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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 한채진이 30년 농구한 썰 푼다

초등학생 시절 “농구 해볼 사람?”이라는 한마디에 끌려 농구공을 잡게 됐을 때, 한채진(39, 174cm)은 알았을까. 농구를 30년이나 할 거란 걸, WKBL 최고령 선수가 될 거란 걸 말이다. 한채진은 ‘미녀슈터’라 불릴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에 정교한 슈팅능력을 지닌 선수다. 노련미가 더해지면서 현재는 탁월한 수비력까지 갖춘 만능선수로 프로무대에서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역대 최다 타이인 3차례 모범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모범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어떻게 운동하냐고 할 정도예요. 저는 운동선수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한다. 그럼에도 한채진이 WKBL 최고령 선수가 될 때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레알 신한’ 떠나 금호생명으로…신의 한 수였다

한채진은 신한은행의 창단 멤버였다. 신한은행이 현대를 인수했던 2004년 당시 햇수로 프로 2년 차 새내기였다. 한채진은 신한은행에서 비교적 꾸준히 경기에 투입됐지만,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진 못했다. 신한은행은 스타가 즐비한 팀이었던 데다 후배 최윤아도 한채진보다 빨리 자리를 잡았다. 기회에 목말라 있던 한채진은 데뷔 후 첫 FA 자격을 취득한 2008년에 모험을 택했다. 이 선택은 한채진의 농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농구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체육부장이었어요. 담임선생님 따라서 성덕여중-여상에 견학 갔는데 마침 농구부원을 뽑더라고요. 키 크거나 빠른 사람들이 뽑혔는데 저도 같이 가서 구경하다가 시작하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농구부에 들어간 건 4학년이었고, 5학년부터 실전에 투입됐죠. 벌써 농구 한 지 30년 됐네요. 처음부터 오래전 얘기로 시작하네요(웃음).


농구선수를 하기 전 꿈은 무엇이었나요?

딱히 장래 희망이라고 할 게 없었어요. 그냥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정도였죠. 뛰어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운동선수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저는 기억 안 나는데 엄마가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는 말씀은 하시더라고요. 규칙도 잘 모를 나이에 코트 들어가면 상대 넘어뜨리고 그랬대요. (성덕여상 농구부는 졸업 직후 사라졌는데?)그래도 학교 가면 여전히 제 사진이 걸려있더라고요.


2003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현대에 선발됐습니다. 당시 기분은?

요새는 하루 전 트라이아웃도 하지만, 그땐 선수들이 드래프트 현장에 있던 게 아니었어요.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시절이었죠. 또 라떼 얘기네요(웃음). 벌벌 떨면서 연락을 기다렸어요. 사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프로에 갈 수 있는 선수가 어느 정도 나눠지긴 하잖아요. 프로에 갈 거란 기대는 했지만, 순위나 팀은 모르고 있던 상태여서 전화로 소식 들은 후 울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23명이 뽑혔지만, 선발되지 못한 선수도 엄청 많았어요. 그만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저변이 줄어든 거죠.


2008년 FA 취득 후 금호생명과 계약했습니다. 돌아보면 이때의 선택이 선수 생활을 하는 데에 굉장히 큰 터닝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신한은행 창단 멤버였지만, 당시 팀 별명이 ‘레알 신한’이었잖아요. 좋은 선수가 워낙 많았죠. 선배들뿐만 아니라 (최)윤아, (김)연주, (최)희진이 등 신예 가운데에도 잘하는 선수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뛸 기회가 적었고, 경기를 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저 자신을 믿고 (FA 시장에)나갔어요. 연봉을 떠나 ‘무조건 뛰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뿐이었죠.


신한은행에 남을 가능성은 없었던 건가요?

없었어요. 짱짱한 언니들이 너무 많은 팀이었잖아요. 주원 쌤(전주원 우리은행 코치)도 있어서 경기 뛰는 건 엄두도 못 냈죠. (만약 팀을 옮기지않았다면?)그래도 끝까지 버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을 것 같긴 해요.


금호생명으로 이적한 2008~2009시즌부터 단숨에 주전이 됐습니다. 금호생명도 강팀으로 변모했고요. 경기력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상윤 감독님, 김영주 코치님, 김익겸 선생님(트레이너)이 있던 시절인데 훈련량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런데 훈련하면 할수록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오프시즌에 엄청난 체력훈련을 소화하고 연습경기를 치르다 보니 스스로 ‘준비가 됐다’란 느낌이 들었죠. 그땐 저뿐만 아니라 (이)언주 언니, (신)정자 언니, (이)경은이 모두 젊은 시절이었죠. 선생님들이 워낙 무서우셔서 선수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과가 안 나오면 훈련이 계속 안 끝날 때도 있었으니까요. 요새 후배들에게 “지금 훈련하는 건 많이 하는 것도 아니야. 더 열심히 해야 돼”라고 말해주기도 해요.


‘WKBL의 금강불괴’로 불립니다. 2012~2013시즌에는 전 경기를 뛰면서 평균 39분 3초를 소화했어요. 체력 관리의 비결은?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진짜 솔직히 말해서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잘 쉬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제가 생활 체력은 없어요.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건 괜찮은데 지하철 타러 걸어가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죠. 친구들 만나서 여행가거나 조금이라도 돌아다니면 잠깐 쉬면서 뭐라도 먹어야 해요. 친구들도 어떻게 운동하냐고 할 정도예요.


따로 챙겨 먹는 보양식이나 보조식품은 있나요?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먹는 비타민 정도예요. 저 말고 경은이, (김)보미가 진짜 잘 뛰어다니는 스타일이죠. 저는 운동선수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코트 안에서 강해지는 게 있어요. 승부욕! ‘해야 한다’라는 의지도 강한 편이죠. 금호생명뿐만 아니라 예전 신한은행 시절도 훈련이 힘들긴 했어요. 주원 쌤이 직접 훈련을 가르쳐주기도 했죠. 주원 쌤은 당시 최고의 선수이기도 했지만 저에게 최고의 코치님이었어요. 젊은 선수들에게 가장 어려운 건 공격할 때 동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거예요. 동료가 공격하는 걸 방해하지 않아야 하는데 주원 쌤이 볼 없는 움직임에 대해 알려주신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위성우 감독님이 당시 코치였는데 그때도 수비를 잘 가르쳐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진)미정 언니에게도 많이 배웠고요. 미정 언니를 죽어라 따라 다니다 보니 수비도 나아졌던 것 같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승부욕이 정말 강한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게임을 안 해요. 시작하면 끝까지 다 깰 때까지 해야 하거든요. 후배들이 추천해준 게임 시작했다가 못 깨서 신경질 난 적도 있고 휴가 때 밤샌 적도 있어요. 그래서 애초에 시작을 안 하려고 해요. 드라마도 종영하면 그제야 한 번에 몰아서 봐요.


별명이 ‘미녀슈터’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당시 신한은행에 (강)영숙이 언니, 연주, 윤아 등 미녀가 많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 이름도 조금씩 언급됐던 것 같아요. 금호생명에서 ‘미녀슈터’로 테마곡까지 만들어주셔서 별명이 더 알려졌는데 제가 이름을 알린 첫 무대는 올스타게임이었어요. 2005 여름리그 당시 (김)은혜 언니의 슛 컨디션이 워낙 좋았는데 제가 은혜 언니를 꺾고 올스타게임 3점슛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어요. 그러면서 이슈가 됐고, 슈터 이미지도 생겼죠. 제가 노력해서 이룬 부분도 있지만, 저는 시대를 잘 타고난 덕도많이 본 것 같아요. 잘 가르쳐준 선생님들도 있었고, 운도 따랐죠.


3점슛 타이틀도 몇 차례 따내 슈터로 각인됐지만, 사실 한채진 선수는 수비 공헌도도 굉장히 높은 공수 겸장입니다. 맥을 짚으며 스틸 하는 능력도 탁월한데 비결이 있다면?

어릴 땐 수비를 못하면 경기를 못 뛰었어요. 옛날 선생님들은 수비를 잘해야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저도 수비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요. 슛은 기복이 있지만 수비는 기복이 없거든요. 수비나 리바운드는 스스로 하는 만큼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미선 코치님처럼 노려서 스틸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노력하다 보니 볼이 걸리는 거죠. 생각해보니 현대 시절에 (김)영옥 언니에게도 뺏는 수비를 배웠네요. 볼이 위로 올라오기 전 스틸하는 노하우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저도 후배들이 가르쳐달라고 해서 나름대로 알려주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하네요.


한채진이 그리는 마침표

한채진은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국가대표부터 다양한 타이틀 홀더, 최고령 기록 등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커리어를 이어왔다. 한때 은퇴를 고민한 시기도 있었지만, 친정 신한은행으로 돌아와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데뷔 20주년이 됐다. 언제까지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아쉽게도 선수 한채진의 농구 인생은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에서 어느덧WKBL 최고령이 된 한채진. 그가 그리는 선수로서의 마침표는 어떤 모습일까.


KDB생명으로 간판이 바뀐 이후 한동안 중상위권을 유지했지만, 2011~2012시즌을 끝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선수여서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 KDB생명은 2012~2013시즌부터 해체 전인 2017~2018시즌까지 6시즌 동안 4차례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57승 153패 승률 .271에 그쳤다.

포기한 경기는 없었어요. 언니들에게 의지할 수 있었고, 젊었으니까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꼴찌 하면 너무 힘들죠. ‘우린 진짜 안 되는 건가?’, ‘해도 해도 안 되네’라는 생각에 심적으로 지치게 돼요. 지금 나이에 그렇게 많이 졌으면 더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KDB생명은 해체 소문이 끊이지 않는 팀이기도 했는데?)슬펐죠. 금호생명으로 이적한 후 팀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KDB생명으로 바뀐 이후에도 진짜 열심히 뛰었어요.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이만큼 선수 생활을 했는데 이제 막 프로에 온 선수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란 생각에너무 슬펐어요. 자라는 새싹들이었으니까요. 슬퍼하는 모습이 아직도 영상으로 남아있어 창피하네요(웃음).


2018~2019시즌은 WKBL이 위탁 운영한 OK저축은행 소속으로 치렀습니다. OK저축은행은 예상을 깨고 4위에 올랐지만, 시즌 종료 후 은퇴를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었는데? ※ BNK썸은 2018~2019시즌 종료 후 농구단을 창단, OK저축은행 선수단을 흡수했다. BNK썸 창단 후 첫 트레이드 대상이 한채진이었다. BNK썸은 한채진을 신한은행에 보내며 2020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 한채진이 트레이드된 것에 대해 많은 설이 떠돌기도 했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 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티 안 내고 말도안 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말할 수 있는 게 경기를 안 뛰던 선수도 아니었는데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 상황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받아들여야 했죠. (조)은주 언니 은퇴하는 걸 보며 은퇴 고민도 했어요. ‘지금까지 농구를 어떻게 해왔는데 이렇게 은퇴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신한은행에 돌아온 이후에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농구를 하고 있어요. ‘아, 이 팀에 돌아오기 위해 그런 상황이 생겼던 거구나’란 생각도 들더라고요.


창단 멤버였던 신한은행으로 돌아올 당시에는 어떤 각오였나요?

저를 다시 받아준 팀이잖아요. 누가 저한테 “운명이다. 마지막을 잘 보내라고 데려온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신한은행 이적 후 첫 시즌이 농구를 제일 재밌게 한 시기였어요. 어릴 때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프로 데뷔 후에도 워낙 잘하는 선배들과 뛰다 보니 제 거 하기 바빴고 ‘틀리면 안 돼. 나만 잘하면 돼’라는 압박도 있었어요. 연차가 쌓이면서 길을 조금씩 알게 됐는데 신한은행에 돌아오니 (곽)주영이, 경은이, (김)단비 다 있더라고요. 함께 의견 공유하며 재밌게 경기를 치렀어요. 이기면 더 좋았고요. 그래서 2019~2020시즌은 제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신한은행은 항상 약체라는 평가 속에 시즌을 시작했지만, 늘 평가를 뒤집었습니다. 김단비(우리은행)가 이적한 후 맞은 올 시즌도 마찬가지고요. 신한은행이 지닌 힘은 무엇일까요?

단비가 있을 때까진 언니들이 예전부터 해왔던 게 있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잘 맞았죠. 올 시즌은 선수가 많이 바뀌었어요. (김)진영이, (김)소니아, (구)슬이 모두 다른 팀에서 왔죠. 호흡이라는 건 몇 개월 맞춰본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몇 년을 맞춰봐도 안 될 수 있는 거고요. 우리 팀 역시 여전히 맞춰가는 과정인데 서로 얘기하고, 감독님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그게 코트에서 이뤄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길 수 있는 힘도 생긴 것 같아요. 특히 2월 9일 KB스타즈전은 너무 놀라운 경기였어요. 제가 경기도 많이 뛰어보고 이런저런 경험도 많이 해봤지만 그렇게 기뻤던 경기는 손꼽을 수 있어요. 원래 기뻐도 티 안 내는 편이에요. 표정 관리도 잘하고요. 그런데 그날은 소니아가 위닝샷 넣었을 때 부둥켜안고 감정 표현을 다 했어요. 저를 비롯한 주전들뿐만 아니라 젊은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이 하나로 뭉친 덕분인 것 같아요. 그 경기를 통해 신한은행은 또 한 단계 성장하는 팀이라는 느낌도 들었죠.


WKBL 최고령 기록도 세웠습니다.

그런 기록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노력해서 지금까지 선수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만 할 뿐 기록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고요. 물론 최고령 기록 세우기 하루 전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훈련 도중 진영이와 부딪쳐서 눈이 밤탱이가 됐거든요(웃음).


한국 나이로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거라는 건 데뷔할 때도, 전성기 때도 당연히 생각 못한 일일 것 같아요.

20대에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었어요. 맥시멈이라고 해봐야 35살 정도로 생각해왔죠. 저도 이 나이까지 뛸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최근에는 감독님이 훈련을 조절해주신 덕분에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KBL은 아이라 클라크의 만 44세 5개월이 최고령 기록입니다)히익~! 안 돼. 그건 안 돼(웃음).


남은 선수 생활의 목표는?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농구를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단 오래 해왔던 선수 생활이 끝나는 것에 대한 허전함이 더 클 것 같아요. 언젠가는 다가올 일일 텐데 준비는 되어있어요. 다치지 않고 마무리했으면 해요. 아킬레스건 수술, 발목 뼛조각 제거 수술을 제외하면 큰 부상이 없었다는 데에 감사하고 있어요. “네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할 수 있었던 건 건강관리를 잘했기 때문이야”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다치고 싶어서 다치는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어린 나이에 다친 선수들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한창 배워야 할 시간에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거잖아요.


올 시즌이 끝나면 다시 FA 신분이 됩니다. 시기상 이른 데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아요.

2살만 어렸으면 더 하겠다고 얘기할 텐데 아직 생각 중이에요. 또 다른 인생도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만둔다 해도 농구에 대한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출전시간만 몇 분이야…. 승부욕을 끌어 올려준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보고 배울 수 있는 언니들도 많았죠. 그게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언니들이 많지 않은 시대예요. 또 라떼 얘기하게 됐는데(웃음), 제가 젊었을 때는 신예들이 경기를 많이 뛰면 시기와 질투를 받았어요. 요새는 그런 거 없잖아요. 후배들 보면 실수해도 마냥 예뻐 보이고 아기 같아요. 농구 못한다고 혼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예의 없는 모습 보일 때만 한 소리 해요. 아, (변)소정이한테는 엄청 뭐라고 해요. 갖고 있는 능력이 저렇게 많으면 더 욕심내서 해도 될 것 같거든요. “네 공격 더해”라면서 자신감을 심어주려 하고 있어요. 물론 받아들이는 건 선수의 몫인 것 같아요.


벤치멤버 시절이긴 하지만, 신한은행을 떠나기 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2차례 경험했습니다. 김보미(전 삼성생명)처럼 우승하며 떠나는 게 최고의 은퇴일 텐데?

우승이라는 건 진짜 대단한 건데 예전에는 그 느낌이 뭔지 몰랐어요. 경기를 많이 못 뛰어서 크게 와닿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진짜 좋을 텐데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실력도, 운도 따라야 하죠.


프로필

생년월일 1984년 3월 13일

신장/포지션 174cm/포워드

출신학교 천호초-성덕여중-성덕여상-명지대 학사

드래프트 2003년 1라운드 5순위

경력 2003~2004 현대, 2005~2008 신한은행, 2008~2010 금호생명, 2010~2018 KDB생명, 2018~2019 OK저축은행, 2019~ 현재 신한은행

수상 경력 3점슛상 2회, 3점슛 성공률 1위 2회, 2점슛 성공률 1위 1회, 스틸상 2회, 우수수비상 1회, 모범선수상 3회, 특별상 1회

통산 기록 597경기(2위) 5171점(14위) 2180리바운드(16위) 1077어시스트(17위) 731스틸(4위) 17240분 53초(5위)


#사진_문복주 기자, WKBL 제공


​[점프볼=최창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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