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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몸을 공부하는 약사

한평생 나로 살고 있지만 진정한 나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약사 이영주 씨는 몸에 대해 책이 아닌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공부한다. 공부를 시작한 후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는 그녀의 이야기.

<신년특집, 공부하는 어른>


1. 난독증 극복한 중년 ‘공신’, 노태권 씨

2. 페미니즘 공부로 세상을 이해하는 대화 디자이너, 신호승 씨

3. 춤으로 몸을 공부하는 약사, 이영주 씨

‘움직여라!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움직임이라면 뭐든 좋다. 종류나 양이나 방식은 상관없다.’ 켈리 맥고니걸의 속 한 구절이다. 살아가면서 출근을 위한 발걸음, 인사를 위한 손짓이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한 움직임을 한 적이 있을까? 하루에도 수만 가지 동작을 취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위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영주 씨는 ‘컨택 즉흥’이라는 춤을 통해 행복을 위한 몸의 움직임을 공부한다. 컨택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이란 신체 간의 접촉을 통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즉흥 춤이다. 미국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스티브 팩스톤이 창안한 춤으로 ‘무용을 배우지 않은 배우가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현대무용의 한 장르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의 반응과 선택의 자유를 중시한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몸을 계속해서 접촉하고 교감하며 춤을 이어간다. 상대에게 의지한 채 몸을 맡기기도 하고 바닥에 몸을 비비기도 한다. 다소 낯선 춤을 추며 움직임을 공부하는 그녀의 직업은 약사다. 약학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전부였어요. 지금은 몸으로 경험하는 공부를 하고 있죠. 책으로 하는 몸에 관한 공부는 세포 단위부터 생화학적 차원까지 배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몸을 인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내 몸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해요.”

내면의 몸짓을 깨우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내면을 몸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춤 전공자도 아닌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공연 관람으로만 갈증을 해소해왔다. 


“10여 년 전에 캐나다 약사 준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했죠. 7개월 정도를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시험을 마무리하고 요가를 시작했어요. 요가가 저를 위한 첫 번째 움직임이었죠.” 


요가 수련으로 몸과 친해졌을 무렵 지인의 소개로 2년 전 컨택 즉흥을 접하게 됐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남녀 역할의 구분도 없으며 어떤 정형화된 포즈도 없이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을 따르는 춤이었다. 


“춤을 추다 상대와 마주했을 때 합의가 아닌 서로가 원하는 흐름을 따르는 거죠. 몸을 움직일 때는 근력만이 아니라 심리, 타이밍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해요. 그래서 움직이는 순간에도 여러 선택지가 발생하지만 고심해서 고르지 않아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고 싶은 행동을 취하죠.” 

컨택 즉흥을 만나고부터 몸의 움직임에 대한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영주 씨는 2년 동안 컨택 즉흥 수업을 빼먹은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공부는 집에서도 계속됐다. 움직임 관련 서적을 읽고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하며 몸의 감각을 키웠다. 몸의 움직임을 공부하는 것은 즉 나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평생 나로 살고 있지만 진정한 나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녀는 이 공부를 통해 남들과의 ‘소통’도 능숙해졌다고 한다. “남에게 관대해지고 기다릴 줄 알게 됐어요. 소통 또한 컨택 즉흥과 마찬가지로 상대는 물론 나 자신도 충분한 타이밍이 왔을 때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상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죠.”

중년은 다시 돌아온 공부의 시작점

모두 10년만 젊었어도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10년만 젊은 나이가 바로 중년일 수 있다. 중년의 공부는 마치 출발 전 설렘과 도착 후 즐거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여행지 같다. 그 여행지로 떠나기 위해서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잖아요. 보통 상황이 어렵거나 용기가 없어 마음속에 묻어두곤 하죠. 그런데 그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일 수 있어요. 중년이 된 지금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제가 해보니 다시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어려울 수는 있지만 불가능하진 않았어요.” 


그녀는 요즘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한다. 생각으로만 하던 일이 이제 시도해보고 싶은 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중년이 공부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덧붙였다. 쌓아온 인생 경험이 시너지를 발휘해 하고 싶은 일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 장혜정 이채영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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