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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하는 예능속 정치인…값싼 정치인가 대중화인가

오세훈·김한길·박원순·표창원 등 잇따른 예능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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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에 두부를 썰어 넣고, 계란 프라이를 하며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뒤늦게 일어난 아내는 남편이 준비한 아침 식사를 먹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낸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관찰 예능 속 연예인이냐고? 아니다. 지난 2일 TV조선의 예능 '아내의 맛'에 출연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모습이다.


오 전 서울시장은 이날 아내 송현옥 교수와 함께 방송에 나와 가정적인 모습을 어필했다. 15개월 손주의 재롱에 넋 놓고 손뼉 치는 손주 바보로서의 인간적 면모도 더했다. 이날 방송을 계기로 '아내의 맛'은 지난달 11일 이후 처음으로 시청률 4%를 넘기며 상승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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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MBC '라디오스타), 표창원 의원(KBS '대화의 희열') 등에 이어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7일에는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자신의 아내이자 탤런트인 최명길과 함께 tvN 새 예능 '따로 또 같이'에 출연한다. '따로 또 같이'는 박미선·이봉원 부부 등 연예인 부부 네 쌍이 한 여행지로 떠나 남편은 남편끼리, 아내는 아내끼리 뭉쳐 여행한다는 설정의 예능이다.

지난 1일 제작발표회에서 김 전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24시간 아내가 챙겨줬는데 건강이 회복돼 홀로서기 해야 될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 섭외가 들어왔다"며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새로운 삶인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더 이상 낯설지도, 놀랄 일도 아니다. 2009년 당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히트를 친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본격적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해에만 해도 이재명(SBS '동상이몽2'), 기동민(tvN '둥지탈출'), 안희정(JTBC '말하는 대로', KBS '냄비받침'), 홍준표·추미애·나경원·손혜원·심상정·정세균(KBS '냄비받침) 등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예능에 출연했다.

특히 당시 이재명 성남지사는 '동상이몽2'에 출연해 '명블리'라는 애칭을 얻었고 프로그램 또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정치인과 새 인물을 찾아 화제를 끌려는 제작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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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테이너(politician+entertainer)'란 개념이 처음 정립된 미국에서도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흔한 일이다. '폴리테이너'는 1998년 인기 영화배우 제시 벤추라가 미네소타 주지사로 당선된 일을 계기로 미국 햄린대 데이비드 슐츠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정치계로 진출한 연예인을 지칭했다. 정치계와 연예계의 경계 자체가 희미해진 지금은 '폴리테니어2.0' 시대로 지칭되기도 한다.


2015년에는 당시 미국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유명 코미디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SNL)'에 바텐더로 출연해 자신을 패러디한 코미디언 케이트 매키넌과 정치적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만 미국은 정치인들이 주로 토크 쇼를 중심으로 출연한다. 미국 대선 후보들에게 토크쇼는 지지도를 높이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위트를 함께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통로가 돼 왔다. NBC '투나잇 쇼', CBS '데이비드 레터맨 쇼'와 그 후속 '스티븐 콜베어 쇼'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JTBC '썰전' 등 예능적 성격이 가미된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정치인이 출연하기도 하지만 관찰 예능 등 오락성 짙은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지난 4월에는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이 현역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나 지자체장에 대해 "방송·신문·잡지나 그 밖의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긍정적일까. 어느 사안에나 명과 암은 있는 법. 이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있는 문제"라며 "굳이 얘기해야 한다면 명도 분명하지만 암이 더 짙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TV라는 게 결국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것이며 우리는 전혀 실체를 볼 수 없다"며 "그런데 정치에서 결국 중요한 건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이며 정책인데 예능은 그 정보를 전혀 주지 않는다. 만들어진 이미지 때문에 특정 정치인에게 표가 가는 게 과연 긍정적이겠느냐"고 말했다. 김명연 의원 또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 발의 당시 "많은 정치인들이 정책과 공약이 아닌 입담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는 국민 기만행위이며 사전 선거 운동에도 해당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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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며 "그렇게 치면 국회 방송이 제일 훌륭한 방송이어야겠지만 아무도 안 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이성적으로 정보를 얻으려면 우선 관심이 가야 하는데 정치인이 출연하는 예능이 그런 관문 역할을 한다고 본다"며 "실제 '100분 토론' 같은 시사 프로그램보다 '썰전'처럼 예능이 가미된 프로그램이 의견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는 이 문제가 복합적이라고 전제하면서 "예능의 본래 형식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를 쉽게 얘기할 수는 있어도 정책 토론을 할 수는 없다"며 "이 때문에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정치를 너무 단순화시키고 이미지화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 정치 상황에서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을 권장할 필요는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현실 등으로 인해 젊은 층의 정치 냉소주의가 심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정치 예능은 권장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만 좀 더 신중하고 정제된 내용과 형식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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