 ‘뭔가 곤란할 때 지자체에 상담하면 도와줄지도 모른다’라는 안도감을 줍니다. 2015년 이후 복리후생 등에서 동성 파트너도 가족과 같은 대우를 해주는 기업도 늘고 있어요.”
가쓰야마는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밝히며 국내 성소수자들에게 “결코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건넸다.
“성 정체성 문제는 본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전 세계에서 당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같은 고민을 한 우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간노 다카후미(34)와 이가라시 하야토(34) 커플은 가족에게 인정받은, 비교적 행복한 LGBT 커플이다. 두 사람은 간호사라는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 2018년에는 양가 부모님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부터 걷기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이가라시가 어머니에게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너를 낳지 말아야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너무 슬펐죠. 그러나 후회는 없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네 인생이니 가슴 펴고 살아라. 아빠도 엄마도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두 사람은 결혼식 후 살림을 합쳤고 지난해 거주하고 있는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파트너십을 등록했다.
“지금까지는 친구 관계라며 ‘룸 셰어’ 모양새로 집을 빌렸어요. 일본에서는 남자끼리 집을 얻으면 임대를 거부하는 집주인이 많아요. 지금은 우리가 파트너임이 증명되면서 그런 불편은 없어졌죠.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성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두 사람은 간호사인 만큼 에이즈나 원숭이두창같이 동성애를 무조건 질병과 연관 짓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항해 올바른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편견이나 차별을 없애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또 다른 목표는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젊은 성소수자들의 자살은 일본의 사회적 문제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어릴 때부터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확산시키고 관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회사원 후지모토 히사시(40)와 자영업(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는 다테이시 마유코(33)는 생물학적 여성 커플이지만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거부하는 ‘논바이너리’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살롱)에서 처음 만났다. 교제에 적극성을 띤 사람은 다테이시였다.
“라인(LINE·글로벌 메신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대화를 하다 서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어요. 마유가 저에게 ‘연애 감정이 있다’고 고백해 깜짝 놀라면서도 기뻤던 기억이 나네요. 마유는 도쿄에, 저는 오키나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뒤 크리스마스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만났고 그날부터 교제가 시작됐죠.”
두 사람은 ‘항상 내 옆에서 웃어줬으면 좋겠다’는 공통된 마음으로 원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현재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다테이시가 한 달에 2~3주가량 오키나와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SNS 라이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논바이너리 커플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에요. 논바이너리도 정정당당하게 자기 행복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에 저희 같은 상황의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희 뜻이 전달되고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다들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두 사람은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둘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번 생에 이루고 싶다. 후지모토는 다테이시와 함께 생물학적 여성 논바이너리 그룹을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 꿈이다.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40대의 구니미 료스케는 공립학교 교사이자 LGBT 단체 ‘니지이로 홋카이도’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에 참아왔던 일본의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최근 몇년간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홋카이도현을 상대로 20년째 동거 중인 파트너와의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법률적 가족임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2019년부터 소송을 진행한 그는 2021년 3월 ‘동성 간 혼인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법 아래 평등을 정한 일본 헌법 제14조를 위반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주고 있지만 일본 정부(자민당 정권)는 동성결혼을 승인하는 데 부정적입니다. 소송은 현재 삿포로 고등법원에서 심의되고 있고 내년 중에는 판결이 나올 듯합니다. 고등법원 판결은 아마 전국 최초가 될 것 같아요. 좋은 판결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지난 13일 일본 교도통신은 ‘동성혼 제도 인정 여부’에 관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64%가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나이대별로 나눠보면 젊은층(30대 이하)의 81.3%가 동성혼 인정 찬성 견해를 표했다. 장년층(60대 이상)의 동성혼 인정 찬성 비율은 51.4%였다.
2013년 10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여성 A씨가 “장기를 기증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40년간 동거해온 동성 친구가 암 투병을 시작하자 가족이 아닌 A씨는 면회도 할 수 없었고 사망한 후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자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투신한 것이다. 이웃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였다.
국내의 경우 동성결혼 법제화에 넘어야 할 산은 높아만 보인다. 2021년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조사에서 찬성 38%, 반대 52%, 의견 유보 11%로 나타났다. 2019년 동일 설문조사와 비교하면 찬성은 3%포인트 늘고 반대는 4%포인트 줄어 찬반 격차가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높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