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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중앙일보

첫 영화 도전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 "일본 고도성장 뒤엔 한국인 노동자 있었다"

희곡 원작 '용길이네 곱창집' 12일 개봉

차별 받던 유년기, 아버지 이야기 담아

"이정은 영화·무대 정통, '기생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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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코로나 19 감염자 수 증가로 다양한 행사가 중지되고 있어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길이네 곱창집’이 개봉해 관객들이 찾아주실지 걱정되지만, 한국 관객들은 좋은 작품을 제대로 평가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자신의 유년기를 녹여낸 희곡을 토대로 첫 영화 연출에 나선 재일교포 2.5세 정의신(63) 감독의 말이다. 12일 개봉한 ‘용길이네 곱창집’은 극작가인 그가 2008년 직접 쓰고 연출한 한일 합작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이 바탕이다. 1969년 전후, 오사카 공항 근처의 가난한 재일한국인 마을에서 한국식 곱창집을 하는 재혼 부부 용길(김상호), 영순(이정은)과 사남매의 고락을 그렸다.



일본 고도성장 뒤엔 재일한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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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1970년에 걸친 고도성장은 일본에 큰 번영을 가져왔어요. 그 상징이 1970년에 개최된 만국박람회이자, 만국박람회를 위한 간사이공항 확장공사였습니다. 거기엔 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있었죠. 일본의 번영을 한국인 노동자가 뒤에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번영의 그늘에서 가난에 허덕이고 차별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13일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이를 무대에 올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희곡을 쓴지 10년만인 2018년 영화로 만든 데 대해선 “지금 기억해두지 않으면 잊힐 이야기여서 영화로 찍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개막작에 선정된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다.



오사카 판잣촌에 깃든 내 아버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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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용길은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용돼 한쪽 팔을 잃고 제주 4.3 사건으로 돌아갈 고향마을까지 없어졌다. 재혼해 낳은 막내아들 토키오(오오에 신페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위태로운 상태다. 용길이 돈을 주고 산 곱창집 땅도 구청에선 국유지라며 퇴거하라 채근한다.


“세상은 고도성장이란 기차를 타고 번쩍번쩍해져 가는데 이 동네만은 옛날 그대로다.” 영화를 이끄는 토키오의 내레이션이다. 정 감독은 “창작 반 사실 반”이라며 “나보단 아버지 이야기”라 했다.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은 히메지성의 돌담을 따라 전후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이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장소”라며 “결국 국유지였지만, 아버지는 그 땅을 돈 주고 샀다고 주장했다. 이제 그 동네는 없어져 공원이 됐다. 아버지와 내가 살았던 마을이 영화 속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그는 돌이켰다.



처절한 현실, 웃음으로 승화한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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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일하다 보니 이 나이가 됐다” “재일교포는 모순덩어리야 차별과 편견을 받으며 일본을 미워하고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해” 등 영화 속 대사는 그가 어릴 적 자주 듣던 말이다.


Q : 처절한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원천은.


A : “역시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의 영향이 많다. 그곳에는 가난해도 어두운 사람이 없었다. 인간의 교활함, 상냥함, 씩씩함을 아이의 마음에 가르쳐줬다.”



곱창 냄새 진동하는 연극과 달라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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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일본의 주류 문화계에서 재일교포·하층민·동성애자 등 비주류의 이야기를 선보여온 극작·연출가다. 1993년엔 일본 연극계에서 권위 있는 기시다 희곡상을 수상했다. 영화 각본 작업도 꾸준히 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2005)론 일본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도 연극도 극본은 같고 임하는 자세도 같다”고 했지만 영화에는 연극과 달라진 점도 있다. 우선 제목이다. 2년 전 전주에선 원제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상영했지만 개봉하며 ‘용길이네 곱창집’으로 바뀌었다. 이에 그는 “알기 쉬운 제목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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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공연장에 가득 진동했던 곱창 굽는 냄새를 영화에선 맡을 수 없다. 하지만 새로 도전한 부분도 있다.


Q : 영화에서 시도한 것은.


A : “연극에선 세트 하나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영화는 야외 장면을 적극적으로 찍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태우고 리어카를 끌고 가는 장면 등이다. 마지막 장면도 연극에선 하지 않은 방법론을 시도했다. 기본적으론 연극에서 하던 것을 어떻게 영화로 대체하는가에 중점을 뒀다.”



이정은 "'일본 배우들이 '어머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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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사는 90%가 일본어다. 부부 역의 김상호‧이정은이 일본배우 마키 요코, 오오즈미 요 등과 한국어와 능청스런 오사카 사투리를 오가며 호흡을 맞췄다. 오사카 억양 전문 강사가 촬영 현장에 상주했단다.


핏줄이 다른 사남매의 어머니를 연기한 이정은은 전주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를 만나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배웠다”면서 “일본에서 먼저 영화 시사회가 열렸을 때 함께 출연한 일본 배우들이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며 연락이 왔다. 따뜻하고 즐겁게 작업했다”고 돌이켰다.



정의신 "'기생충' 마지막에 눈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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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김상호·이정은에 대해 “연극 경험이 있고 무대와 영화에 정통하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그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가장 가까운 캐릭터였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Q : 이정은은 이 영화 이후 공개된 ‘기생충’으로 전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 ‘기생충’을 혹시 봤다면 감상평은.


A : “봉준호 감독이 스포일러는 하지 마세요, 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꼭 말하고 싶어진다.(웃음) 영화 마지막에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봉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이)정은의 연기는 순종적인 가정부이면서도 그 속에 어둠이 깃든 인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냈다. 있을 수 없는 인물을 마치 존재하는 인물인 것처럼 연기한 그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한·일 넘어 호주도 울린 재일교포 가족사


원작 연극은 2008년 초연 당시 큰 화제를 모으며 한국에서 두 차례, 일본에선 세 차례 공연됐다. 정 감독은 10년 넘게 이 작품을 공연하며 감격했던 순간도 꼽았다. “재일교포의 작은 가족 이야기가 이렇게 일본인의 마음을 설레게 할 줄 몰랐다”며 “작품은 이민 이야기이기도 하고, 땅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고향에서 쫓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가족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에 일본인,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많이 공감해주는 것이라고 깊이 느꼈다”고 돌이켰다.


또 “나 자신도 재일교포로서 소수자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수자 문제에 다방면에 걸쳐 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한일 간 문화교류 끊길까봐 걱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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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전주에서 영화가 처음 소개된 뒤 한일 관계가 계속해서 악화해왔다. 재일교포로서 겪는 힘겨움은.


A : “개인적인 어려움보다 한일 간의 문화교류가 끊기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그동안 ‘용길이네 곱창집’을 비롯해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이 결집한 작품 제작으로 신뢰관계를 쌓아왔다. 그 열의와 노력이 일축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 그는 제작‧연출한 연극 ‘우는 로미오와 분노하는 줄리엣’ 공연이 코로나 19로 인해 취소된 상태지만 여러 신작을 준비 중이다. 영화 차기작도 구상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요. 프로듀서와 논의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정의신 스타일이 아니라 ‘하드한’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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