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 OST 부른 가수 하진 “ ‘위 올 라이’는 제게 새로운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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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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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이 신드롬급의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오프닝과 주요 장면마다 삽입된 곡 ‘위 올 라이(We all lie)’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만능간장 같은 오에스티(OST)’란 말이 있을 정도로 드라마와 찰떡의 궁합을 선보인 이 곡은 17일 오후 2시 기준 멜론차트 57위로, 꾸준히 차트 10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명가수가 아닌 가수가 부른 노래가 음원차트 100위권에 진입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곡을 부른 가수 하진(31)에 대해선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영어로 된 가사 탓에 ‘신인가수다’ ‘외국가수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하진은 “태평양 한 번 건너본 적 없는 10년차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거짓, 명예, 가면’ 등의 가사로 <SKY 캐슬>의 주제를 다루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위 올 라이’와 달리 하진은 웃음이 많고 밝은 사람이었다. “흥 빼면 시체인 사람이에요. 제가 처지는 날은 아픈 날밖에 없습니다.”
하진은 19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소녀시대·레드벨벳·원더걸스 등 아이돌 가수들의 앨범 코러스 세션 활동을 했고, 영화 삽입곡과 광고음악을 부르기도 했다. 배우 유준상이 등장해 ‘판타스틱~’이란 가사에 맞춰 춤을 추던 한 카드회사의 광고음악도 하진이 불렀다. 그런 그가 OST 작업에 참여한 건 <SKY 캐슬> 음악감독인 김태성 감독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JTBC금토드라마 5화의 한 장면. JTBC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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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은 지난해 11월 종영한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the guest)> OST ‘썸웨어(Somewhere)’를 부르며 김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이후 SBS 아침드라마 <나도 엄마야>의 OST ‘내 것이 아닌 걸’을 부른 뒤 또 한 번 김 감독과 <SKY 캐슬>로 뭉쳤다. 그는 “감독님의 주문은 하나였다. ‘위 올 라이’로 시작하는 첫 소절에서 이미 이 노래는 소름이 끼쳐야 한다. 세 어절밖에 안 되는데 소름을 끼치게 하려니 참 힘들었다. 메인 버전을 녹음하고 누군가 죽었을 때 나오는 느린 템포로 한 번 더 녹음을 했다”고 밝혔다.
하진은 OST 녹음 당시에 드라마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감정선을 잡는 데 참고하라며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여주셨다. 예빈이가 친구들과 과자 봉지를 막 터뜨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이걸 이수임이 목격하면서 경악하는 장면이었다. 그 씬을 보고 드라마 내용은 몰랐지만 ‘아이들은 뭐가 잘못됐고 뭐가 옳은지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어른들이 잘못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어른들의 거짓말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드는구나 하는 심각함을 느껴서 심각하게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거짓말이란 가사를 살리기 위해서 너무 심취하지 않고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상황을 그리며 노래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의 성공 역시 하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단순히 일이라고 생각하고 OST 작업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대박이 날 줄 몰랐다.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어요.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특히 엄마 어깨가 이만해지셔가지고. 처음 곡 녹음하고 왔을 땐 시큰둥 하셨거든요. 김장을 하러 가족들이 다같이 모였는데, <SKY 캐슬> 얘기가 나왔나봐요. 엄마가 ‘그거 하진이가 부른거야’ 하면서 자랑하셨어요. 시청률 올라가면서 엄마 어깨도 같이 올라가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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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SKY 캐슬> 애청자라는 하진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한서진과 진진희를 꼽았다. 그러면서 “상반된 이 두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론 윤세아씨의 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작 드라마를 보면서는 내 노래에만 집중해서 잘 불렀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근데 가게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고르던 중에 ‘위 올 라이’가 나오면서 소름이 끼친 적이 있다. 이때 ‘아, 내가 잘 불렀나보다’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진은 현재 2017년 결성된 밴드 ‘오가닉 사이언스’에서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 보컬 3명으로 이뤄진 ‘림하라’라는 그룹도 준비 중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방송 출연 사실도 털어놨다. “2013년 방송한 엠넷 <보이스 코리아 시즌2>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본명 정진하로요. 1라운드 통과하고 2라운드 배틀에서 탈락했어요. 이후 ‘진하’란 본명을 뒤집은 ‘하진’으로 활동명을 바꿨죠.”
10년 동안 묵묵히 가수 한 길을 걸어 왔지만, 힘들 때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땐 가수로 얼굴도 알리고 이름도 알리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 서른이 되기 전 3년이 특히 힘들었다. 작년 상반기엔 진지하게 가수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운동 쪽으로 진로를 바꿀까 고민했다”고 했다. 이어 “제일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였다. 사실 지금도 내 뜻대로 안 되긴 한다. 그래도 신기하게 서른 살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지치는 게 덜하고 아직 할 만하구나 싶다”고 말했다.
하진은 ‘위 올 라이’는 자신에게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왔다. 그런데 이 곡 덕분에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듯하다”며 “‘오가닉 사이언스’의 하진으로, 또 ‘위 올 라이’ 하진으로 사랑해주시는 모든 팬분들께 감사하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려 한다. 그때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하진은 휴대폰 사진첩에 저장하고 다닌다는 소리꾼 장사익의 말을 보여줬다. “장사익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다가 너무 와닿아서 캡처했어요. ‘노래 잘하는 가수가 많은데 오래 가는 가수가 적은 것은 노래의 의미가 결여 됐기 때문이다. 멋지고 화려해서 인생이 아니라 애환이 있어서 인생이죠.’ 이 대목을 읽고 생각했죠. ‘아,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고, 안 좋은 일이 와도 충분히 힘들어하면서 즐기면 되겠구나.’ 어디서 들은 말인데,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다가 노가 부러진다고 하더라고요. 아차 싶었어요. 조금 내려놓고, 다시 묵묵히 제 길을 갈 거예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