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나선 해리 왕자, 넷플릭스行? 21세기 사랑꾼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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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왕자님이 직접 밥벌이 전선에 뛰어들 수 있을까. 영국 왕실에서 독립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해리 왕자(36) 얘기다. 남들은 못 가져서 안달인 금수저를 스스로 내팽개친 해리 왕자. 그 스스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19일(현지시간) 토로했다. 이날 영국 런던의 한 자선행사에서 독립선언 뒤 첫 발언을 하면서다. 요약하자면 “너무 슬프지만, 아내를 위해 결정했다”는 것. 21세기 사랑꾼의 속사정은 진정 뭘까. 돈은 어떻게 벌겠다는 걸까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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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모범생, 나는 악동
상상해보자. 왕자로 태어나긴 했는데 두 살 위 형이 은하계 대표 훈남이다. 바다 건너 외국에서까지 아이돌인 데다 모범생 이미지까지 다 갖췄다. 동생인 나는 굳이 말하자면 좁고 깊은 매력의 소유자랄까. 형이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내가 형이랑 다른 건 분명하다. 까짓것, 조금 비뚤어지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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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해리 왕자의 속마음일 거라고 영국의 수많은 타블로이드지는 해리 왕자의 어린 시절부터 보도해왔다. 가디언에서 1995~2015년까지 20년간 편집국장을 지낸 존경받는 언론인 앨런 러스브리저는 19일 “해리 왕자에 대해선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져왔다”며 “그러면서 왕족들이 악마와 같은 존재로 그려진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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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왕자가 악의적 소문을 자초한 면도 있다. 2002년, 대마초를 피우다 마약 중독 치료까지 받은 전례가 있다. 2005년엔 한 파티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의 제복을 입고 나타나 물의를 빚었다. 영국의 적국이었던 독일군 나치의 제복을 입은 해리 왕자의 사진이 돌면서 영국의 여론은 꽤나 악화했다.
20대 중반에 들면서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2012년 8월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여성들과 옷 벗기 당구 게임을 하는 사진이 파파라치에 찍혀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에 먹물을 들이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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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를 위한 변명
그러나 해리 왕자의 이런 비행 청소년 이미지에 대해선 동정론도 있다. 어머니 다이애너 전 왕세자비를 둘러싼 트라우마 때문에 어린 해리 왕자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동정론의 골자다. 다이애너가 찰스 왕세자의 오랜 외도 등을 이유로 이혼한 게 1996년. 해리 왕자는 당시 12세였다. 이듬해 다이애너는 파파라치에 쫓기다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어린 해리 왕자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로 남았을 대목이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 다이애너와 특히 가까웠다. 사진은 1988년의 단란한 모습. [중앙포토] |
해리 왕자는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군 복무를 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 격전지에 입대를 자원했다. 탈레반 반군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지역에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해리 왕자와 영국 국방부는 그의 군 복무가 끝날 때까진 비밀을 유지하려 했지만, 미국의 한 매체에서 중간에 노출을 시켰다.
해리 왕자는 당시 언론에 “내가 군인으로 현장에 있으면 (탈레반의) 좋은 목표물이 될 테니 다들 내가 ‘총탄을 부르는 자석’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그런데 별다른 일이 없자 동료들이 실망한 것 같다”는 농담도 던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해리 왕자의 아프간 최전선 근무에 대해 “멋진 생각이니 한 번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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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왕자는 군 복무에 상당한 애정을 가졌다. 그가 보유한 여러 훈장과 작위, 지위 중에서도 영국군 장교엔 애착을 보였다. 이번 독립 선언으로 그는 이 장교 직위도 내려놓게 됐는데, 영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에 대해 특히 슬픔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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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왕자에 눈독 들이는 넷플릭스
18일 런던의 자선행사장으로 가보자. 연설하는 해리 왕자의 목소리는 때로 떨렸다. 가디언ㆍ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해리 왕자가 감정이 북받쳤다”거나 “해리 왕자가 슬픔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공적 자금의 지원은 받지 않으면서 여왕과 군에 계속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슬프게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결정은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해 나와 가족이 함께 내린 ‘믿음의 도약’입니다. 내가 내린 결정은 아내를 위해서였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아내 메건 마클과 사랑에 빠진 것도 해리 왕자의 반골적 기질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마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혼혈이고, 미국인인데다, 배우였다. 보수적인 영국 왕실이 마클을 받아들인 것 자체도 뉴스가 됐다.
2018년 5월 결혼식을 올린 해리 왕자는 지난해 아들 아치를 출산했고, 모든 게 잘 돼가는 듯 보였지만 이달 8일 갑작스럽게 독립 선언을 했다. 그는 해킹을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사생활을 캐내려 한 영국 타블로이드지 등의 과도한 관심을 괴로움의 근원으로 꼽았다. 다이애너의 사망 때부터 그를 수십년간 괴롭혀온 트라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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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해리 왕자와 형 윌리엄 왕자의 불화, 마클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싸움, 마클이 비서를 못살게 군 나머지 못 견디고 나가버렸다는 소문 등이 파다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위기를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왕의 영도력 하에 왕실은 13일 긴급회의를 열고 해리 왕자 부부의 선언을 존중하되, 앞으로 영국 국민의 세금으로 나가는 재정 지원은 중단될 것이라 발표했다. 해리 왕자 부부가 사용하기 위해 윈저성을 리모델링하는 데 쓴 240만 파운드(약 36억원)도 반납하기로 했다. 타고난 ‘왕자(Prince)’ 작위는 유지하지만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덤바턴 백작 등의 작위는 올해 봄부터 취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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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왕자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배우로서 여권 신장에 큰 목소리를 내오기도 했던 마클은 다시 할리우드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해리 왕자는 왕실로부터 자유를 원했지만, 왕실 이력의 그림자에 기대 살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해있다. 넷플릭스 등 콘텐트 제작사들은 벌써부터 해리 왕자 측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넷플릭스의 테드 사란도스 제작자는 가디언에 “어느 누가 해리 왕자에게 관심이 없겠느냐? 물론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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