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에 삼겹살, 키조개에 한우…봄바람, 미각을 깨우는 유혹
경북 청도 한재미나리는 생으로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삼겹살과도 잘 어울린다. 미나리의 은은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삼겹살의 느끼한 맛은 잡고, 감칠맛은 돋워 준다. 백종현 기자 |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 봄이 오면 식도락가는 여러모로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뭍에서도 바다에서도 싱싱한 제철 먹거리가 한시적으로 쏟아지니 살뜰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이맘때 서해안 전역에서는 알을 가득 품은 주꾸미가 올라온다. 남해안 득량만 개펄에서 자란 키조개, 섬진강 바닥에 붙어 덩치를 키운 벚굴도 속살이 탱글탱글하게 차오른다. ‘육식파’라면 한재미나리를 곁들인 삼겹살을 맛봐야 봄이다. 3~5월, 이맘때 꼭 먹어야 할 봄날의 제철 먹거리들 모았다.
한재미나리 │ 4월까지
한재미나리는 2~4월이 제철이다. 일반 미나리에 비해 속이 단단해 쉽게 꺾이지 않는다. 하우스에서 갓 뜯은 미나리를 흐르는 지하수에 담가 깨끗하게 씻어낸다. 미나리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살짝 쥐어 흙을 털어낸다. 백종현 기자 |
미나리는 봄을 깨우는 향이다. 겨우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온 미나리의 새순은 여느 꽃보다 싱그러운 봄 내음을 낸다. 2월 무렵부터 무릎 높이까지 고개를 쳐드는데 살짝 데쳐 나물로 무치든, 생선과 곁들여 탕으로 끓이든 그 맛과 향이 탁월하다.
경북 청도 한재(초현리, 음지리, 평양 1·2리, 상리 일대)가 전국적으로 이름난 미나리 산지다. 화악산(932m)과 남산(851m) 사이 골짜기에 미나리 농가 130여 곳이 모여 있다. 맑고 풍부한 지하수, 큰 일교차 등 미나리가 좋아하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 속이 단단히 여문 미나리가 자란다. 이른바 ‘한재미나리’는 이 지역에서만 나는 미나리를 이른다. 일반 미나리보다 곱절 가량 몸값이 비싼데, 요즘은 1㎏에 1만2000원꼴이다.
한재미나리는 특히 삼겹살과 궁합이 좋다. 갓 뜯은 한재미나리를 삼겹살에 싸 먹는데 아삭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향이 느끼함을 잡아주고, 감칠맛은 돋워 준다. 이 호사도 4월까지만 누릴 수 있다. 그 후엔 너무 질겨져 생으로 먹기 까다롭다. 한재 농가 주변으로 고깃집 20여 곳이 줄지어 있다.
경북 청도 한재미나리 단지. 한재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으로, 130개 이상의 미나리 하우스가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다. 백종현 기자 |
주꾸미 │ 3~4월
주꾸미 샤부샤부. 제철 주꾸미를 즐기는 가장 보편적인 조리법이다. 중앙포토 |
제철 해산물을 잘 몰라도 ‘봄 주꾸미’가 맛있다는 것쯤은 안다. 여름 산란을 앞둔 주꾸미가 잔뜩 살을 찌우는 때가 바로 3~4월이다. 이맘때 주꾸미는 수심 50m 이내 얕은 연안에 서식하는데, 몸 안에 200~300개의 알을 품고 있다. 불에 잘 익히면 먹물과 알이 적당히 어우러져 구수한 감칠맛을 낸다. 수산 자원 보호를 위해 3~4월 알배기 주꾸미의 남획을 막자는 의견도 있지만(주꾸미 금어기는 매년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다), 봄 주꾸미가 특미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주꾸미는 서천·보령·태안‧홍성·고창‧군산 등 서해안 전역에서 두루 잡힌다. 어느 포구 앞에나 주꾸미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이 널려 있다. 국물에 살짝 데쳐 먹는 주꾸미 샤부샤부, 매콤한 양념을 곁들이는 주꾸미 철판 볶음, 살아 있는 놈을 잘게 다져 먹는 주꾸미탕탕이 모두 식도락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먹거리다. 코로나 영향으로 매년 이맘때 열리던 주꾸미 축제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 그나마 서천 마량포구에서는 2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주말에 한해 비대면 축제를 연다.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갓 잡은 주꾸미나 밀키트 등을 살 수 있다.
싱싱한 제철 주꾸미는 사실 별다른 양념이 필요없다. 잘게 다진 '주꾸미탕탕이'로도 즐기는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낸다. 중앙포토 |
섬진강 벚굴│ 4월까지
2년가량 자란 섬진강 벚굴(강굴)은 어른 손바닥 만큼이나 덩치가 커진다. 서해나 남해에서 거둔 굴보다 월등히 몸집이 크다. 백종현 기자 |
섬진강에도 굴이 산다. 바다의 굴은 추워야 맛을 내지만, 섬진강 굴은 봄날이 제철이다. ‘벚꽃 필 무렵 맛이 깊다’ 하여 ‘벚굴’이라고도 불린다. 벚굴은 섬진강 바닥 바위에 붙어 자라는데, 물때에 맞춰 잠수부들이 수심 10m 아래까지 내려가 벚굴을 채취한다. 올해는 작황이 그리 좋지 못한 편. 광양 망덕포구의 30년 베테랑 이성면(65) 선장은 “2년 전 홍수와 극심한 가뭄 탓인지 물량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물량이 줄면서 산지 시세는 크게 올랐다. 2년 전 요맘때 1박스(5㎏)에 3만원 하던 것을, 지금은 최대 5만원도 부른다.
섬진강 벚굴은 3년이면 어른 손바닥 크기만큼 육중해진다. 일반 굴보다 몸집이 세 배 가까이 크다. 속살이 뽀얀 색을 띠는데, 짭조름한 듯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생것 그대로 초장에 찍어 먹어도 그만이지만, 전‧튀김‧찜‧구이‧초무침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다. 큰놈은 하나만 먹어도 제법 배가 든든해진다. 섬진강을 마주 보는 광양과 하동 곳곳에 벚굴을 다루는 횟집이 있다.
키조개 │ 4~5월
장흥 앞바다 득량만에서 갓 잡아올린 키조개. 껍데기 안에 두뚬한 관자를 품고 있다. 백종현 기자 |
전남 장흥의 봄은 바닷바람을 타고 온다. 갑옷처럼 단단한 뼈를 지닌 갑오징어, 친숙한 바지락 등 봄 별미로 넘쳐난다. 득량만에선 ‘조개의 왕’으로 불리는 키조개가 봄의 주인공이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껍데기가 곡식 고를 때 쓰는 키를 닮아 키조개다. 전국 키조개 생산량의 약 80%를 장흥이 차지한다. 특히 키조개마을로 유명한 안양면 수문항 일대에서 한 해 330t가량의 키조개를 거둬들인다.
키조개는 수심 5~30m 개펄에서 자란다. 잠수부가 펄 바닥에 이식한 종패가 플랑크톤 같은 부유물을 먹으며 바닷속에서 부지런히 살을 찌운다. 2~4년이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란다.
제철은 4~5월. 껍데기 안에 꽃등심처럼 두툼한 관자(패주)를 품고 있는데, 얇게 썰어 회나 구이로 먹는다. 고소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최고의 안줏감이다. 지역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한우를 곁들이면 명성 자자한 ‘한우삼합’이 완성된다. 한우의 육즙과 향긋한 표고버섯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대단하다. ‘입이 호강한다’는 말의 실체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키조개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은 수문항 일대에, 한우삼합집은 ‘정남진장흥토요시장’ 인근에 몰려 있다.
제철 키조개는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회·구이·탕으로 차린 키조개 상차림. 백종현 기자 |
장흥산 한우, 표고버섯과 함께 싸먹는 장흥 한우삼합도 봄철의 특미다. 백종현 기자 |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