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직업은 놀이처럼 재미나게
우리의 전통 놀이를 활용해 윷놀이지도사라는 일자리를 만든 조광휘 씨는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재미’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 답을 윷놀이에서 찾았다.
윷놀이지도사란 어떤 직업인가요?
잊혀가는 전통 놀이를 대중화해 새로운 놀이 문화로 승화시킨 창직 모델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 민속놀이인 윷놀이를 활용해 놀이 교육을 진행하는 직업입니다.
단순히 윷놀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윷놀이에 다양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입혀 새로운 놀이 문화를 보급하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윷놀이를 활용해 인성 및 창의성 교육을 합니다. 윷판에 다양한 흥미 요소를 넣어 윷놀이를 보급하는데, 지역 또는 모임 성격에 따라 윷판을 기획해 스토리를 담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역사, 문화 등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인문 소양을 쌓으면서 즐기는 놀이 교육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윷놀이지도사를 창직하게 되었나요?
27년 동안 일한 은행에서 퇴직 후 이전 경력을 밑천으로 재취업을 여러 번 시도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1년 계약직 형태이고 조직에서 요구하는 자격증과 경력 없이는 ‘달걀로 바위 치기’가 구직 시장의 현실이더라고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딱 80세까지만 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던 중에 KB 경력 컨설팅센터 퇴직 직원 직업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이후 금융 강사 1기로 스피치 기회가 주어졌는데, 저는 금융보다는 제가 평소에 자주 즐기던 윷놀이를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그때 제가 강사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됐죠.
적성과 좋아하는 일이 융합되니 결과가 좋았습니다. 제 강의 콘텐츠를 많이 좋아해 주었고, 다른 곳에서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재취업 대신 창직을 하게 되었죠.
일반적인 윷놀이와 다른가요?
직업이 되려면 새롭고 체계적인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통 민속놀이와 윷놀이에 관한 책을 모두 섭렵했고 윷판도 다양한 지역과 역사적 고증을 접목해 재미있는 스토리로 만들었어요.
또한 제가 만든 윷놀이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세세하게 살폈지요. 현재 24절기와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일대기, 훈민정음, 세계 철도역 등 17종의 윷판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접해 본 윷놀이에 반응이 대단했어요. 분위기를 띄우고 흥미를 돋우는 놀이를 넘어 창의성이나 인성 교육용으로도 손색없겠다는 평가가 이어졌지요.
새로운 직업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확인한 후 먼저 제가 만든 직업을 홍보하기 위해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제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윷놀이를 주제로 강의가 가능합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명함이 재미있네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호기심을 끌었으니 명함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죠.
창직 이후에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처음엔 저도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인생 2라운드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간다’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고 윷놀이 문화 보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 윷놀이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니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행도 빨라졌어요.
2019년에는 ‘DDP 어울림마당 문화놀이터’에 참가해 시민들이 함께 하는 윷놀이 행사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특히 외국인들도 금방 게임 규칙을 습득하고 재미나게 즐길 수 있어서 반응이 좋았죠. 이듬해에도 서울시가 주관하는 윷놀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요.
코로나19로 행사가 주춤해진 지난 몇 년간은 여러 노인복지관과 협업해서 어르신들이 윷놀이 관련 행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윷놀이 심판 & 건강 강사 양성 과정’을 만들어 강의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윷놀이를 매개로 청소년 대상의 창의성 교육이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기억력 향상 교육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윷놀이를 생각보다 많은 곳에 활용할 수 있군요.
규칙이 단순해 분위기만 조성되면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우수한 놀이 문화입니다. 또 윷놀이 강의는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어서 분위기를 잘 띄우는 외향적인 성격이면서 전통 민속놀이에 관심이 많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지난해 윷놀이는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죠. 아주 옛날부터 먼 미래까지 윷놀이가 지닌 재미 요소와 공동체적 즐거움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정신 건강과 여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윷놀이지도사는 전통 놀이 경험이 많은 시니어들의 직업으로도 그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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