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잔불에 고구마·감자? 오렌지 입은 브라우니 어때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11) 숯불 베이킹 디저트
브라우니 반죽에 오렌지 즙과 제스트를 첨가하거나 오렌지 껍질로 만든 리큐어인 쿠앵트로까지 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맛이 완성된다. |
미국의 요리 작가 M F K 피셔는 미국 대공황 시기 힘든 경제적 상황 속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양질의 식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의 고민과 부족함에서 탄생한 창의적인 발상을 담아낸 에세이가 <늑대를 요리하는 법>이다. 늑대는 배고픔과 인생의 고난을 나타내는데, 어떤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책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가끔 다시 집어 들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제대로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음식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파스타를 삶을 때면 이왕 물을 끓인 김에 두 끼 분량을 삶아두고, 오븐을 한 번 켜면 반드시 그 안을 가득 채운다. 오븐 요리를 한다면 고기 옆에 감자를 깔아서 곁들이고, 정 없으면 사과라도 같이 구워서 디저트로 먹는다는 식이다. 가스불이 켜져 있는 동안 그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자세다.
물자가 드문 시절에는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마솥에 밥을 하는 김에 뜸을 들이면서 그 열기에 콩가루를 입힌 고추를 찐다. 온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덕 오븐의 열기가 식기 전에 채소며 남은 반죽을 이것저것 섞어서 구워 플랫브레드를 만든다. 알뜰 능력치가 1포인트 올랐다는 뿌듯함은 덤이다.
■ 꺼진 불에서 요리하기
가져온 물건, 구할 수 있는 물자만으로 밥을 하는 캠핑에서는 어떤 알뜰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캠핑의 알뜰함은 주방의 형태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다. 부탄가스나 이소가스만으로 요리한다면 조리 과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켜는 순간 열이 발생하고 끄는 순간 사라진다는 점은 가정에 있는 스토브와 정확히 동일하다. 여기서 오랜 시간 곰탕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어느 순간 불꽃이 잦아들어 부탄가스를 갈아줘야 할 것이다. 그러니 파스타와 브로콜리를 같이 삶는 것 정도가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작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멍’이나 할까 싶어 일단 장작불을 켜 놓으면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진다. 누가 뭐래도 ‘먹고잽이’의 민족. 놀고 있는 불을 그냥 놔두질 못하는 것이다. 장작과 숯은 일단 불을 붙이고 나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재가 되어서도 조용히 숨은 열기를 뿜어낸다. 아예 하룻밤 묵은 다음날 치우는 것이 안전할 정도다. 그야말로 ‘꺼진 불도 다시 보자’다. 그렇다 보니 이왕 발생해 활활 타오르는 열 에너지를 남김없이 먹는 것에 사용하겠다는 마인드가 온 캠핑장에 깔려 있다.
이때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구황작물이다. 불 아까운데, 고구마라도 구워야 하는 거 아니야? 감자 남는 거 없어? 다들 잘 씻은 고구마를 알루미늄 포일에 둘둘 싸서 잉걸불에 집어넣고, 잘 익은 감자를 꺼내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남더라도 언제든지 누구라도 먹겠지, 밥 차리기 귀찮을 때 간식으로 먹기 좋겠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캠핑이 반복되면 고구마의 맛에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저 아까운 남는 불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을까? 남김없이 익혀서 먹어 치우는 것이 불을 켠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디저트 베이킹을 시작할 때라고.
■ 숯불 오렌지 브라우니
베이킹은 캠핑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할 수 있다. 강한 화력일 때 고기나 채소를 구운 다음 남은 숯불이나 꺼져가는 장작불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은근하고 끈질기게 타오르는 열기를 가둬서 화덕이나 오븐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베이킹을 하려면 틀이 필요하다는 것!
시나몬롤 반죽을 마시멜로처럼 꼬챙이에 끼워서 직화로 굽거나, 통조림용 캔에 반죽을 넣고 익혀서 빵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꼬챙이에 끼우려면 반죽이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할 정도로 단단해야 하고, 베이킹만을 위해서 예정에 없던 통조림을 따는 것은 알뜰함이라는 모토에 반한다.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캠핑용 짐에 베이킹용 틀을 추가하는 것도 힘들다.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틀 대용 재료가 없을까? 열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고 예쁘면서 향기롭기까지 하다면? 그게 바로 오렌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 재료를 꼽는다면 첫 번째가 초콜릿, 세 번째가 시트러스가 될 것이다(두 번째는 캐러멜이다). 설탕에 절인 오렌지 껍질에 초콜릿을 입힌 오랑제트, 그리고 오렌지향 초콜릿을 오렌지 과육 모양으로 만든 영국의 테리스 오렌지라는 초콜릿 과자를 생각해보자. 오렌지의 향은 껍질을 벗길 때 터져 나오는 에센셜 오일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과육을 파낸 다음 그 안에 브라우니 반죽을 담아서 익히면 가볍게 쪄지면서 오렌지의 향이 살짝 배어든다.
브라우니는 망치기가 더 어려운, 아주 간단한 베이킹 디저트다. 초콜릿을 완전히 녹인 다음 나머지 재료를 넣고 잘 섞기만 하면 된다. 뜨거운 초콜릿에 달걀을 넣을 때 흰자와 노른자가 익어버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섞는 것, 그리고 과하게 익히지 않는 것 정도를 주의하면 된다. 베이킹 파우더가 들어가서 부풀기 때문에 오렌지에 반죽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이 좋은데, 캠핑이라 베이킹 파우더가 없다면 넣지 않아도 상관없다. 더 촉촉하고 묵직한 브라우니가 될 뿐인데, 이쪽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렌지에 반죽을 채우고 알루미늄 포일에 두 번 쌌다면 식사 준비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기다리자. 고기를 굽고 난 후 불길이 살짝 잦아들고 밥을 먹을 준비가 되었을 즈음에 불 옆에 올리는 것이 좋다. 오렌지 껍질이 두꺼워 보여도 고구마처럼 얼마든지 타서 숯덩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거나 너무 익어 퍼석해진 브라우니만큼 슬픈 것은 없으니 차라리 덜 익어서 촉촉한 초콜릿 용암 케이크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이 낫다. 불 상태에 따라, 바깥 기온에 따라 15~20분쯤 익힌 다음 꺼내도록 하자.
남은 불에 익혔으니 타이밍도 완벽하다. 배부른 식사가 끝난 후 살짝 단것이 당길 즈음이 되면 오렌지 뚜껑을 열어보는 것이다. 따끈한 오렌지 브라우니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거나, 마시멜로를 올리고 토치로 살짝 지져서 토핑을 만드는 것도 좋다.
숟가락으로 말랑해진 오렌지 껍질 속을 박박 긁다 보면 어린 시절 먹었던 귤 모양 용기에 담긴 셔벗처럼 어딘가 장난스러운 추억이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재료
오렌지 4개, 베이킹용 초콜릿 60g, 버터 60g, 우유 5큰술, 달걀 2개, 설탕 8큰술, 박력분 6큰술, 무가당 코코아 파우더 3큰술, 베이킹 파우더 1/2작은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오렌지는 잘 씻어서 윗부분을 1/4 정도 잘라낸 다음 과육을 조심스럽게 제거해 그릇 모양으로 만든다.
2. 초콜릿과 버터, 우유를 그릇에 넣고 중탕하거나 전자레인지에 30초씩 돌려 완전히 녹인다.
3. 한 김 식힌 후 달걀을 하나씩 넣으면서 재빠르게 잘 섞는다.
4. 나머지 재료를 싹 넣고 잘 섞는다.
5. 오렌지에 반죽을 채우고 위쪽 오렌지를 덮어서 알루미늄 포일에 이중으로 싼다.
6. 정점이 지난 숯불에 올리고 상태를 보면서 15~20분 정도 익힌다. 너무 익거나 타는 것보다는 덜 익어서 부드러운 것이 좋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푸드 에디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