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 김서형 “김주영 이해하는 일, 정신과 가보고 싶을 정도로 어려워”
일문일답
JTBC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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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서형(46)에게선 JTBC드라마 <SKY 캐슬> 김주영이 보이지 않았다. 잔머리 하나 없이 틀어 올린 머리에 검은 정장, 얼음장 같은 눈빛의 김주영은 자식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으로 가정이 파탄 나자 입시 코디네이터로 변신해 다른 가정까지 무너뜨리는 데 쾌감을 느끼며 사는 인물이다. 반면 김서형은 연기의 고통에 대해 말할 땐 잠시 눈가가 촉촉해지고, 또 동료 배우들에 대해 말할 땐 박수를 치며 큰소리로 웃는 솔직하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1994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서형은 긴 무명 시절을 거쳐 2008년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악역 신애리를 맡으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날 김서형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SKY 캐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인기 실감하나.
“에이. 알면서.(웃음) 배우들이랑 제작진이 모여있는 단체 대화방이 있다. 매회 끝날 때마다 ‘자, 그럼 다음주 (시청률) 몇퍼센트 찍을까’ 이러면서 다들 신기해 했다. 처음엔 시청률 15퍼센트 정도만 되도 좋지 않을까 했는데, 나중엔 <도깨비>를 이기냐 마냐 하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유현미 작가님 필력은 제가 봐도 궁금증을 유발하긴 한다. 거기다 또 조현탁 감독님이 연출을 잘 하니까. 배우들도 감독님에게 ‘엔딩 맛집’이라며 감탄한 적이 있다.”
-처음 <SKY 캐슬> 대본 받아봤을 때 어땠나.
“대본도 좋았지만, 배우들이 좋더라. (캐스팅이) 수월하게 됐다고 들었다. 염정아 언니가 나온다고 해서 ‘와, 되게 잘 됐네’ 했다. 처음 김주영 역을 제안 받을 때 대본 여섯권을 받았다. 이걸 뻔하지 않게 어떻게 찍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랑 일을 안 해봤으니 반신반의 하는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캐스팅이 좋다보니 다들 잘 해서 누구든 삐끗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작품 같았다.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역할을 맡는데 주저함은 없었나.
“사이코패스 기자역을 맡은 전작 <이리와 안아줘>에선 특별출연인데도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게 연기했다. 또 임팩트 있고 힘을 쓰는 역할이라 생각하니까 못하겠더라. 캔디 역이든 선한 역이든 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런 역을 하면 일단 몸이 아프다. 많이 아프면서 한다. 드라마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아프니까. 너무 아플 걸 예상하니까 그렇게 또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못 하겠다고 했었다. 어쨌든 못하겠다 하다가 역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까. (역할을) 하고 난 뒤 오는 고충들은 여전히 아프고 고민되고, 심지어 자랑은 아니지만 울며 불며 했다. 그래도 시청률이 좋았고, 그 시청률이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힘이 됐으니 그걸로 버텼다. 감독님이 너무 애써 주시기도 했다. 힘들고 외롭고 고충이 크다는 말씀을 솔직하게 드렸다. 그런 얘기를 드렸을 때 충분한 시간과 얘기를 나누려고 하셨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에 저도 많이 의지했다.”
-김주영 역할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쉽지 않았다. 다른 네 가족은 그래도 인물에 대한 시놉시스, 설명과 줄거리가 꽤 상세했다. 저는 지금 <SKY 캐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와있는, 그 정도의 설명밖에 없더라. 나머지는 대본 연습 끝나고 좀 더 물어보는 식이었다. 미국에서의 교통사고, 케이와의 관계 등 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확실한 사실은 있었다. 한서진과 김주영은 아마 비슷한 사람일거다. 감독님도 처음에 그런 얘기했던 것 같다. 결국은 두 사람 다 엄마다. 김주영도 열등감과 패배의식 때문에 똑똑한 자식을 더 잘 되게 만들고 싶어한 엄마일 뿐이다. 거기서 시작해서 틀을 잡아갔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장면을 찍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초반엔 특히 적은 분량에서 상대방과 기싸움·밀당을 해야 하니까. 정아 언니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한서진은 예서(김혜윤)와의 어떤 상황이 벌어진 뒤 김주영을 만나러 오거나 하는 식으로 감정선에 도움을 주는 역할들이 있었다. 김주영은 반면 모든 감정선과 배경을 숨기는 인물이라 외롭고 그랬다. 김주영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것에 대해서도 대본이 나와봐야 아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고충들이 있었다.”
-촬영을 하며 특히 힘들었던 적은 없나.
“체력도 체력이지만 (촬영) 중간을 지나면서 정신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예전에도 (작품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정신과를 가는 게 나쁜 게 아니지 않나. 과거엔 ‘버텨보자’ ‘견뎌보자’하니 버텨졌다. 근데 이번 작품에선 중간에 그런 생각이 너무 커졌다. 끝나고 보니 그게 김주영이었던 것 같다. 김주영의 마음상태가 그러다니보니 내가 데미지를 받았지 않나. 김서형 개인이 그런 게 아니라 김주영이 아프니까 병원으로 가서 분리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배역을 맡았을 때 (두 자아 사이에) 중간 지점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못 찾을 때가 있다. 이 작품이 그랬고, 이제 와서 보니 김주영이 그렇게 안에서 나를 괴롭혔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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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내의 유혹>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대체로 ‘센’ 역할이란 평이 있는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어서 역할을 맡거나 하진 않는다. 대신 비슷한 대본이 들어왔을 때 어느 한 쪽에 (마음이) 더 쏠리는 건 저만이 알 수 있는 이상한 촉 같다. 비슷한 역이라도 내가 더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이 보이는데 그러면 그 작품을 한다. 역할이 비슷해 보이더라도 배우라면 그렇게 하게 돼 있고, 조금씩 다르게 하게 된다. 김주영도 대본을 읽고 나서 ‘이런 컨셉에서 이렇게 하면 (역할이) 되겠는데?’하는 게 보였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똑같이 열심히 했다.”
-김주영의 특유의 표정·말투·행동이 화제가 됐다. 직접 연구한 것인가.
“대본을 보고 ‘왜 나한테만 그래’ 생각한 적도 있다.(웃음) ‘전적으로 감수하시겠습니까’ 이런 말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이 아니지 않나. (어미를) 올려도 이상하고 내려도 이상했다. 잘못 연기하면 사극톤이다. ‘현대물인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톤을 살리기보단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갔다. 방송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김주영은 이 말을 한 뒤 한서진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지그시 누른다. 대본엔 없지만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그래서 더 분위기가 산 것 같다. 어쨌든 잘 봐주셨다면 감사하다.”
-앞서 캐스팅이 좋았다고 했다. 특히 누구의 연기가 인상 깊었나.
“대본리딩 때부터 김정난 언니가 너무 잘했다. 특별출연이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잘해. 언니한테 ‘왜 이렇게 잘해? 우리는 어떡하라고’ 장난식으로 물어봤다. 언니가 그러더라. ‘서형아, 나도 목이 말랐어. 역할 들어온 게 다 거기서 거기였단 말이야.’ 사실 특별출연이 그렇게까지 잘해주기가 어렵다. 저도 몇 번했는데 쉽지 않아. 언니가 그런 고충을 말하는데, 우리가 다 놀랐다.”
-딸 케이(조미녀)와 19회에서 강렬한 씬을 남겼다. 조미녀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그 전에도 케이 역할을 맡은 미녀와 두 차례 마주쳤다. 제가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을 찍으면서. 그 친구가 분장을 하고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나중에 친해지자고 했다. ‘우리가 (극에서) 서로 안 보는 사이인데, 내가 너를 지켜만 보는 사이인데 현장에서 친해지면 안 될 것 같다. 나중에 잘해줄게’라고 했다. 저는 원래 그렇다. 날선 상대나 대적하는 상대가 있으면 일부러 말을 많이 안 나누고 지나치는 편이다. 조 선생(이현진)도 김주영을 따라다니고 지켜보는 역할이라 친해지지 않으려 했다. 수다 떨다가 카메라 돌 때 돌변하는 게 잘 안 된다. 19회 촬영 때쯤 가서야 같이 사진을 찍었다. ‘태준아’ 부르는 씬을 찍은 뒤였다. 저도 조 선생 이름이 조태준인지 그때 알았다. 페어팩스에서 마약한 것도 그때야 알았다.(웃음)”
-조 선생을 연기한 이현진과도 뒤늦게 친해졌다니 놀랍다.
“19회에서 ‘태준아’ 부르는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김주영이 그동안 조 선생을 돌아볼 일이 없었으니까. 그 전까진 늘 조선생 같이 있지만 외롭다 느꼈다. 그날 촬영에서 그래도 조 선생이 있어 (김주영이) 그나마 견뎠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상(정준호)이 찾아와 멱살 잡을 때도 조 선생이 있었지 않나. 사실 나중에 둘 중 한명이 배신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게다가 현진씨가 사람이 너무 맑다. 사실 조 선생이 우울할 수도 있는 역인데, 김주영이 하도 어두워서 그런가 화면으로 보니 밝아보이더라.(웃음) 예서 픽업하고 김주영 픽업하고 스케줄도 빡빡했을텐데 늘 웃고 있어줘서 고마웠다.”
-<SKY 캐슬>이 김서형의 ‘인생작’ 혹은 ‘전성기’라는 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잘 소화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가 없다. 늘 연기에 매진하는 게 맞고, 시청률과 상관 없이 맡은 바에선 열심히 하려 한다. <SKY 캐슬>이 김서형의 인생작이라고 하는 건 김서형이 김주영만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의 노력이 있었고, 그 속에서 그냥 묵묵히 괴로워하면서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전성기라기 보단 그 전까지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 정도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김서형은 뭘 줘도 잘 하는 배우란 말만 남아도 좋을 것 같다. 역으로 김서형에게 어떤 작품이든 맡길 수 있겠냐고 되묻고 싶기도 하다.”
-김서형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김주영과는 확실히 다른 성격 같다.
“저 되게 유쾌한 사람이다. 근데 정적이다. 말이 안 되나?(웃음) 그냥 거침이 없는 것 같다. 역할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게 캐릭터가 묻어날 때가 있다. 김서형은 역할을 만나면서 성장해가는 그런 사람 같다.”
-마지막회만 남겨두고 있다. 결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포인트로 보면 될까.
“시청률 25퍼센트 찍으려면 보셔야하니까 말할 수 없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 못한다. 제가 법적 책임 물을 수도 있다.(웃음)”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