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더오래]김장독 김치, 옹기 속 화학반응이 차려낸 잔치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18)

독과 항아리는 점토로 만든다. 점토는 곧 근본이다. 그중에서도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의 흙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옹기는 항아리류를 포함한 상위 개념으로 쓰인다. 옹기는 주로 가마 안에서 불을 때서 만든다. 가마 안의 화력은 순차적으로 세지면서 섭씨 1200℃ 이상의 고온으로 옹기를 굽는다.


이때 옹기의 기벽에 미세한 숨구멍이 만들어진다. 가마에서 옹기를 구울 때 점토 속에 있던 물이 증발해 날아가면서 그 자리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옹기가 숨을 쉰다’라고 표현한다. 벽면의 숨구멍으로 공기, 미생물, 효모 등이 통과하면서, 미생물의 활동을 조절해주고 발효를 돕는 걸 의미한다.


옹기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발효식품을 썩히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다. 또한 가마 속에서 연소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와 연기가 옹기를 휘감으면서 방부성 기능도 높여 준다. 정리하면 옹기는 저장성·통기성·보온성·방부성이 뛰어난 도기인 셈이다.


더욱이 옹기는 단열도 뛰어나서, 여름철의 직사광선이나 겨울철 추운 바깥 온도에도 강하다. 따라서 집 밖에 두고 사용할 수 있어 활용성도 높다. 본래 흙으로 만든 것이기에 버릴 때도 부담이 없다. 닳아져 버려야 하는, 마지막까지 자연 환원적 특성마저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지혜가 담긴 옹기를 우리 조상은 생활 속에서 항상 곁에 두고 사용해왔다. 음식이나 술을 담는 그릇은 물론 양념, 수저, 씨앗을 담는 저장 그릇까지 식생활 속에서는 물론이고, 화로, 굴뚝, 의약 기구 등 일상생활에서도 함께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옹기에 담긴 음식물은 신선도나 맛에서 다른 그릇에 비해 월등하다. 특히 김치는 장독에 최적화된 식품이다.


김장독 김치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이다.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젖산균이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데, 적정량은 장독 바깥으로 배출하고 일부는 김치의 국물 안에 녹여 주는 역할을 장독이 해준다.


지금이야 겨울철에도 마트에 가면 싱싱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겨울에 채소 재배가 불가능했다. 채소에서 나오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해야 했는데, 선조들은 이러한 문제를 생활의 지혜로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것이 바로 김치라는 채소 저장 식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전통지식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등재된 건 김치가 아니라,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가 선정되었다. 김장 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가족과 이웃의 협력 및 결속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 의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치 자체의 맛과 식품의 우수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중앙일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장 김치. [사진 UNESCO]

우리 조상들은 봄철에는 새우나 멸치와 같은 해산물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켜서 젓갈을 담갔고, 여름에는 천일염을 구해 쓴맛이 미리 빠지도록 조치했다.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아 두었다가 늦가을이 되면 날씨를 정하고 김치를 담갔다. 가을에 수확한 채소를 겨우내 오랫동안 보존하고 먹기 위해서 발효식품인 김치를 만든 것이다.


모든 과정이 중요하겠지만 그중 기본은 배추 절이기다. 배추가 잘 절여지면 발효가 잘되기 때문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수분도 빠지고 거의 모든 박테리아가 죽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테리아가 바로 김치를 맛있게 익히는 유산균이다.


습기는 채소를 쉽게 상하게 한다. 박테리아가 축축한 유기물에서 번식하기 때문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삼투작용으로 채소에서 물과 세균이 빠져나온다. 삼투는 액체가 막으로 분리될 때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스테이크를 구울 때 소금으로 간을 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고기를 맛있게 구우려면 고기의 수분을 제거해야 하는데, 고기의 표면에 소금을 뿌리고 기다리면 삼투현상으로 수분이 나온다.


배추나 무와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젓갈류를 비롯한 각종 양념과 버무려 밀폐된 장독에 잘 넣어주면 미생물이 발효를 일으키면서 유산균이 성장한다. 여기에서 유산균은 사람에게 유익한 세균을 가리키는 일반 명칭을 말한다. 이렇게 유산균이 천천히 번식하면서 젖산을 생성하는데, 이 젖산이 김치 특유의 맛과 향을 낸다. 마치 화학 반응이 차려 낸 잔치라고도 볼 수 있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