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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걷다, 부산을 맛보다

팔도이야기여행 ④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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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오륙도 해맞이공원. 여기에서 남파랑길과 해파랑길이 갈라진다.

부산 최고의 관광 자원은 길이다. 허다한 달동네도 계단 길이 꾸역꾸역 찾아가고, 깎아지른 절벽과 눈부신 백사장은 장쾌한 해안길이 안내해준다. 최근에 그 의의가 더해졌다. 동해안 종주 트레일 ‘해파랑길’이 부산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에서 끝나는데,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도 부산에서 시작해 전남 해남에서 마무리된다. 부산시 남구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두 길이 갈라진다. 해파랑길이 광안리~해운대~기장 등 부산의 이름난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면, 남파랑길 초반 코스는 피란수도 부산의 아스라한 옛 풍경 속으로 잠겨 든다. 길만 걸으면 부산의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으니, 부산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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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코스 이기대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남파랑길 1코스에서 3코스까지 걸었다. 피란수도 부산의 옛 모습을 여태 간직한 구간이다. 이 길 언저리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대부분이 태어났다. 음식에 밴 사연을 더 알고 싶어 박찬일(58) 셰프와 동행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지만, 서울 광화문에서 돼지국밥집을 열었고 짜장면을 찬양하는 책을 펴낸 주인공이다.

소막마을 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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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

남파랑길 1코스를 걷다 보면 우암동 소막마을을 지난다. 우암동은 일제 강점기 소 검역소가 있던 마을이다. 일제는 팔도에서 징발한 소를 우암동에 일단 모았다가 일본으로 보냈다. 소 막사 19동에서 최대 2200여 마리의 소를 수용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왔다. 우암동까지 흘러들어온 피란민은 빈 소 막사에 들어가 살았다. 일제가 지은 소 막사는 크고 튼튼했다. 목조 기와 맞배지붕의 건물로, 폭이 약 9m고 길이는 약 51m였다. 얼기설기 판자 이은 판잣집보다, 미군 천막으로 세운 천막촌보다 소 막사가 사람이 살기에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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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1~3코스

우암동 소 막사에는 한때 370여 세대가 살았다. 막사가 워낙 커 막사 한 동에 여러 세대가 들어갔다. 지금도 소 막사를 개조한 집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공경식(67) 피란수도 해설사는 “우암동 소 막사가 201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며 “주민들이 마을 정비 활동을 해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우암동엔 함경남도 흥남 출신 피란민이 유난히 많았다. 1950년 겨울 미군 수송선을 타고 내려온 흥남 사람들이 부산역 주변에서 자리를 못 잡고 우암동까지 떠밀려왔다고 한다. 우암동에 터를 잡은 흥남 피란민 중에 흥남 내호시장에서 ‘농마국수(함흥냉면)’ 집을 하던 이영순(?~1970) 여사 가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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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동 ‘내호냉면’에서 부산 밀면이 시작됐다. 1959년쯤 밀가루 면으로 냉면 맛을 만들어 낸 게 시초다. 장진영 기자

이 여사는 우암동에서도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가게 이름이 ‘내호냉면’. 고향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허름한 냉면집에서 부산 밀면이 시작됐다. 냉면집 인근 동항성당에 구호품으로 나온 밀가루를 1959년쯤 냉면처럼 만든 게 부산 밀면의 시초다. 현재 내호냉면은 4대 유재우(47) 대표가 맡고 있다.

차이나타운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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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남파랑길 2코스와 3코스가 만나는 지점이 부산역이다. 부산역 건너편에 ‘상해거리’라 불리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부산역 주변에 이름난 노포가 수두룩한데, 박찬일 셰프는 굳이 차이나타운에서 만두를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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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차이나타운 만두 전문점 ‘마가만두’의 찐만두.

웬 만두인가 싶었는데, 차이나타운에 늘어선 중국집을 보고서 알았다. 부산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은 하나같이 만두 전문집이었다. 전국구 명소가 된 ‘신발원’은 물론이고 ‘마가만두’ ‘삼생원’ 모두 만두 전문집이었다. 짜장면·짬뽕도 없이 만두만 파는 중국집이라니. ‘마가만두’는 아예 가게 입구에 ‘만두 전문집이어서 면 종류는 판매하지 않습니다’라고 붙여놨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선 못 봤던 풍경이다. 어쩌다 부산 차이나타운 만둣집만 살아남았을까. 박찬일 셰프는 부산이라는 지방 도시의 특성에서 이유를 찾았다.


“부산은 개방적인 항구도시입니다. 신식 문물을 제일 먼저 접한 도시가 부산이지요. 동시에 부산은 보수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 서울과 먼 지방 도시의 특징이지요. 다른 지역에선 오래전에 사라진 옛 문화가 특정 지역에 가면 남아있는 게 있습니다. 부산에선 차이나타운 만둣집이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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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해맞이공원 앞에 나란히 부착된 해파랑길과 남파랑길 이정표.

만두는 하나같이 고기가 듬뿍 들어간 고기만두였다. 찐만두든, 튀긴 만두든 속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당면이 일절 없었고, 채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만두를 한입 베어 무니 육즙이 터져 나왔다. 박찬일 셰프가 “중국인에게 만둣집은 우리의 분식집 같은 곳”이라며 “부산역 주변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가 만두로 허기를 달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식 콩국도 처음 맛봤다. 우리 콩국보다 묽은 편이었는데, 국물이 뜨거웠다. 박찬일 셰프가 시키는 대로 과자처럼 바싹 튀긴 빵을 콩국에 적셔 먹었다. 박찬일 셰프가 “‘콩국+과자’라고 쓰인 이 메뉴가 중국인의 대표 아침 음식”이라고 알려줬다.

깡통시장 비빔당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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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 입구 책 모양 건물.

남파랑길 3코스는 부산 구도심을 구석구석 찾아간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부산의 고유 명사들, 이를테면 자갈치시장·남포동·보수동·국제시장·깡통시장을 샅샅이 파고든다. 이름난 먹거리도 제일 많은 구간이다. 박찬일 셰프에게 추천 식당을 미리 받았는데, 이 일대에만 여남은 개가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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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노포 ‘물꽁식당’의 아귀 수육.

깡통시장에 가기 전, 박찬일 셰프가 보수동 ‘물꽁식당’을 먼저 들르자고 했다. ‘물꽁’이라. 비슷한 이름을 안다. 인천에서 ‘물텀벙이’라 부르는 생선. 모두가 ‘아구’인 줄 알지만, 표준어는 ‘아귀’인 생선을 부산에선 물꽁이라 부른다. 아귀찜은 마산이 원조라 알려졌으나 부산에서도 아귀를 버리지 않고 먹었다. 원래는 ‘물꽁집’이라 불렸던 물꽁식당도 60년 전통을 자랑한다. 아귀찜을 시켰는데, 독특한 향이 코를 찔렀다. 제주에서 자리물회에 제피나무 잎을 넣는 것처럼, 부산에선 아귀찜에 방아 잎을 넣는다. 신선해야 먹을 수 있는 아귀 수육의 맛은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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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시장 ‘미도 어묵’의 어묵 우동.

깡통시장에 들어갔다. 1950년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이 쌓이고 모여 끝내 시장을 형성한 곳. 여전히 출처 불분명한 양주와 양담배가 팔리고 있었다. 건너편 골목은 ‘부산 오뎅’ 골목이었다. 삼진·환공·미도·고래사 등 서울에서도 유명한 부산 어묵 브랜드들이 왁자지껄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미도 어묵에서 ‘어묵 우동’을 먹었다. 우동 면 대신에 가늘게 채 썬 어묵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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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시장 ‘원조비빔당면’의 정재기·서성자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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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시장의 별미 비빔당면.

진선혜(54) 부산시 문화해설사가 알려준 비빔당면 원조집을 찾아갔다. 다른 이름은 없었다. 간판에도 ‘원조비빔당면’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1958년 성양이(1944~2020) 여사가 노점에서 비빔 양념한 당면을 만들어 팔았던 게 시작이라고 한다. 지금은 성 여사의 아들 내외 정재기(58)·서성자(56)씨 부부가 비빔당면을 팔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게, 한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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