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선, ‘주책맞은 아줌마’ 이상이길 원했고 도전했고 성공했다
여성 예능시대 기반 다져온 개그우먼 박미선의 이야기
유튜브 도전은 또 다른 행복
자유롭고 적성에도 맞아
뭐 할지 고민하는 현재가 좋다
‘거리의 만찬’을 하면서는
이야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선한 영향력’ 실감하게 돼
여성 예능인에 대한 기대
이미지 정해져 있었지만
시사교양 진행하며 편견 깨
예능 1인자도 경외하는 2인자 “젖은 낙엽 정신으로 33년 버텨”
박미선 / 김창길 기자 |
저는 박미선입니다. 네, 맞습니다. 웃기는 게 직업인데 ‘노잼’(^^)으로 유명한 그 박미선입니다. 개그우먼으로 출발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했어요. 미달이 엄마냐고요? 빙고! <우리 결혼했어요> <세바퀴> 같은 예능 프로그램 MC로 알고 계신 분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연극을 했고,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했어요. EBS <까칠남녀>, KBS <거리의 만찬>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진행했고요.
제 소개가 길었네요.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는 동안(33년간) 방송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딱 두 달 쉬었어요. 첫아이 낳고 한 달, 둘째 낳고 또 한 달. ‘젖은 낙엽’ 정신으로 버텼습니다. “2인자면 어때요. 결국 돌아봤을 때 인생을 완주하는 게 중요한 거거든요. 젖은 낙엽 정신으로 바닥에 바짝 붙어서. 그 대신 고개는 하늘을 쳐다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버텨보는 거예요.”(KBS <스탠드업>)
음… 요즘엔 뭘 하냐고요? 유튜브를 하느라 즐겁습니다. 채널 이름은 <미선 임파서블>(‘미션 임파서블’이 아닙니다)입니다. 어떤 분들은 ‘박미선판 무한도전’이라고 하시더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순풍 산부인과>에서 방학숙제를 미루는 미달이 때문에 43일치 그림일기를 해치우게 된 엄마(바로 접니다)가 가족에게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고 묻는 장면을요. 그래서 <미선 임파서블> 대문에 써놨습니다. “도전은 내가 할게, 구독은 누가 할래?”라고요.
꾸준히 기복 없이 일을 해왔으니 운이 좋았습니다.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든든하고 흐뭇합니다. 여성 후배들이 펄펄 날고 있어서요. 최근 KBS <다큐 인사이트>에선 ‘개그우먼’을 주제로 다뤘습니다. 이성미 언니와 송은이·김숙·박나래·김지민·오나미씨가 등장했어요. 다큐멘터리에 프레젠터(진행자)로 나온 김상미 PD에게 연락해서 고맙다고 했어요. 김 PD가 “KBS 아카이브를 활용하느라 다른 방송사 출신 개그우먼들 이야기는 못 담았다”며 (MBC 출신인) 저한테 미안해하더군요. 누가 나오면 어때요? 개그우먼들의 재능과 노력을 조명해줘서 좋았습니다.
여전히 ‘웃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저의 이야기, 그리고 예능 판을 바꾸고 있는 여성 후배들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33년차 방송인 박미선이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정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개그우먼으로 출발해 활동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온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박미선은 “세상에 나를 맞춰 가야지, 나한테 세상을 맞추라고 하면 교만”이라며 “흰머리 나고도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
이영자와 박나래는 방송사 연예대상을 거머쥐었다. 송은이는 예능 판을 갈아엎었다. 김숙과 장도연, 안영미, 김신영은 그 판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그들이 ‘주류’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씨를 뿌리고 흙을 다져온 이가 있다. 1인자들이 경외하는 2인자, 33년차 방송인 박미선(53)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를 찾은 박미선은 자신의 ‘정동 (MBC 라디오극장)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워했다.
인터뷰를 생각보다 많이 하지 않으셨던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인터뷰가 시간과 노력이 은근히 많이 드는 작업이거든요.”
몇 달 전 여성지 ‘엘르’에서 화보 촬영을 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보는 이번에 처음 찍었어요.”
처음이라고요? 그럴 리가요.
“저에 대한 허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웃음). 저는 스타라기보다 ‘직장인’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방송사에 매일 출근하는….”
1988년 제2회 MBC TV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그는 직장인보다 더 직장인처럼 살아왔다. 산후 휴가로 딱 두 달 쉬었다. 그런 그가 요즘엔 방송사 밖으로 진출했다. 유튜브 채널 ‘나는 박미선’과 ‘미선 임파서블’을 열었다. 각각 7만명, 19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유튜브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 ‘나는 박미선’은 딸과 함께 일기 쓰듯이 만들어가는데, 동영상으로 찍는 ‘가족 일기장’ 개념이에요. 내 이야기, 다른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진짜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지요. ‘미선 임파서블’은 ‘요즘 것들 문화에 도전한다!’는 콘셉트인데요. 10~20분 분량이라도 저 혼자 책임져야 하니까, 이전에 해오던 협업들과는 다르더군요. 그래도 재밌어요.”
어떤 점이 재미있습니까.
“일단 누군가를 받쳐주지 않아도 되니까, 주인공이니까 좋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으니 좋아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요. 굉장히 자유롭고, 해보니까 적성에 맞더라고요.”
2020 유튜브 <미선 임파서블> |
<미선 임파서블>에서 박미선은 자유롭고, 동시에 노련하다. 홍대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세배를 받고 덕담을 해준 ‘세뱃돈 FLEX(과시) 미션’ 영상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내가 오늘 돈 얼마 FLEX했는지 알아?” “괜찮아 이 정도는” 하며 배포를 자랑하다 “나 오줌 매려워!!!”로 급반전한다. 이 영상은 조회수 95만회(7월31일 현재)를 기록했다.
구독자 수에 욕심이 생기진 않나요.
“연예인들이 (인터넷에서) 자기 이름 검색 많이 하잖아요. 유튜브 하면서도 ‘오늘은 몇 명이나 봤나?’ 해요. 구독자가 많아지면 좋지요. 하지만 그것보다 댓글이 주는 힘이 큽니다. 악플이 거의 없어요. 어쩌다 악플이 하나 달리면 (악플러를 향해) ‘너나 잘해’라는 댓글이 달려요. 살면서 이렇게 좋은 경험은 처음이에요.”
박미선은 더 이상 ‘옛날 사람’이 아니다. 최근 <순풍 산부인과>(이하 순풍)의 대사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시 인기를 끌면서다. “월급은 내가 받을게, 일은 누가 할래?” 등 갖가지 패러디가 양산되며 박미선은 ‘밈(meme·온라인에서 다양하게 복제되는 콘텐츠) 부자’ ‘짤(인터넷에 떠다니는 사진·그림) 부자’로 등극했다.
<순풍> 대사가 화제가 되면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20년도 훨씬 넘은 시트콤이거든요. 같이 나온 송혜교씨가 여고생이었어요. 그 대사가 사람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고, 짤이 돌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추억을 소환한 거죠. 작품이 워낙 재미있기도 했고, <순풍> 출연자 가운데 지금도 예능에 나오는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관심 받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았습니다.”
1998~2000 <순풍산부인과> |
자신이 말한 대로 그는 ‘지금도’ 예능에 나온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 TV조선 <모란봉 클럽>을 진행한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에선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스스로 ‘워커홀릭’이라 생각합니까.
“약간 워커홀릭이죠. 일찌감치 가장 노릇을 했어요. 내가 일을 안 하면 가족들은 어떡하나…. 그게 오랜 세월 습관이 됐나 봐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일이 없으면 ‘이렇게 놀아도 되나?’ 불안해요. 요즘엔 조금 달라졌어요. 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일했다면, 지금은 즐겁게 합니다. 해야 해서 하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을 조화롭게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해야 해서 하는 일도 덜 힘들게 느껴집니다.”
쉬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나요.
“넷플릭스를 봅니다. 원래 극장에 자주 갔는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잘 못 가니까요. 틈틈이 러닝머신에서도 뛰고, 근력운동도 하고…. 요즘 바지 사이즈가 많이 늘어났어요. 연예인은 관리를 안 하면 안 한다고 욕먹고, 하면 한다고 욕먹어요.(웃음)”
박미선은 33년간 오르막과 내리막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최우수상을 모두 수상할 만큼 경력이 화려하다. 백상예술대상, 한국방송대상, 한국PD대상에서도 상을 받았다. 하지만 메인MC였다가 어느날 갑자기 패널로 ‘신분’이 바뀌는 아픔도 겪었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지금이요. 제가 어떤 성격이냐면… 어제 일을 기억하기보다 ‘앞으로 뭐 하지’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감정이었는지 속에 담아두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현재가 가장 좋아요.”
그러면 가장 좌절했던 시기는 기억납니까.
“고비고비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일과 관련된 영상을 보면 ‘저 장면은 무슨 프로그램 할 때’라고 정확히 기억하지만, 당시의 개인적 감정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오르막과 내리막은 있었지만, 그 곡선이 완만해서이기도 할 겁니다.”
대상을 받은 적은 없지요.
“없어요. 상복이 많아서 최우수상은 지상파 3사에서 다 타봤지만요.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톱스타’에 올라보지는 못한 것 같아요.”
대상을 많이 탄 유재석·강호동씨 등과는 ‘장르’가 다른 것 아닌가요. 남성 중심의 야외 버라이어티가 대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하는 일까지 제가 다 잘해내야 같은 등급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거죠. 야외 버라이어티에 남성들이 많이 등장한 건 사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제가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인정받았을 겁니다. 객관적 평가예요. 겸손의 차원이 아니라.”
2020 <스탠드 업> |
KBS <스탠드 업>과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 등에서 ‘젖은 낙엽론’ ‘2인자론’을 이야기했습니다. 1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있었죠, 사람이니까.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어느 해인가, 대상 후보로 올랐는데 ‘실제 받으면 욕을 얼마나 먹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어요.”
무슨 의미인가요.
“(강호동·유재석씨 같은) 난공불락의 성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싶은 거죠. 그때까지는 여성 대상 수상자도 없었으니까요. 최근 (여성) 후배들이 대상 받는 걸 보면서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 중심의 예능 환경은 끊임없이 비판받아왔다. 특히 규라인(이경규 라인)·강라인(강호동 라인) 등으로 알려진 ‘카르텔’이 여성 예능인을 소외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받곤 했다.
“(여성) 방송인끼리 밀어준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모두가 프로페셔널이고 경쟁 상대”(‘엘르’ 인터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남성 연대’를 목격하며 억울한 적은 없었습니까.
“(남성 연대는) 방송 시스템을 잘 모르는 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캐스팅 결정권자는 제작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제작자들이 출연자들의 ‘케미(어울림)’를 보고 출연을 결정하는 거죠. 우리는 프리랜서예요. 아무개와 불편한 사이라는 말은 (제작자·방송사 측에) 할 수 있지만, 아무개와 꼭 함께하고 싶다는 말은 하기 어려워요. 저는 방송하면서 그런 입김을 불어넣은 적이 없고, 영향을 받은 적도 없어요.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합니다. 잘해서 케미가 좋으면 다시 같이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송은이·김숙씨, 박나래·장도연씨 보세요. 케미가 좋으니까 계속 같이 나오잖아요.”
2008~2015 <해피투게더> |
박미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성 예능인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정해져 있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많아지면 ‘주책맞은 아줌마’로 남편 험담을 하기 원한다”(<아이즈> 인터뷰). 그는 ‘주책맞은 아줌마’ 이상이길 원했다. 도전했고, 성공했다. 젠더 이슈를 다룬 EBS 토크쇼 <까칠남녀>에선 문제의식과 균형감각을 입증했다.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에선 출연자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코멘트를 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은 예능MC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이런 프로그램을 처음 해보는 거라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까칠남녀>를 진행하면서, 젠더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가 구체적 용어를 몰랐을 뿐 늘 알고 싶어하던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거리의 만찬>도 맡게 됐고요. 예능 프로그램에선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MC가 잘하는 MC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리의 만찬>을 하면서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MC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나온 분들은 그동안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진심을 담아서 말씀하셨어요. 제가 하는 일의 ‘선한 영향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예능은 웃음을 주지만 공허할 때가 있어요. <거리의 만찬>을 할 때는, 방송이라는 직업을 통해 이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MC들끼리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하는 방송’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거리의 만찬>은 시청자와 평론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성 진행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KBS는 박미선·양희은·이지혜씨 등 기존 MC 3인을 하차시키고 방송인 김용민씨 등 남성 2인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씨는 ‘여성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사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김씨가 자진사퇴하며 상황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프로그램 제작은 중단됐다.
<거리의 만찬> MC 교체 때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서운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 프로그램을 그만둔 것보다, 프로그램 자체가 중단된 게 더 안타까워요. 파일럿 방송부터 참여해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혹시 다른 분이 진행하게 되더라도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여성 예능인 ‘풀’ 확대되면 제작자도 선택의 폭 확장, 윈-윈”
여성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아주 잘하고 있는데요, 뭐…말 보태면 ‘꼰대’ 되는 거죠. 그냥 ‘파이팅’! / 김창길 기자 |
‘국민MC’ 유재석이 박미선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다. ‘박일침(一鍼) 누나’다. 조곤조곤 할 말 다 하는 캐릭터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똑똑하고 솔직한’ 여성 캐릭터는 밉상으로 찍히기 쉽습니다. ‘선’을 지키는 비결이 있습니까.
“상대방의 진짜 아픈 곳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 칼이 될 수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러 선을 지키려고 애쓰는 건 아니지만, 말을 할 때 머릿속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회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송은이, 김숙, 박나래, 장도연씨 등 여성 후배들의 활약이 뛰어납니다.
“(여성 예능인들을) 도와주는 손길이 많아졌습니다. 지지하는 팬이 늘어나고, 기사도 많이 나오고요. 시대가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방송을 시작한 이후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아주 잘하고 있는데요 뭐. 무슨 얘기 보태면 ‘꼰대’ 되는 거죠. 그냥 ‘파이팅’ 외쳐주고 싶어요.”
여성 예능인을 활용하는 방식과 관련해 제작 책임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습니까.
“활용하는 폭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여성들끼리 방송을 꾸려가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수적으로 봤을 때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기회를 많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들끼리 ‘여러 개 중 하나 얻어 걸린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기회를 주면 줄수록, 가능성이 열릴 겁니다. 여성 예능인의 ‘풀’이 확대되면,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확장될 겁니다. 서로 ‘윈-윈’이 될 거예요.”
박미선은 개그우먼 후배들에게 ‘롤모델’로 불린다. 롤모델은 부담스러운 언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일까.
“닭살이 돋아요. 한 번은 궁금해서 ‘날 존경할 게 뭐가 있느냐’ 물어본 적이 있어요. ‘선배님처럼 오래 하고 싶어요’ 하더군요. 좋기도 하면서 부담스러워요. 제가 계속 잘해야 되니까.”
스캔들이 없었지요.
“연애 기사가 크게 나면 바로 결혼해야 하는 줄 알고 결혼했어요(웃음). 너무 바르게 살죠. 사기 칠 줄도 모르고. 그래서 재미가 없어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나요.
“네. 선도부 하며 ‘귀밑 1㎝’ 머리 규정 어기는 학생들을 정문에서 잡고 그랬어요. 종교부장도 했고요. 사회 나온 뒤에도 술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니까, 유혹의 기회가 차단되더라고요. 저는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표준전과> <동아전과> 같은 사람이라고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우리 실장님(매니저)은 ‘누나가 대상 타는 게 꿈’이라고 해요. 저는 솔직히 상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오랜 세월 MC를 했잖아요. 남의 얘기 듣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섭외 왔을 때도 ‘왜 나야?’ 싶었어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의 자리가 낯설어요.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흰머리 나고도 방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감각을 잃지 않고 트렌드와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건 ‘박미선 쇼’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좋지요. 하지만 유행이 지나갔다고 봐요.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면 굳이 이름 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나를 맞춰 가야지, 나한테 세상을 맞추라고 하면 교만이에요. 생각이 네모나면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다행히 저는 젊은 세대와 일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은퇴한다면, 박미선은 어떤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습니까.
“인생이란,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인생의 방향은 있지요.
“50 넘어가니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50에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주로 어디에 둡니까.
“전에는 무모하게 모든 걸 다 했다면, 지금은 잘할 수 있는 걸 합니다. 30년 넘게 방송을 하다보니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돼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됩니다. 시사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도, 예능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웃기는 게 제일 어려워요(웃음). 더 웃기고 싶은데…몸 개그는 안 되고, 개인기도 없어요. 대신 남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정리하고, 사회 돌아가는 일 전반을 파악하는 건 잘할 수 있으니까요.”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했는데요.
“그것도 조곤조곤 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유튜브는요.
“잘 안 되면 접을 수 있잖아요. 방송은 그만두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데요.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말했다. “저는 현실주의자예요.” 상쾌했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