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악땐 자궁 들어내는데···불법 낙태약 먹고 응급실 간 10대

“수술 없이 안전하고 간편하게 중절, 유산 실패시 환불” 홍보

불법 적발 건수 올해 1434건…“국내 도입 논의 서둘러야”


올 초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10대 청소년이 실려왔다. 임신 후 불법 낙태를 시도하다 부작용이 생긴 여성이었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불법 낙태약을 먹고 나서 배에 피가 고이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자궁 외 임신인 줄 모르고 불법 약을 먹었다. 수정란이 자궁이 아닌 나팔관에 착상되는 자궁 외 임신이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여성이 복용한 약은 미프진이다. 일명 낙태약으로 통한다. 국내에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아 수입할 수 없고, 유통·판매할 수도 없다. 응급실에 실려온 여성처럼 대부분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유통된 것들이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되면서 ‘낙태 허용’ 분위기를 타고 불법 낙태약이 더욱 활개치고 있다.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낙태약 불법 판매 적발 건수가 2015년 12건에서 지난해 2197건으로 급증했다. 올 1~6월 1434건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낙태는 4만9764건 이뤄졌는데 낙태 경험자 중 9.8%가 미프진 같은 불법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서 미프진을 판다는 업체에 상담을 요청했더니 자세한 가격 정보와 약물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트위터 캡처]

미프진은 임신 초기 자궁 수축을 유도하고 호르몬 생성을 억제해 인공유산을 유도하는 알약이다. 임신 초기에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안전하게 복용할 경우 수술을 받지 않고 낙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뒤로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60개국 이상에서 팔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권고에 따라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 이내로 확진 받은 여성만 복용하도록 돼 있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부작용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런 제한을 뒀다. 임신 10주가 지난 여성이 먹으면 수혈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임신 7주 이내라 해도 구토나 설사, 두통, 현기증, 요통은 물론 심한 복통과 하혈을 유발할 수 있다. 약을 먹고 불완전 유산이 되면 임신 초기 낙태 수술을 하는 것보다 출혈, 염증, 자궁 손상 등의 위험이 크다고 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10대가 불법 유통되는 미프진을 구해 먹고 낙태가 온전하게 되지 않아 과다 출혈을 일으켜 실려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심하면 자궁을 덜어낼 수도 있다. 미국 FDA가 미프진 복용 3일차와 14일차에 반드시 산부인과 방문하도록 명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일보

지난 23일 트위터에서 검색된 미프진 판매 업체에 카카오톡 오픈 채팅(익명 채팅)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임신 7주 이내라면 39만원이라고 가격을 제시했다. [사진 카카오톡 캡처]

전문가의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인터넷 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약을 복용하다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가 잇따른다. 한 여성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약 복용한 지 어림 3주째 다 됐는데 하혈량이 안 줄어든다”며 “보통 생리 때보다 3배 이상이고 응혈(엉긴 피)이 나오는데 묵직하고 크다”고 썼다. 임신 8주라며 “미프진을 3일 전부터 두 알씩 나눠 먹고 있고, 마지막에 6알을 먹는데 하혈이 엄청 나온다. 핏덩어리도 나왔는데 낙태가 된 건가. 나머지 약은 안 먹어도 되나”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주 이하 39만원, 7~10주 59만원입니다. 유산 실패 시 비용 전액 지원해드립니다.”


지난 23일 소셜미디어(SNS)인 트위터에 ‘낙태약’ ‘미프진’이라고 검색하니 약을 판다는 광고 여러 건이 떴다.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한 판매업체에 카카오톡 오픈 채팅(익명 채팅)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즉각 가격 정보와 함께 유산이 안 될 경우 환불해준다는 약속이 답으로 왔다. “서울은 3시간 이내 퀵서비스로, 지방은 고속버스 택배로 당일 배송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음파 사진과 병원 영수증을 카톡으로 보내달라”며 “아기집 착상 후라면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고 알려줬다. 약이 정품인지 묻자 “한 사이트로 2년 넘게 운영해왔다”면서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미프진을 외국에서 몰래 들여와 온라인상에서 암암리에 거래된다. 업체들은 출처와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팔며 “수술 없이 안전하고 간편하게 중절할 수 있는 방법”이라 홍보한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정호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착상이 정상적으로 됐는지 임신 상태를 확인한 뒤 의사의 처방에 따라 5~7주에 먹는 게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며 “복용 전후로 꼭 병원을 찾아야 한다. 처방 없이 잘못 복용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약을 구매했기 때문에 피해를 봐도 마땅히 보상 받을 방법이 없다. 한 여성은 포털사이트에서 “자연유산이 돼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까 단순 변심은 환불이 안 된다”며 하소연했다. 가짜약도 판친다. 가짜를 정품으로 속여 파는 사기 사건이 꾸준히 발생한다. 최근 중국산 낙태약 1000여정을 들여와 미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던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서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만큼 법 개정 이전에라도 낙태약 처방과 유통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임신 중절을 할 수밖에 없는 한시가 급한 여성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불법 약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식약처에서 법 개정과 상관없이 미프진을 우선 도입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처벌 조항의 개정 시한은 내년 말이지만 그 전에라도 주무부처가 관련 규칙 개정이나 유권해석 등을 통해 처방과 판매를 허용하라는 뜻이다. 의약계에서도 약물을 잘못된 방법으로 복용하거나 가짜약을 먹는 일을 막기 위해 합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불법이라고 하지만 약을 구하기 쉽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미프진이 양성화돼 환자가 안전하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황수연 기자 etoile@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