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가 처음으로 내놓은 8만원짜리 립스틱… 명품 립스틱 전쟁의 서막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가 지난 1월 립스틱 출시를 발표했다. 샤넬·디올 등 패션에서 출발한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이 화장품을 만들어 내놓을 때도 꿈쩍하지 않던 에르메스가 183년 역사 처음으로 메이크업 화장품을 선보인 것이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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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개발엔 에르메스의 각 부문 디렉터들이 총동원됐다. 아티스틱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스 뒤마의 지휘 아래, 화장품 브랜드 샤넬 뷰티·디올뷰티와 맥에서 제품 개발을 담당했던 전문가들을 영입해 립스틱을 만들고, 향수 책임자 겸 조향사인 크리스틴 나이젤이 향을 입혔다. 에르메스 보석·신발 부문 책임자인 피에르 하디는 리필이 가능한 립스틱 케이스를 만들었다. 이 립스틱은 2월 초 본사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론칭 행사를 열고 오는 3월 중 세계 35개국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에르메스뿐만이 아니다. 최근 패션 명가로 불리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잇따라 립스틱을 내놓고 있다. 에르메스에 앞서 '구찌'는 지난해 5월 프랑스 파리와 프랑스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립스틱을 출시했다. 국내에는 지난해 말 면세점을 시작으로 지난 1월 31일부터 롯데백화점 잠실점 매장과 온라인몰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화장품을 취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향수로 품목이 제한돼 있었다. 2010년 '톰 포드'가 향수와 함께 색조 브랜드를 선보이긴 했지만, 시장을 흐름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진 못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 듀오 패션 디자이너 '돌체 앤 가바나'가 립스틱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슬슬 잡아가더니 지난해 구찌가 립스틱을 내놓으며 '명품 립스틱 시장'을 제대로 조성했다. 구찌는 향수 사업을 함께 하는 '코티 럭셔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58종류의 립스틱을 내놨다. 영국 패션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에 따르면 이미 구찌 립스틱은 지난해 100만개가 넘게 팔렸다. 올해 구찌는 여기에 28종류의 새로운 립스틱 컬렉션을 추가로 내놔, 총 86개의 립스틱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올해는 에르메스까지 가세해 명품 립스틱의 정점을 찍었다. 외신들은 앞다퉈 이들의 립스틱 출시 기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월 16일 '이것은 립스틱의 버킨백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에르메스 립스틱의 제작 과정과 디자인, 출시 계획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명품에게 립스틱과 메이크업 화장품은 큰 잠재력을 가진 사업 기회"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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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립스틱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로 구성된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비자층을 잡기 위한 상품으로 립스틱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립스틱은 과거 브랜드의 첫 경험 상품으로 내세웠던 향수보다 가격이 싸고, 또 어떤 화장품보다 쉽게 사고 선물할 수 있는 제품이다. 문턱을 낮추고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이만한 무기가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경기가 불황일수록 비싼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뷰티·패션 홍보회사 '한피알'의 한성림 이사는 "제아무리 성공한 패션 브랜드라 해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며 "향수는 이미 포화 상태로, 화장품 중에서도 쉽게 개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디자이너의 철학·이미지를 바로 반영할 수 있는 립스틱이 최적의 선택지"라고 말했다.
에르메스 립스틱의 가격은 67달러(한화 약 8만원), 리필은 42달러(약 5만원)로 알려졌다. 다른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립스틱 대비 2배에 달하는 가격대다. 지난주 국내 판매를 시작한 구찌 립스틱의 가격은 4만8000원으로, 샤넬(4만5000원대)보다 비싸다. 에르메스 립스틱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비싼 립스틱'으로 꼽혔던 톰 포드와 끌레드뽀 보떼의 립스틱은 6만9000원대였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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