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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1심서 징역 15년···그루밍 성범죄 인정

신도 8명을 4년여간 수십회에 걸쳐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75)가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목사는 신도들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인이라 준강간죄의 성립요건인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신도들이 이 목사를 신처럼 믿는 상태에서 성폭행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항거불능 상태가 맞다고 판단했다. 신뢰를 쌓아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를 인정한 것이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정문성 부장판사)는 상습준강간·상습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이 목사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들이 항거불능 상태였는지였다. 형법 제299조는 준강간죄에 대해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게 입증돼야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항거불능 상태란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이 목사 측은 이 목사가 신도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20세가 넘은 여성들로서 정상적인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1심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문성 부장판사)가 22일 자신의 교회 신도 여러 명을 수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 5월 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이 목사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던 게 맞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목사의 지난해와 올해 설교 내용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내용”이라며 “직접적으로 자신을 ‘성령’ 또는 ‘신’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 목사는 소모임이나 개인적인 교육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신을 성령이라고 하거나 신격화하는 취지로 신도들을 가르쳐왔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들은 교회에서 ‘믿음의 분량’을 높여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이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충실히 다닌 신도들”이라며 “이 목사를 신격화하는 교회 분위기 내에서 이 목사가 권능을 행한다고 믿고 ‘성령’ 또는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이 목사 행위에 대해 판단하거나 의심하는 것을 큰 죄로 생각하고 이 목사의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에 복종하며 이 목사의 말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피해자들의 신앙생활 모습에다가 피해자들이 약 50세 정도 연상인 이 목사와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원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보면 피해자들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고 이 목사는 이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당시 성인으로서 이 목사 행위가 성적 행위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는 “신도가 13만명인 대형교회 담임목사인 이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며 이 목사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이 목사 지시에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한 종교적 지도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가장 행복하게 기억돼야 할 20대가 평생 후회스럽고, 지우고 싶은 시간이 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며 엄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이 목사는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만 당초 검찰이 기소한 성폭행·성추행 42회 중 9회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종교계 성폭력 사건에 대해 법원이 ‘그루밍’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성인 피해자의 신앙심을 이용한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를 법원이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은 “목회자와 성도 간에는 일반 사람들 사이에선 없는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목회자의 성폭력은 대부분 그루밍 성범죄”라며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성숙하고 엘리트인 여성이 왜 목사를 따라갔느냐는 비난이 나오기 쉽지만 ‘심리적 지배’가 있다는 전제로 보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도 목회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폭력을 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 소장은 “징역 15년의 중형이 선고된 것이 교회 내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지만, 다른 교단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도 법원이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들어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신진희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말했는데 그 진실을 국가가, 사회가 알아줘 다행이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신 변호사는 “성인 피해자에 대해 약물이나 음주로 인한 항거불능이 아니라 신앙심을 이용한 심리적 항거불능을 법원이 인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만민중앙교회 비서실은 이날 판결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가 반대측의 진술만 믿고 판결을 내렸다”며 “저희는 당회장님(이 목사)의 무고함을 믿기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바로 항소할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 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법원 직원이 피해자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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