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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오끼] 사람보다 소가 많은 곳···한우가 키조개·표고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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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앞에서 점잔 떨기 좋아하는 이에게 전남 장흥은 참기 어려운 고장이다. 요즘 같은 봄날 장흥의 들녘과 득량만 바다에서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라온다. 이를테면 갑오징어 '먹찜'을 먹을 땐 입 주변이 먹물로 범벅이 될 각오가 필요하다. 한우를 먹을 때도 제철 맞은 키조개와 표고를 얹혀 한입에 욱여넣고 씹어야 직성이 풀린다. 시뻘건 바지락 회무침, 졸복이 한가득 들어간 '쫄복탕'도 그렇다. 체면을 놓아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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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개 vs 서민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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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앞바다는 득량만이다. 너른 바다를 곁에 둔 덕에 장흥의 봄바람에는 맛깔스런 짠 내가 배어있다. 시방 득량만의 주인공은 키조개와 바지락이다. 산란기(7~8월)를 앞두고 탱글탱글하게 살을 찌우는 4~5월이 제철이다.


서남해안 전역에서 잡히는 바지락이 서민이라면, 키조개는 조개의 왕이다. 전복‧백합과 함께 고급 조개로 통한다. 껍데기를 벌리면 꽃등심처럼 두툼한 관자(패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매년 5월 키조개 축제(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취소)를 열 만큼 장흥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키조개 마을로 통하는 안양면 수문항 일대에서 한 해 330t가량의 키조개가 잡힌다.


얕은 갯벌에서 잡히는 바지락과 달리, 키조개는 수심 5m 이상 펄 바닥에 붙어 자란다. 종패는 사람이 심지만, 따로 먹이를 주지 않으므로 양식이라 말하긴 모호하다. 키우는 건 온전히 바다의 몫이다. 장흥 사람은 “개펄에 키조개를 이식한다”고 표현한다. 봄이면 잠수부들이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2~4년 자란 키조개를 건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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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항 일대에 해산물을 다루는 식당이 몰려 있다. 3대를 이어온 60년 내력의 ‘바다하우스’에서 갓 잡은 키조개와 바지락을 맛봤다. 싱싱한 키조개 관자(3만5000원)는 얇게 썰어, 회나 구이로 먹는데, 쫄깃쫄깃한 것이 씹을수록 담백했다. 바지락회무침(3만원)도 별미. 6개월 이상 숙성한 막걸리식초로 맛을 내 입에 착착 붙었다.



한우에도 제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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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는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 사람은 3만7000여 명, 소는 5만4000여 마리(1800여 농가)가 산다. 장흥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초록색 풀은 청보리가 아니라 소여물로 재배하는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다.


장흥 사람은 한우를 그냥 먹지 않는다. 지역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키조개까지 곁들인다. 이른바 ‘한우삼합’이다. 소고기에는 철이 없지만, 한우삼합에는 제철이 있다. 표고는 봄과 가을에 재배한다. 키조개는 4~5월의 것이 알차다. 하여 봄철의 한우삼합을 최고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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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장흥토요시장’ 안에만 한우 판매장 26곳이 있다. 정육점과 고깃집을 겸하는 식육식당이 대부분이다. 차림비는 대개 한 사람에 4000원이다. 키조개는 한 접시에 1만원, 표고버섯은 5000원꼴이다. 한우는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맞게 고르면 된다. 탐진강변의 ‘탐마루’의 이태광(55) 대표는 “특수부위인 살치살과 토시살은 예약하지 않으면 맛보기 어렵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기름기가 많고 담백한 차돌박이도 인기 메뉴”라고 설명했다.


한우삼합은 세 가지 재료를 불판에 조금씩 올려 바로바로 구워 먹는 게 요령이다. 키조개는 빨리 익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잠깐, 한우만으로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입에 넣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육즙 가득한 한우, 짭조름한 키조개 관자, 향긋한 표고버섯이 입안에서 한데 뒤섞인다. 풍미가 대단하다.



체통을 버리게 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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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처럼 단단하고 납작한 뼈가 있는 갑오징어도 봄에 유독 맛있다. 장흥 남쪽 끝자락 회진 앞바다에서 사철 잡히지만, 4~5월에 제일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여름이 되면 살이 빠지고, 물러서 맛이 덜하다.


갑오징어는 다혈질이다. 잘못 건드렸다간 먹물에 쏘이기에 십상이다. 횟집의 베테랑들은 수조에서 꺼내기가 무섭게 먹통, 눈알, 입부터 제거한다. 싱싱한 갑오징어는 배를 가르고 몸통을 두 동강 낸 뒤에도 꿈틀꿈틀 도마 위를 한참 헤집고 다닌다.


갑오징어 본연의 맛을 끼려면 회나 찜으로 먹는 게 좋다. 관산읍 ‘병영식당’ 주방에서 조리 과정을 엿봤다. 회도 찜도 과정이 간단했다. 살아있는 갑오징어를 절단한 뒤 뼈를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내니 우윳빛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갑오징어회(6만원)는 씹어야 제맛. 첫맛은 달고, 뒷맛은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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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먹찜(6만원)’을 더 즐긴단다. 갑오징어를 통째로 압력밥솥에 넣고 20분간 쪄낸 음식이다. 먹물과 내장이 알아서 고소한 양념 역할을 하므로 아무런 간도 하지 않는다. 찐 것을 먹기 좋게 써는 동안 갑오징어는 먹물 범벅이 됐다. 부드럽고 담백한 먹찜은 아삭아삭한 생양파에 올려 먹어도 그럴싸했다. 입 주변과 치아가 거뭇거뭇해지는 줄도 모르고 젓가락질을 해댔다. 마무리는 먹물에 볶아먹는 먹밥이었다.



작지만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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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조개구이, 바지락 회무침, 한우삼합 모두 술을 곁들이기 좋은 음식이다. 잘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술을 부른다. 하여 장흥에선 아침밥, 그러니까 해장이 중요하다. 장흥의 술꾼이 검증한 숙취에 좋은 음식은 졸복국이다. 졸복(복섬)을 냄비 한가득 넣고 푹 끓여낸 음식인데, 남도에서는 대개 ‘쫄복탕’이란 친숙한 이름으로 부른다. 개운한 국물 덕에 속을 달래기 좋다.


졸복은 작다. 다 자라도 좀처럼 어른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한다. 볼록한 배와 입이 앙증맞아 보이지만 여느 복어와 마찬가지로 맹독을 품었다. 하여 세심히 손질해야 한다. 독을 품은 창자와 아가미 등을 제거한 다음, 온종일 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조리한다.


졸복은 고춧가루 없이 맑은탕(지리)으로 끓이거나, 통째로 갈아 걸쭉한 어죽 형태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장흥식 쫄복탕은 맑지 않고 누렇다. 소금 대신 된장을 넣어서다. 그러고 보니 장흥의 여름 별미로 통하는 된장 물회 역시 고추장 대신 된장을 넣는 게 핵심이다.


“맑은 탕은 도시 사람이나 좋아하지라, 우린 촌사람이라 된장을 풀어야 먹어부러.”


40년 동안 졸복을 다룬 ‘성화식당’의 임평심(73) 할머니도 집된장 풀고 미나리를 올린 쫄복탕(2만원)을 냈다. 구수한 국물 덕에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떡이야 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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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이 낯선 초행자라면 장흥군청 주변부터 거쳐 가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장흥 땅을 관통해 흐르는 탐진강, 온갖 특산물이 모이는 정남진장흥토요시장이 지척에 있다. 먹거리‧볼거리 걱정은 덜어도 좋다. 마침 탐진강 일대 벚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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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좋은 카페도 간간이 보인다. 장흥여중 앞 ‘달콤꽃시루’는 장흥 스타일 디저트를 내는 떡 공방 겸 카페다. 표고를 가미한 설기(1000원)는 이곳에서 처음 맛봤다. 표고는 장흥의 대표 특산물이다. 500여 농가에서 매년 1000t씩 표고를 생산한다. 표고 설기는 장흥산 쌀가루와 표고 가루를 섞고 물에 불린 다음 대나무 시루 담아 25분간 쪄낸다. 설탕도 적당히 넣어준다. 얼핏 카스텔라같이 생겼는데 표고 향이 은은히 풍긴다. 달짝지근해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장흥산 고구마를 통째로 삶아 넣은 고구마떡(2000원), 백설기 위에 꽃 앙금을 올리는 ‘한입설기(2500원)’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앙증맞다. 박영란(42)‧장성호(46) 부부가 매일 아침 함께 떡을 빚는다. 꽃 앙금은 20년간 유치원 교사로 일한 부인 박영란씨의 솜씨다. 원데이 클래스(2~3시간, 3만원부터)도 해볼 수 있다.


장흥=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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