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찾기 여행] 통영 별미 다찌 ‘다 있지’란 뜻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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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찾기 여행⑥ 통영 다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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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는 경남 통영의 술 문화다. 강구안을 중심으로 동피랑 서피랑 곳곳에 ‘다찌’ 간판을 건 식당이 박혀 있다. 명성과 달리 최근에는 실망했다는 반응도 많다. 지금의 다찌 상차림은 모둠회 정식(또는 해산물 정식)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안 그랬다.
다찌는 어부의 술상이다. 술의 힘을 빌려 고된 뱃일을 버티는 어부에 의한, 소주를 사이다 잔으로 쭉 들이키는 술꾼을 위한 술 문화다. 애초의 다찌에선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왔다. 술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안주가 차례로 나왔다. 가령 꽁치구이에서 시작해 붕장어회가 깔리고 급기야 전복회가 나오는 술상이 차려졌다. 이 화려한 안주는 그러나 값이 없었다. 술값에 이미 매겨져 있어서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방식의 다찌가 남아 있었다. 소주병 가득한 양동이를 거침없이 비웠던 옛 추억이 이젠 아스라하다.
‘통영에선 술을 시키면 회가 공짜란다.’ 소문은 빠른 법이어서 팔도 관광객이 다찌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몰랐다. 다찌의 주인공은 안주가 아니라 술이란 사실을. 관광객 대부분의 주량은 어부(또는 술꾼)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술을 적게 마시니 안주도 적게 나왔다. 관광객의 안주 타령이 빗발쳤다. 결국 1인 가격의 상차림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요즘 통영 다찌는 대부분 1인 3만원 상을 내놓는다. 요즘 다찌가 모둠회 정식과 형식이 같아진 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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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는 아직도 정해진 메뉴가 없다. 통영 앞바다의 신선한 해산물이 철에 따라 그리고 주인 기분에 따라 조리돼 올라온다. 가령 병어가 물이 좋으면 회로 내고, 아니면 찌거나 조려서 낸다. 없으면 물론 안 낸다. 내용으로는, 주인이 마음대로 메뉴를 내는 일본 가정식 오마카세(お任せ)와 유사하다.
다찌는 일본어 ‘다치노미(たちのみ)’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다치노미는 ‘선 채로 마신다’는 뜻으로, 일본식 선술집을 이른다. 바다에서 돌아온 통영의 어부에겐 이런 선술집이 제격이었으리라. 10여 년 전에는 ‘닷지’라고도 했었다.
다찌가 일본어라고 해서 한동안 ‘실비집’이라고도 했는데, 요즘 들어 희한한 풀이가 등장했다. ‘다찌는 통영의 한상 차림으로 ’다 있지‘의 준말이다. 통영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한 상 가득 내놓는 것이다.’ 통영 한 다찌 집의 소개글에서 인용했다. 발랄한 해석이고, 재치 있는 말장난이다. 하나 전혀 근거가 없다. 다찌는 일본어 잔재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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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경남 창원)에도 비슷한 술 문화가 있다. 마산에선 통술집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술이 양동이째 나온다. 술이 통에 담겨서 통술집이 아니다. 대폿집처럼 동그란 통에 모여 앉아 술을 마셔 통술집이다. 전형적인 선술집 문화다. 마산 통술집도 통영 다찌처럼 지금은 한 상 차림으로 주문을 받는다. 다만 통술집에선 안주가 떨어지면 주인이 알아서 채워준다. 추가 안주로 민물장어 급을 기대한다면, 일단 양동이는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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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서신동·삼천동의 막걸리 골목은 아직도 주전자에 따라 안주가 추가된다. 기본 상차림은 있으나, 막걸리 주전자 비우는 만큼 상에 올라오는 접시가 늘어나는 건 변함이 없다. 전주 막걸리 집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막걸리 몇 주전자 비우려면 주량 이전에 식성이 좋아야 한다. 너무 배가 부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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