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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통로를 걷다, 이집트 여행

이집트라는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먼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떠오른다. 파라오와 투탕카멘, 람세스 등 익숙한 이름들이 뒤를 잇고 카이로와 델타 그리고 나일과 사하라가 마지막으로 스친다.


사진을 통해 보았던 익숙한 장면들은 그저 눈동자 속에서만 맴돌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어른거리고 흩어진다. 제대로 마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실로 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 끝에서 날아오는 미세한 돌가루와 사하라의 저 편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마시고 카이로와 수에즈 시내를 걸으며 느끼는 그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온 사막의 신화를 듣는 것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의 길에는 모든 인류가 꿈꾸던 오래된 영혼과 염원이 스며있다.


이집트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집트를 보았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결국 그들은 영혼의 통로를 빠져나온 것, 그 신비하고 내밀한 노정이 가능한 유일한 곳은 지구 상 이집트 밖에 없다.

이집트 예습, 카이로 박물관

보통 낯선 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를 익히기 위해 거리를 걸어보곤 하는데 이번에는 도착하자마자 박물관부터 먼저 찾았다. 카이로의 모습보다는 이집트 역사를 관통하는 유물들을 먼저 보아야 이집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유물들을 총 집대성한 곳이 바로 이곳 카이로 박물관이지만 이집트를 대표하는 대다수의 걸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각국과 미국 도처의 박물관에 분산되어 있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집트 유물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와 영국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놀랍게도 이집트 유물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인 기원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집트에서 빠져나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런 방대한 컬렉션을 꾸밀 수 있다는 것. 수많은 세월 동안 해외로 밀반출되지 않고 그것들이 온전하게 모두 이 땅에 남아있었더라면 이집트라는 나라가 현재 어떤 식으로 변했을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만큼의 유물들. 이집션들이 아니, 온 인류가 필사적으로 지켜야할 대상, 그 커다란 숙제가 이곳에 담겨있다.


박물관 건물은 카이로의 중심인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1902년에 지어졌으며 외벽은 짙은 핑크색으로 마감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사막 끝에 여울지는 늦은 석양빛이 내리는 듯한 질감이었다. 이집트는 역시 사막의 아들이었다.

Info.

사진은 촬영이 허락되지만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물론 내부의 경비는 철저하다. 이집트 정부는 2016년 카이로 박물관 유물들에 대한 보관과 존치를 강화하기 위해 시내 다른 지역으로 이관을 확정한 바 있으며, 올해 모두 이전하여 새로운 장소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수십 개가 넘는 각각의 전시실과 보관실에는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과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 이집트 각 왕조의 왕과 왕비 미이라 십수 점과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의 유물들 13만여 점 이상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투탕카멘을 보며 나는 전시실을 나올 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집트의 얼굴인 그대 투탕카멘, 영혼의 통로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입구에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몽롱함에 빠져버린 나를 추슬러 관람을 마쳤음을 고백하며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 아침 조용한 시간에 홀로 와서 다시 재관람을 했음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실. 데자뷰에 현기증이 일면서 문득 아득해지는 순간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나는 과거 이집트의 한 시점에 와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카이로 박물관에 서있음을 끝없이 자각해야만 했다.


어느 작품 하나가 우선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 전부가 이집트의 것이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압권은 2층 전시실에 개별 전시되고 있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금빛으로 말갛게 칠을 하고 생동감 있는 눈동자와, 특유의 아주 옅은 미소로 박제되어 있는 어린 투탕카멘.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은 탄식과 탄성을 교차시키고 낯설고 묘한 표정들을 짓는다. 그것은 이제껏 보지 못한 사물에 대한 인간의 특별한 표정의 반응일 것이었다.


일찍 세상을 떴고 죽어서도 그 좁은 유리관에 갇힌 투탕카멘을 보며 나는 전시실을 나올 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집트의 얼굴인 그대 투탕카멘, 영혼의 통로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올드 카이로, 카이로 구시가지

박물관을 통해 이집트의 과거의 통로를 걸었다면 이제는 카이로의 과거의 통로를 걸어볼 시간,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가 미스르 알 아디마로 불리는 이곳 구시가지에서 최초 번성한 후 북쪽으로 이동하며 완성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사람들은 현재의 주거형태를 띠고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카이로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구시가지는 카이로의 옛 정취를 느낄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집트 고대 교회들이 있어 남다른 방문지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콥트(Copts : 이집트의 기독교 신자)지역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이슬람이 국교인 이집트에서 꽤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지켜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콥트교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아무르 모스크와 그리스 정교회, 유대교 등 이슬람 아래 갖가지 이집트를 지탱해 온 종교들이 모여 있는 곳. 종교적인 분쟁의 씨앗이 완전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구시가지라기보다는 그런 종교를 유연하게 풀어낸 이집션들의 너그러움이 스며있는 땅이다.


콥트 박물관은 지하철 마르 기르기스역 주변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 콥트 카이로 지역의 상징적인 방문지로 이집트의 토착 기독교인 콥트교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콥트교도들의 성지이다. 콥트어로 쓰인 성경책과 마리아상, 조각과 도자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콥트 관련 성물들이 전시돼 있지만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인 세인트 조지 수도원을 지나면 마치 오래된 유적처럼 보존되어 있는 로만 타워를 지나고 무알라카 교회로 이어진다. 로만 타워는 나일강이 지금의 흐름으로 바뀌기 전 나일강을 관리하고 통제했던 군사시설로 이 요새를 기준으로 카이로는 남북으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평온한 일상은 이 구시가지에 내려앉은 축복처럼 스며든다.


로만 타워 옆에는 '알 무알라카'라고 불리는 '공중 교회'가 있다. 무알라카는 아랍어로 ‘매달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에 솟아있는 종탑의 십자가, 그런 교회를 꾸미는 순백의 외관. 이슬람의 땅인 이집트에서는 분명 이질적이지만 아름답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공간이다.


교회 마당에는 천사 가브리엘과 사도 바울 등이 색색의 타일로 표현되어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교회 본당으로 연결된다. 교회 본당 입구의 이슬람 형식과 비슷한 문양은 낯섦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건네준다. 목조와 기둥으로 장식된 내부는 어느 종교시설과 마찬가지로 엄숙함과 경건함의 공간이며 8세기 이전부터 18세기에 이르는 110여 점의 이콘화들이 보존되어 있다.


다시 구시가지의 골목을 지나면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진 아기 예수교회로 연결되고 유대교의 '벤 에즈라' 시나고그로도 이어진다. 두 곳 모두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신성한 종교 시설에서 그것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


이제 다시 구시가지를 거닐 시간. 신성한 종교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라 평온한 일상은 이 구시가지에 내려앉은 축복처럼 스며든다. 호객은 타 관광지보다 심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자신들의 하루를 산다.


카이로의 혼잡함과 관광지에서의 번잡함에 다소 지쳤다면 카이로의 구시가지는 다른 여타 국가들의 구시가지보다 훨씬 덜 상업적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지만 또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곳, 카이로가 순수하다는 증거, 바로 구시가지이다.

재스민의 봄,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 신시가지 중심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혁명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름을 이어받았다.


2010년 말 튀지니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는 인근 이집트로 옮겨 붙은 후 알제리와 예멘, 요르단과 시리아 등 아프리카 북부와 아랍까지 불길이 번졌고 재스민 혁명이자 아랍의 봄을 이끌어낸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 결정적으로 불길을 피웠던 타흐리르 광장은 그래서 현대 이집트 민주화의 근거이자 상징처럼 남아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카이로의 모든 주요 볼거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아랍연맹 본부 역시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여행의 출발지점으로 삼는다.


지하철역인 사다트역으로도 바로 이어지며 박물관과 광장 건너의 여행자 거리로도 연결되는 타흐리르 광장. 카이로에 도착해 아무래도 낯설고 혼잡한 풍경을 그러나 의외의 평온한 모습으로 그나마 조금 누그러뜨려 주는 곳. 고르게 숨을 쉬며 언젠가 타오를 불길을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이집트에 영원히 남을 또 다른 카이로의 상징.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라는 뜻이다.

맥주의 원조, 이집트

맥주는 알코올 섭취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조금 의외다. 하지만 맥주의 양조기술이 처음 시작된 곳이 이집트라는 것은 이미 맥주 역사의 정설.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맥주로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고대 세계사에서 술을 가장 즐겨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현금이라는 뜻의 Cash가 이집트어로 맥주를 뜻하는 Kash에서 유래된 것은 맥주 역사의 숨은 이야기.


이집트에는 완벽하게 만족한 사람의 입은 맥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맥주에 관한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광장 근처의 로컬 펍 'El Horreya'는 카이로 시민들의 맥주 사랑을 엿볼 수 있으며 이집트를 대표하는 맥주인 스텔라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구수한 맛. 술은 그 나라 사람들의 성품을 닮는다고 하더니 딱 스텔라가 바로 이집션과 같은 모습이다.

이집트의 숨결, 나일강

이집트 전체를 관통하는 혈관. 유역 면적만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강, 나일. 나일은 아프리카 중동부 고원 지대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해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를 아우르고 에티오피아와 수단을 지나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끝, 이집트에 닿는다.


이집트 땅에 들어온 물은 지중해로 흘러들어가기까지 6,500킬로미터라는 장구한 물의 여행을 떠난 이후 외부로부터의 물의 유입 없이 온전히 이집트 나일의 물로만 지중해와 만난다.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칭함은 나일이 자신의 수많은 희생을 통해 카이로, 나아가 이집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지중해의 파란 물은 나일강이 이집트 땅을 흐르는 동안 수많은 온갖 탁하고 불순한 것들을 걸러내 주었기에 그토록 파랗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집트는 나일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나일과 함께하며 아마, 이집트가 생명을 다하는 아주 먼 미래에도 나일은 끝까지 이집트와 함께 할 것이다.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랫동안 이집트와 함께하고 있는 나일강. 묵묵하게 억만 년의 세월을 같이할 진정한 이집트의 심장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아닌, 그저 단순하게 흐르는 나일강일 터.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지구 상 가장 긴 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제1의 자리를 브라질의 아마존에게 넘기고 쉼의 영역으로 돌아간 나일강.


나일은 그렇게 아직도 태초의 그 흐름 그대로 천천히 흐르며, 처음에도 그랬듯이 카이로를 지금도 묵묵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집트의 어머니 나일, 나일의 숨 카이로 그리고 그 카이로의 곁 나일.

HOT SPOT

EL FISHAWY


예전부터 카이로 예술가들의 주요 회합 장소로 이름난 이곳은 엘피샤위라는 사람이 1733년에 문을 연 커피하우스로 시장 안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아랍권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기브 마푸즈'가 이 커피하우스의 단골로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이자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카이로 3부작’을 완성했다. 


이곳에서 물 담배 '시샤'를 피워보며 엘 깔릴리 시장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 소소한 풍경과 함께 퍼지는 시샤의 어른거리는 연기 역시 사막과 다르지 않은 이집트식 신기루.



EGYPT SOUVENIR

카펫


이집트 카펫은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고 역사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내의 카펫은 일반 상점들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흥정은 필수. 이집트에는 카펫 학교까지 있을 정도로 카펫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퍼퓸


고대로부터 이집트는 향이 유명했다고 한다. B.C 300년경에 이미 브랜드화된 향수가 있었을 정도. 원액은 적은 양으로도 풍부한 향을 내므로 종류별로 조금씩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집트의 향수는 치료 용도로도 쓰인다.


파피루스


'파피루스'는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는 초목으로, 가늘게 잘라 납작하고 세밀하게 눌러 얇은 종이로 만든다. 세계 최초의 종이책으로 알려진 ‘사자의 서’는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로 쓰인 두루마리 책.

카이로의 꽃, 칸 엘 깔릴리 시장

엘 깔릴리는 카이로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카이로 시장이라고도 불리며 아랍권에서는 터키의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가장 큰 시장.


1382년 무역 대상들을 위한 숙소(칸은 페르시아어로 대상의 숙소)를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당시 이집트를 정복하고 카이로를 세운 파티마 왕조의 영묘가 있는 곳이라 카이로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땅이라 여겨진다.


역사가 무려 630년이 넘지만 실제 기록되지 않은 이 장소의 과거 역할까지 더하면 그 역사는 충분히 더 올라간다. 무려 1,500개가 넘는 상점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이곳에서 모든 카이로 사람들의 생활이 시작되고 또 이집트 전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물품이 거래된다. 형형색색의 물건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소소하고 치열한 축제. 이는 분명 카이로가 이방인들에게 건네는 꽃다발이라 칭할 만하다.


카이로 사람들은 이 깔릴리 시장을 종종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다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의 이슬람 문예부흥운동인 '알 나흐다'의 근거지가 이곳이었으며 많은 수의 예술가와 학생들이 사회와 종교에 대해 밤새 격론을 벌였던 아고라이자 몽마르트가 바로 엘 깔릴리였다.


시장은 다소 혼잡하다. 골목으로 나오면 또 다른 골목이 이어지고 어딘가에서 스쳤던 사람들과 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며 미로와 같은 골목들은 혈관과도 같은 작은 길들로 촘촘하게 퍼져 나간다. 시간이 있을 경우 시장은 해질 무렵에 방문하는 것이 더욱 좋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이 되면, 한낮의 치열했던 흥정과 거래가 끝나는 시간이기에 상인들은 이제 좀 더 여유로움을 찾고 또 방문객은 그만큼 느긋하게 시장을 들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랍풍 상품들과 이집트 고유의 향신료와 제품들이 시장 안에 가득하지만 깔릴리 시장에서의 흥정은 필수이자 시장의 미덕.


이 지점에서 진짜 카이로 사람들과의 접점이 생기고 그제야 유적과 유물에 집중했던 이집트를 한걸음 뒤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관광지에서 보였던 호객꾼들의 상업적인 미소가 아닌 진짜 카이로 사람들의 가감 없는 얼굴을 보게 되는 곳. 어쩌면 이집트의 진짜 영혼의 통로는 바로 엘 깔릴리의 골목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피라미드

4,500여 년 전, 높이 147미터와 각 밑변의 길이 230미터 그리고 평균 2.5톤의 석회암과 화강암 230만 개로 쌓아올린 지구 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 카이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3킬로미터의 거리. 우리는 그저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 절정의 영험한 건축물에 대한 대단한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피라미드는 그 자체, 무엇과도 같은 선에 나란히 설 수 없는 오직 단 하나, 바로 그것이다. 피라미드는 건축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종교이며 높디높은 하늘이고 광활한 우주임과 동시에 우러러보고 믿으며 의지하는 전지전능한 당신이다.


지구상에 이런 건축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물론 그래서도 안된다. 불가능과 기적 그리고 완벽한 실제와 영원한 환상의 집합체, 피라미드. 피라미드를 바로 앞에서 본다는 것. 이제 당신은 진짜 영혼의 통로 앞에 서 있는 것.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들은 이곳에서 잠들고 영생의 삶을 얻은 후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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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스핑크스에 새겨진 이름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우며 오래된 듀엣. 스핑크스는 기자 피라미드 세 개 중 가운데에 위치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남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절대적인 권력이자 상징인 피라미드 앞에 스스로 영원히 머물기를 바랐던 것일까, 스핑크스는 피라미드 앞에서 70미터의 길이와 높이 20미터의 모습으로 스스로 박제가 되어버린 채 오랜 세월을 기꺼이 피라미드와 함께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왕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한다는 스핑크스의 모습은 단순히 몇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현세의 모나리자가 그토록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닌다면 스핑크스의 얼굴은 모나리자가 표현해 내고 있는 그림 속의 눈동자와 수많은 물감으로 덧칠된 색깔 등의 부수적인 재료 없이도 이토록 충분히 오묘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무수한 풍화에 깎인 얼굴은 정확하게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본 모습을 잃어오고 있으나 오랜 시간동안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얼굴에서는 극도로 무표정하되, 자신의 허락 없이는 피라미드에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엄숙한 결의마저 느껴진다.


언젠가 피라미드 속에 잠들고 있는 파라오가 부활해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제야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날 뿐이라고 스핑크스는 굳게 꼭 다문 입술로 이야기한다. 영원히 남아 사라지지 않을 스핑크스. 불멸이란 이런 것이다.

최초의 피라미드, 사카라

사카라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한편에는 허허한 사막 벌판과 그 반대편엔 무성한 야자수로 숲을 이룬 오아시스 사이에 나타난다.


사카라 피라미드가 위치한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정서 방향에 위치해 오랫동안 왕가와 귀족들의 장례를 집행했던 도시. 이 장구한 역사의 이집트에서, 그토록 장대한 크기의 기자 피라미드를 제치고 이집트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입구를 통과해 굵은 열주들이 늘어서 있는 회랑을 통과하면 사카라 피라미드 부지에 들어선다. 반듯하고 세련되며 엄정한 사선으로 곧게 내려오는 기자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사카라의 피라미드는 계단형으로 현재 이집트 전역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80여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독특한 형태와 외관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6층 높이인 사카라는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이른 시기인 기원전 2,660년경에 지어졌으며 높이 62미터에 밑변은 123미터와 109미터. 물론 이 피라미드의 지하에도 많은 비밀이 숨겨진 채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신비감은 어느 곳들과 다르지 않다.


발굴과 보수 공사를 동시에 하는 까닭에 피라미드의 모습은 공사 재료들이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본 형태는 짐작될 만큼 유지되어 있어 충분히 독특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카라 피라미드. 영화 등을 통해서 익숙해진 이름인 이모텝이 바로 이 사카라의 최초 설계자이자 최종 검수자였다.


주변에 허물어진 10개 정도의 다른 피라미드들이 산재해 있어 현 시대의 말로 바꾼다면 ‘피라미드 파크’로 불러도 좋을 곳. 이곳은 세상 모든 피라미드들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그래서 모든 이집트 피라미드들의 가장 오래된 요람이다.

TIP.

'이모텝'은 기원전 2,650년에서 2,600년 사이에 살았던 학자이자 내과의사, 건축학자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건축과 지혜의 신, 의학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3,000년 이집트 역사에서 사후 신으로 추앙받은 경우는 이집트의 왕들인 파라오와 이모텝이 유일하며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인으로 묘사된 것은 상술에 기인한 결과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빛과 소리의 쇼, 피라미드 야경

어둠이 내린 가운데 차 소리도 잦아들고 사방이 온통 고요해진 밤에 다시 피라미드를 찾았다. 어쩔 수 없이, 마치 피라미드에서부터 거대한 끌림이 작용하는 듯 사람들의 동선은 밤의 피라미드로 향한다.


빛과 소리의 쇼라고 불리는 피라미드의 야간 공연. 사람들은 낮 시간에 피라미드에서 보았던 인파에서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북적이지 않은 곳에서 피라미드를 감상한다는 것.


세팅은 완벽해졌다. 8시, 쇼가 시작되고 이후 약 30분. 멀리 세 개의 피라미드가 스핑크스를 앞에 두고 갖가지 화려한 색의 조명을 받은 채 음악을 덧붙이고 또 이야기를 칠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클레오파트라와 람세스가, 또 쿠푸와 메네스 등 수많은 파라오들이 수시로 역할을 바꾸고 시공을 초월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일강의 물은 풍요롭게 넘쳤다가 다시 말랐고 사막에는 가녀린 초승달이 떴다 구름 속으로 다시 잠겼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깊고 깊은 오래된 역사와 아주 멀리에서 온 신화 속으로 빠져 들었다.


사막의 밤 추위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광막하고 아득하며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우주에 다녀온 것 같은 시간. 어둠을 배경으로 오롯이 세 개의 피라미드가 솟아올라 벌이는 피라미드 연대기. 쇼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쓸쓸한 뒷모습은 그들이 어떤 정점을 보고 갔기 때문일 것.


피라미드를 낮에만 본 사람은 분명 인생에서 하나의 실수 또는 후회를 할 것이다. 또 다른 피라미드 하나를 완전히 놓치고 가는 것이니 말이다. 피라미드 2부작 중 마지막 편을 못 본 셈. 그것은 피라미드에 대한 감상의 완성이 아니다.

카이로를 지켜온 심장, 시타델

카이로를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아랍어로는 '승리의 도시'라고 불리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또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이름도 있다. ‘천 개의 미나렛(첨탓)을 가진 도시’라고도 불릴 정도로 크고 작은 모스크가 산재해 있는 카이로는 수백 년 간 다양한 이름을 얻으며 발전해 이집트를 넘어 항상 이슬람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탐험가이자 전 세계 모든 여행자들의 원조라고보아도 좋을 모로코 출신의 '이븐 바투타'는 자신의 오랜 여행 기간 중 카이로에서 따로 시간을 내 한 달을 살았던 적이 있다. 카이로에 들어온 이상 바로 이곳을 스쳐 지나갈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카이로 남동쪽의 '무카탐' 언덕에 세워진 시타델에서 카이로를 바라보면 느낄 수 있는 단순하고 당연한 결과이다.


시타델은 1176년부터 1238년에 걸쳐 건설된 요새로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이집트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 세워졌다. 1860년대에 카이로 중심부에 위치한 '압딘 궁전'으로 정부가 이전되기까지 오랫동안 이집트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타델은 30미터 높이의 견고한 외부 성벽으로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시타델의 정문인 아자브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면 먼저 '알 나세르 모하메드 이븐 콸라운' 모스크가 보인다. 14세기 초 당시 술탄이었던 알 나세르가 그들의 금요 예배를 위해 특별히 지은 이 모스크는 단순하고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는 기둥들로 모스크를 곧고 바른 공간으로 만든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가지는 행동들은 이런 절제된 정경에서는 당연한 반응. 단순한 기둥들과 넓은 마당으로 이토록 정갈하고 경건한 공간을 꾸미는 곳은 지구 상, 모스크 밖에 없다.


카이로에 있는 모든 모스크들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시타델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도 보인다는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비교적 현세인 19세기 초에 세워졌다. 모스크를 표현하고 있는 뾰족하게 높이 솟은 2개의 연필 모양은 이집트에서도 이곳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이집트 화폐 20파운드에 도안이 될 정도로 이집트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성벽을 따라 다시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복장 규제는 크기에 관계없이 모스크를 방문할 때는 당연한 절차. 신발은 벗어야 한다.


전체적인 모습은 19세기에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내부는 곳곳에 켜진 샹들리에 전등과 바닥에 깔린 붉은색의 카펫과 조화를 이루어 웅장하고 경건하다. 이슬람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돔 천장은 확실히 아야 소피아를 연상시킨다. 이 방대한 공간을 고작 몇 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우선 믿기지 않는다.


알 나세르 모스크와는 달리 알리 모스크에서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로운 모습이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과 가족들과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스크와는 달리 자유롭게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이곳. 아마 당시 카이로의 왕이었던 알리가 그렇게 지시했을 것이다.


모스크에서 나오면 카이로 시내가 사방으로 펼쳐지고 앞에는 카이로에 있는 이슬람 사원 중 가장 아름답다는 술탄 하산 모스크와 사막 도시인 카이로에 초록의 공기를 불어넣는 '아즈하르' 공원도 보인다. 이곳에서 카이로 전체를 호령했을 알리와 더 옛날 카이로를 담았던 이븐 바투타가 동시에 스치며 그들도 똑같이 느꼈을 이런 생각이 미친다. 카이로는 위대하다고.

카이로 시네마, 카이로 타워

카이로 타워는 나일강이 흐르는 강 가운데 있는 게지라섬에 위치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도보로 15분. 187미터의 높이로 타워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으며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45미터나 더 위에 있어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여겨진다.


카이로 시내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웅장하고 높이 솟은 타워는 마치 모든 것이 평평한 사막에 홀로 솟아나 대지를 비추는 등대처럼도 보인다. 관광명소라기보다는 거대한 상징에 가깝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작품이라고 칭해도 좋을 만한 카이로 타워. 1956년에 착공해 1961년 완성했으므로 55년이 넘은 건물이다. 외관은 연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특유의 아랍식 패턴으로 형상화되었으며 심플하지만 무척 현대적인 모습이다.


카이로의 아름다운 어둠을 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이 척박하고도 마른 사막의 땅에서 수천 년을 질기게 살아온 위대한 도시 카이로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카이로의 매연이 어느 정도 걷혀진 해가 질 무렵이 적당하다.


정상까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안내를 해주고 외부로 나있는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드디어 카이로의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셈. 거친 바람이 불어오지만 분명 이 바람은 사막의 어느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일 것이기에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해가 진 후 카이로의 어둠은 시내 곳곳에서 켜진 점점의 불빛들을 안고 찬란하게 등장해 한순간에 모든 사람들을 이 카이로 시네마에 몰입시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오고 그 소리들이 바람 소리와 섞여 하나의 심포니로 이어지면 드디어 이 영화는 종반부. 멀리 보이는 수억 개의 카이로 불빛들이 반딧불이처럼 춤을 추고 이제 카이로가 더 깊은 시간 속으로 잠기려 할 때. 엔딩 크레딧이 뜨며 하루를 닫고, 카이로의 밤은 드디어 시작이다.

TIP.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어준다는 사람은 '박시시(약간의 금전으로 기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 원하지 않으면 거절하는 것이 좋다.

지중해와 홍해 그 사이, 수에즈

수에즈는 무엇보다 홍해 바다를 볼 수 있고 대규모 운하인 수에즈 운하와 인접하며 척박하고 황량한 북아프리카의 사막지대를 지날 수 있어 카이로에서 한나절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수에즈는 이집트에서 여섯 번째 큰 도시로 카이로의 작은 버전처럼 카이로를 축소해 놓은 느낌을 준다. 홍해는 수에즈를 기점으로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고 지중해로 이어진다. 붉은빛을 띠어서 불리는 이름 홍해.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부르면 그대로 붉은 바다라는, 조금은 느낌이 다른 이름이 나온다.


홍해의 최대 깊이는 무려 이천 미터. 홍해는 아프리카와 아랍 국가들에서는 따로 이 바다로 흐르는 강이 없기에 온전히 바닷물로만 이루어져 있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염도를 지닌 바다로도 알려져 있다.


홍해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시나이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방향의 수에즈 만과 아랍 땅으로 향하는 아카바만으로 다시 나뉜다. 수에즈에서 시작되는 운하 물길 192킬로미터를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손을 잡았고 또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어 온 것이다.


막상 마주한 홍해는 분명 이집트의 모래가 섞여 바다가 붉은 색을 띨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완전히 시각적으로 반대의 풍경을 펼쳐주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된 홍해는 때때로 은빛이거나 가끔 금빛처럼도 보였고 지중해보다 더 파랬다. 이 반짝이며 빛나는 착시를 마음껏 펼쳐준 홍해. 이집트가 지니고 있는 두 아들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라면 홍해와 지중해는 이집트의 두 공주님. 이집트는 이로써 모든 것을 다 가진 셈이다.



수에즈 운하


1869년에 개통된 총 길이 163킬로미터의 대규모 운하. 현세에 건설된 것이지만 수에즈 운하의 최초 착공 시기는 무려 기원전 7~6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에즈 운하는 매일 평균 100여척과 연간 2만여 척 이상의 선박이 지나가며 전 세계 물동량의 14%를 소화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폐쇄되지 않는 국제 수로.


TIP.


현재 홍해는 전 세계의 모든 다이버들이 최고의 다이빙 스폿으로 꼽는 지역이다. 사름 엘 셰이크, 후루가다, 다합 등 다이빙명소들이 모두 홍해 주변에 몰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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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아프리카와 아랍 그리고 바다 건너 유럽의 음식까지 모두 조금씩 닮아있다. 고대부터 세계 무역의 핵심이었던 까닭이다. 기본적으로 심플한 건강식이며 더운 나라이고 사막 기후인 점을 생각해 볼 때 생각보다 많이 짜지 않아 부담이 없다.



호무스(Hummuns)


슈퍼 푸드로 주목받고 있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이슬람권 국가들의 대표적인 소스. 이집트에서는 식사 때마다 다양한 소스를 곁들이는데 호무스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


팔라펠(Falafel)


병아리콩을 으깨 만든 작은 크기의 이집트식 고로케로 대부분의 중동 지역 국가들과 멀리 인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콥트인들이 그 시초라는 설이 있으므로 이집트가 원조라 할 수도 있다.


쿠사리(Kushari)


이집트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삶은 면과 마카로니에 옥수수콩과 튀긴 양파를 뿌리고 토마토소스를 버무려 낸다. 한국인들 입맛에 매우 잘 맞지만 열량이 높은 것은 함정. 가격은 1달러 정도이다.


케밥(Kebob)


얇게 썰거나 다진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을 숯불에 구워 낸 요리로 긴 꼬치에 꿰기도 하지만 화로에 구워진채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터키 음식이지만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연인인 시저가 먹었던 요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생선요리


이집트는 지중해와 홍해는 물론이고 나일강까지 품고 있어 유달리 생선요리가 발달했다. 물이 귀한 사막 지대인 탓에 끓이거나 삶은 요리보다는 굽거나 튀긴 생선 요리가 주이며 레몬즙을 짜서 풍미를 더하고 이집트 빵인 쿱즈와 곁들여 먹는다.

INFORMATION

- 전압과 시차 : 전압220V, 50Hz / 한국과 -7시간

- 비자 : 일반 비자는 이집트 한국대사관을 통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 도착비자는 공항에서 25달러로 구입이 가능하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 변수가 많다. 비자의 기본적인 체류 기한은 한 달.

- 환율 : US 1달러 기준 18이집트 파운드 정도로 작년 초보다 반 이상이 하락했다. 현재가 이집트 여행의 최적기.

- 치안 : 작년 미국 정부는 이집트 여행의 등급을 ‘SAFE’로 평가한 바 있다. 밤 시간 위험지역만 아니면 대체적으로 치안은 많이 양호해진 편.

- 언어 : 아랍어가 공용어이며 일부 지식층과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통용된다.

- 종교 : 이슬람의 양대 교파 중 하나인 수니Sunni파가 90% 이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7%~10%는 콥트 교회Coptic Church신도이다.

- 기후 : 전 국토의 96%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열대성 사막 기후이지만 습도가 30% 이내로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쾌적하다.

- 교통 : 카이로 시내의 대중교통 체계는 많이 혼잡하다, 횡단보도는 없으며 차선도 잘 지켜지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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