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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내음 따라 갔지만 너 땜에 더 설렜지

(102) 김해 오일장

경향신문

봄을 알리는 ‘초벌’ 부추. 잎 길이가 짧지만 단맛과 향이 좋다.

김해는 멸치국수다. 김해를 생각하면 공항도, 부산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멸치국수만 생각난다. 전국 팔도를 다녀도 음식 생각이 먼저 나는 곳이 드물다. 김해 출장 잡히면 멸치국수 먹을 생각이 먼저 난다. 그렇게 김해는 나에게 멸치국수의 도시다.


멸치는 대가리와 내장을 따라고 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그 이야기가 맞았다. 멸치를 잡아서 육지로 가져와서는 삶고 말린다. 기름이 많은 멸치는 삶고 말려도 기름 성분이 시간이 지나며 시나브로 상한다. 냉장고가 집마다 없던 시절, 누렇게 뜬 멸치는 대가리를 따고 내장을 제거해야만 했다. 냉장고가 차고 넘치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멸치는 잡아서 육지로 가져오지 않고 배에서 삶는다. 삶은 멸치를 육지로 가져와 바로 말린다. 건조를 끝낸 멸치는 냉동고에서 보관한다. 멸치 기름이 누렇게 상할 틈이 없다. 과학기술이 음식 재료의 상태를 변하지 않게 바꾸었지만, 멸치 대가리 따던 습관은 예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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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멸치 그대로 우려낸 육수에 말아 더욱 맛있는 멸치국수.

멸치 대가리는 따야 한다는 인식을 보기 좋게 날린 곳이 김해다. 김해와 부산 사이에 대동할매국수가 있다. 오래전부터 멸치국수를 말아왔다. 국물 낼 때 다른 건 필요 없이 멸치만 그대로 넣었다. 대가리도 따지 않고 내장도 그대로 두고서는 멸치 육수를 냈다. 가게 근처의 골목에 들어서면 멸치 육수 냄새가 날 정도였다. 


가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으면 주전자에 뜨듯한 멸치 육수를 내줬다. 땡초 다진 것을 넣고 홀짝 마시는 사이 국수가 나왔다. 육수를 붓지 않은 국수다. 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국수에 부었을 때 비로소 멸치국수가 완성된다. 꼬릿한 냄새가 나던 멸치 육수가 국수 양념장과 만나면 꼬릿한 냄새는 사라지고 감칠맛만 남았다. 한 그릇 뚝딱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서울로 향했다. 서울 도착할 즈음, 꼬릿한 육수 생각이 난다. 항상 그랬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했다. 집에서 육수를 내려고 해도 그 맛이 안 났다. 들어가는 멸치 양이 식당보다 적은 탓이다. 국숫집에서 멸치 육수를 맛보고 난 이후에는 멸치 대가리를 따지 않는다. 얼마 전 본 일본 우동집 동영상에서도 온전한 멸치 그대로 육수를 냈다. 과학이 우리 삶을 바꾸면 따라가야 하지만 우리 인식은 아직도 냉장고가 없던 1960년대다. 멸치 대가리는 그대로 두어도 된다.

김해는 멸치국수의 고장…‘대가리·내장 따야한다’ 인식 날린 멸치 육수의 감칠맛,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

축협 본점 주변으로 2·7이 든 날 크게 열리는 장터…봄 성큼 다가와 장사꾼도 사람도 ‘북적’ 구경거리 ‘쏠쏠’

봄과 함께 나고 드는 나물, 장터엔 빠짐없이 부추·미나리…돼지고기 구워 같이 먹고 명주조개 넣어 전 부쳐 먹으면 그게 ‘미식’

멸치국수의 고장 김해 오일장, 매번 오일장을 갈 때는 전날에 출발해도 새벽에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그리 못하고 오전에 출발했다. 김해까지 소요 시간은 5시간, 배고픔을 참고 운전했다. 멸치국수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대동할매국수를 찾지 않고 시내에 있는 다른 국숫집을 찾았다. 


대동할매국수는 새로 건물 올리고 난 후 갔었다. 맛은 예전 맛이었지만 풍경은 낯설었다. 멸치 대가리 그대로 육수를 낸다면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멸치 육수는 내주지 않았지만, 국수를 내와서는 그 자리에서 육수를 부어줬다. 멸치 육수를 부을 때 특유의 향이 났다. 국수에 담긴 육수를 맛봤을 때는 향은 사라지고 맛만 남았다. 멸치 맛 조미료는 결코 낼 수 없는 맛이다. 여기는 특이하게 단호박이 고명으로 들어 있었다. 멸치 육수의 쌉싸름함과 땡초의 매운맛을 단호박의 달달함이 단단하게 받쳐준다. 육수를 마시다가 단호박으로 달곰한 입가심, 색다른 맛이었다. 5시간을 참았다가 먹은 멸치국수는 여전히 좋았다. 정성별미국수 삼계본점 (055)33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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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와 7이 든 날에 열리는 김해 오일장. 오일장의 봄은 나물로 오고 있었다. 3000원 미나리 한 단이면 돼지고기 구이도, 라면도, 부침개도 봄맛을 낸다. ‘무조건 만원’의 선도 좋은 생선을 사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아주머니들이 줄을 늘어섰다(왼쪽 사진부터).

김해 오일장은 달력에 2와 7이 든 날에 열린다. 보통은 상설시장 주변에 열리는데 김해는 달랐다. 상설시장인 동상시장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장이 선다. 김해 축협 본점 주변으로 커다란 장이 선다. 장사꾼도 사람도 많아 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난 광양장보다 봄이 한층 다가왔다. 거리에 들어선 벚나무에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성급한 녀석은 이미 기다리지 않고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이 꽃으로, 나물로 오고 있었다. 3월은 나물이다. 봄이 지남에 따라 나물이 나고 들어간다. 3월, 김해의 나물은 정구지다. 정구지는 경상도 사투리로 부추를 말한다. 장터에 나온 할매들 앞에는 빠짐없이 정구지가 놓여 있다. 바구니에 담긴 정구지가 두 종류다. 두메나 솔부추 같은 토종 부추가 아닌 초벌과 두벌로 구분되어 있다. 초벌은 처음 수확한 부추로 길이가 짧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부추가 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싹을 틔운 것이다. 잎 길이가 짧은 대신 단맛과 향이 좋다. 쌉싸름한 맛은 보너스다. 두벌 수확하는 부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이로 깔끔하게 잘 묶여 있다. 김해는 부산과 낙동강을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강변 옆, 양분 많은 땅에서 자라는 부추는 맛있다. 김해 부추가 맛있는 이유다. 부추 옆 미나리의 유혹이 강렬하다. 미나리도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은 길쭉한 모양새지만 돌미나리는 짤막한 모양새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미나리가 갖지 못한 진한 향이 좋다. 짤막한 미나리와 초벌 부추를 샀다. 전을 부칠 생각이다.


미나리로 봄맛을 만끽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돼지고기와 궁합을 맞추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불판에 돼지고기를 구우면서 미나리만 올리면 된다. 두 번째는 라면에 미나리를 넣고 불을 끄면 바로 미나리 라면이 된다. 조금은 귀찮아도 가장 맛있는 것은 부추와 미나리 넣고 부치는 것이다. 잘 씻은 미나리와 초벌 부추를 준비한다. 밀가루 30g, 달걀 한 개, 물은 밀가루 중량의 세 배 정도면 넉넉한 한 장 반죽이다. 반죽할 때 밀가루는 조금만 넣는다. 미나리와 부추를 붙이는 접착제 용도다. 가열한 팬에 기름을 두른 뒤 반죽을 넣고 중간 불에서 빠르게 부치면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부침개가 된다. 초벌 부추는 3000원, 미나리도 3000원. 총 6000원으로 부치는 봄이다. 미식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제철에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미식이다.


전을 부칠 때 명주조개(개량조개) 넣으면 별미다. 예전에 김해와 이웃한 부산 명지에서 명주조개가 많이 났다. 명주조개는 밀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의 모래펄에서 나는 조개다. 명지에서 많이 났다고 해서 명지조개라는 애칭도 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담긴 명주조개를 내놓은 상인. 어젯밤 아들이 작업한 것이라며 크기 상관없이 13개 만원에 팔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봄맛을 지나치는 것과 같다. 장터의 특징이 그냥 지나치던 것에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린다. 명주조개 3만원어치 사는 동안에 사람들이 모이고는 이내 물건이 동났다. 흔한 장터 풍경이다.


장터 구경을 얼추 끝냈을 때, 아주머니들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줄을 섰다. 줄의 중심에는 커다란 노란 박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뭐하나? 궁금함이 밀려왔다. 잠시 후, 노란 박스의 뚜껑을 여니 선도가 끝내주는 생선이 얼음에 재워져 있다. 참돔, 아귀, 농어 등등 갖가지 생선이 종류별로 있었다. 첫 타자는 농어, 뚜껑을 열자마자 한 아저씨가 잽싸게 다 사 갔다. 잠시 후, 아귀는 크기에 상관없이 만원, 옥돔도 한 바구니 만원, 모든 게 만원이었다. 싸게 주는 대신 손질은 안 해준다. 몇 년 전 해남 오일장에서 봤던 모습이었다. 어종불문, 크기 불문 무조건 만원을 받았다. 손질할 줄 알면 횟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도였다. 김해 역시 해남 못지않게 선도가 좋았다. “아주메, 모 달라만 하지 말고 봉투!” “우리가 먼전디.” 멀리서 들으면 싸우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아니다. 경남 사투리의 매력이다. 남의 가게 앞에서 판을 벌였지만 가게 주인도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판을 벌이고 한 시간도 안 걸리고 판이 끝나기에 신경을 안 쓰는 눈치다. 명주조개를 안 샀으면 필자도 봉지 들고 동참했을 것이다.


김해의 봄은 들불처럼 부추로부터 와서는 가로수의 벚꽃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전국을 다니며 음식을 먹지만 김해의 멸치국수는 ‘최애’다.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이다. 지금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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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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