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할머니도 세련된 미용실 가고 싶다? 왜 그걸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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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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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뭐야 노인복지관인가? 거기 할머니들 머리 손질해 주는 곳 있잖아요! 거기서 파마하면 알아서 해 줄 텐데요. 어차피 어르신들 스타일이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니우?"
오래간만에 머리 손질을 하고 싶다는 친정어머니에게 생각 없이 내지른 말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요즘 젊은이들 모이는 미용실은 비싸기도 하지만, 어르신들 오는 걸 싫어할 거라며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하고 말았다.
꽤 긴 시간을 다리 깁스로 힘들어하던 친정어머니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무거운 깁스를 풀고 가볍게 세상 나들이를 하고 싶던 86세의 노인이자 여자인 어머니, 어르신들만 가는 미용실에 가라는 딸들의 생각 없는 말에 당장 시무룩한 모양새다. 당신 속마음은 젊은이들이 가는 곳에서 딸을 앞세우고 머리를 매만지고 싶으셨음이다.
그러고 보니 내 유년시절, 동네미장원 거울 속에서 여왕님 같던 엄마는 이제 혼자서는 미장원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힘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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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밍 미장원과 형제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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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전 이발』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이하 생략)
- 문태준(창작과 비평사 2004)
1970년대, 동네 언저리엔 어김없이 '역전' 혹은 '우리', '형제'라는 이름의 이발소가 있었다. 나의 오후도 그 '이발소'나 '미장원'에서 행복했다. 문태준의 시처럼! 이름도 우아한 챠밍 미장원 건너엔 형제 이용원, 말 그대로 삼 형제가 운영하던 동네이발소가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발소 벽엔 밀레의 만종과 푸시킨의 시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유치원을 다닐 무렵 오빠들을 따라 이발소에 가는 날이면 보았던 부부의 기도하는 모습이 밀레의 그림인 건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삼 형제 중 몇째인지는 모를 아저씨는 건너편 미장원 흉을 곧잘 보곤 했다. 이유인즉슨 짧은 상고머리 커트, 그러니까 쇼트커트를 어설프게 한다는 거였다. 짧게 자르는 건 우리 이발소가 전문이니 굳이 미장원까지 갈 거 없이 너도 여기서 자르고 가라는 거다. 물론 어린 마음에도 '쳇! 이발소는 어림없지' 비록 뜻은 모르지만, 나의 오후는 우아한 챠밍 미장원에서 엄마와 함께 행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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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액자에서 걸어 나온 미장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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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도넛 같은 머리 모양을 한 미장원 아줌마는 간호사처럼 하얀 원피스 가운을 입고 요술을 부렸다. 불에 달구어져 치지직 소리를 내는 무거운 아이롱기(고데기)를 찰칵찰칵 이리저리 돌리며 금세 머리 모양을 만들어 내곤 했다. 당시엔 월급봉투로도 쓰였던 얇은 누런 종이에 머리를 돌돌 말아 예쁜 컬을 만들 땐 어찌나 놀랍고 신기했던지 모른다.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던 엄마는 내 눈에 마치 여왕같이 보였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로 둥글게 만 머리가 왕관을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40여 년도 훨씬 전의 동네미장원 풍경이다. 그림처럼 영화처럼 불현듯 추억의 액자 속에서 그 시절이 튀어나왔다. 엄마가 미장원에 가는 날이면 괜스레 신이 났던 내겐 언제쯤 저 뜨거운 쇠고데기로 내 머리를 동글게 말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지독한 파마약 냄새와 불에 달궈진 고데기에 탄 머리카락 냄새로 가득했던 곳, 기억 속 그곳엔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야 한다며 시술 중인 머리에 알록달록 보자기를 뒤집어 문밖을 보던 아줌마가 있고, 핑크빛 그러니까 어린 내 눈엔 닭 뼈다귀로만 보였던 기구를 촘촘히 말고 있던 할머니도 있었다. 얼마 후 도넛 머리의 미용사 아줌마는 쌀집을 하던 남편과 함께 곗돈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지만.
불현듯 기억의 액자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어릴 적 동네미장원의 추억은 젊고 예뻤던 엄마의 지난날을 소환했다. 그땐 행여 엄마가 나를 떼어놓고 미장원에 갈까 봐 조바심을 탔던 시절이었다. 이젠 엄마를 모시고 어딜 다녀야 하는 게 가끔은 버겁고 귀찮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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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어르신들하고만 어울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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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말이지만 시간은 화살 같아서 언제까지나 미장원 거울 속 여왕님 같던 엄마는 속절없이 여든하고도 여섯이 되었다. 그 옛날 미장원 회전의자 위에서 짧은 다리를 흔들어대던 그림 속 아이도 중년이 된 지 오래다. 가끔 엄마는 무릎이 쑤신다든지 건망증이 찾아오면 ‘아무래도 내가 늙었나 보다' 고 말을 한다. 그럴 때면 당신 딸이 지금 몇 살인데 그런 소릴 할까 하며 입을 비죽이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나도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하는 게 아닌가? 세상은 언제나 자기 위주로만 보게 마련인 것 같다. 우습게도 내가 20대였을 땐 50대 중년 부인이 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미장원에서 동글동글 머리를 말고 있던 젊은 엄마는 여든 넘은 노인이 될 자신을 상상이나 했을까? 딸이란 게 노인들은 노인네 전용 미장원이나 가시라고 했으니 얼마나 야속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들은 어르신들 대화가 생각났다. 경로석이 있지만 자리가 널찍할 땐 일부러 일반석에 앉아간다는 말이었다. 왠지 젊은이들 사이에 있으면 같이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마저 좋아진다는 거다. 가끔 눈총을 받을 때면 얼른 경로석으로 옮겨가면 된다고 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늙은이 취급'에 맘이 아프다는 말과 함께.
인생후반전에 들어온 나도 곧잘 나이로 편 가름을 하곤 했다. 조만간 어르신의 세계로 들어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반성도 후회도 잘하는 나는 곧바로 엄마를 앞세우고 미장원으로 향했다. 최신식 헤어스타일과 인테리어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다는 소위 '힙'한 곳으로! 실내엔 음악이 흐르고 세련된 헤어디자이너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곳엔 우주선 같은 기구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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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미장원 거울 속엔 어르신의 전매 특허인 뽀글이 파마 대신 한결 세련된 스타일의 엄마가 있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요즘 미장원은 왜 이리 넓고 좋으냐는 말을 계속한다. 갑자기 젊어진 듯한 느낌에 기운이 나신 엄마는 목소리도 힘이 넘쳐 나는 것 같았다.
"야! 여기 미장원 이름이 뭐냐? 담에도 여기로 오자"
무척이나 흡족했던 모양이다.
"아! 여긴 챠밍 미장원 아니고요, 거 뭣이냐 ×××헤어 스튜디오라는군요!"
뭔 이름이 그리 복잡하냐며 기어코 한소리를 하지만 여전히 희색만면이다.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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