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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봉준호 입' 샤론 최 "봉감독 말투·표현·느낌 탐독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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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통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봉준호의 입'으로 유명해진 샤론 최(최성재‧27). 최씨는 "봉준호 감독님 통역을 맡기로 한 뒤 2~3주 동안 봉 감독님의 인터뷰 영상만 찾아봤다"며 "봉 감독님의 특성상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하실지 몰라 그의 말투와 표현을 최대한 축적해 놓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수상 이후 두문불출하며 휴식의 시간을 가져온 최씨는 1일 서울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특히 문화 우월주의가 심한 미국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기생충'이 공감받고 인정받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며 문화외교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최씨가 국내 언론과 정식 인터뷰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Q : '기생충' 시상식 캠페인 일정이 끝난 뒤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A : 사실 제일 큰 건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었어요. 지난해 5월 칸 영화제로 시작해 8월부터는 계속 미국에 있었잖아요. 시상식 캠페인이 길어지면서 아드레날린에 의존하며 말 그대로 전속력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와 발을 딛고 차분한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어요. 묵언수행을 하려고 열흘짜리 프로그램도 알아봤는데 코로나19로 취소돼 못했고요. 그런 식으로 시상식으로 방치했던 일상을 되찾고 조용히 있으려고 노력했죠. 가족과 친구들이랑도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Q : '기생충' 이후 높아진 인기와 인지도를 실감하나요.


A : 사실 당시에는 제가 그렇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바빠서 신경 쓸 틈도 없었죠. 그저 나에 대해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 정도만 전해 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인천공항에서 마스크 끼고 있는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무척 놀랐어요. 사실 전 '샤론 최'로 불리는 게 굉장히 어색하거든요. 한국에서는 무조건 최성재로 불렸어요. 저도 제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놀라곤 했어요.


Q : '기생충'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정확한 통역 덕분이란 평가도 있어요.


A : 대학교 때 영화를 영어로 공부했기 때문에 미국 관객이 어떤 걸 원하는지 알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전에 관객과의 대담이나 그런 행사에 많이 갔었는데 사실 그들(관객)은 정보를 듣기 위해 행사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과 배우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표정을 짓는지 그런 뉘앙스와 느낌을 알기 위해 가죠. 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에 맞춰 통역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래도 영화는 문화이다 보니 느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정치·외교처럼 정보 전달이 주된 목적이라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문화의 느낌과 감정을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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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통역에서 보여준 빠른 속도와 정확한 어휘 선택을 위해 평소 연습하는 것이 있나요.


A : 사실 그전까지 통역 일을 해본 건 2번 정도가 전부이고, 총 기간을 합쳐도 일주일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니 실제 전문 통역사가 사용하는 기술을 저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죠. 말 그대로 '야메'로 통역을 한 거죠(웃음). 하지만 봉준호 감독님의 통역을 한다는 것이 결정된 뒤 유튜브에서 봉 감독님의 인터뷰는 거의 다 찾아봤어요. 거의 2~3주 동안 인터뷰만 찾아봤던 것 같아요. 칸 시작 전이라서 '기생충'에 대한 직접 정보는 없었지만, '기생충' 이전 작품에서 봉 감독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봉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말투는 어떤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이미 봉 감독님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알았던 상태였지만, 통역이 결정된 뒤로는 정말 깊이 파고들었어요. 직업병 같은 것도 생긴 게 누군가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쓴 한국어가 영어 단어로 생각나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봤어요. 아!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외신 기사들도 많이 찾아봤어요. 거기서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미리 보면 얻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Q : 봉 감독이 수상 소감이나 인터뷰에서 할 말을 미리 공유해줬나요.


A : 봉 감독님이 앞으로 무엇을 이야기할지 미리 공유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죠. 저의 최선은 봉 감독님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축적해 놓는 것이었어요.


Q : 워낙 세계적으로 큰 무대였는데 떨리지 않았나요.


A : 제가 카메라 울렁증과 무대 공포증이 정말 심하거든요(실제 샤론 최는 인터뷰 영상 촬영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쑥스러움도 굉장히 많이 타는 성격이에요. 제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고 축적해 놓은 게 많다고 해도, 무대 위에 올라가서 망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연습도 정말 많이 했어요. 특히 명상을 많이 하고 최대한 머리를 맑게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떨려도 청심환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잠을 잘못 자거나 숙취가 있으면 머리가 빨리빨리 안 돌아갈 테니, 평소 와인을 좋아하는데 다음날 스케줄이 있으면 술도 마시지 않고 최대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많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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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샤론 최가 무대 공포증이라니 의외네요.


A : 저는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제 다리가 떨리는 것도 스스로 느끼고 목소리가 떨리는 것도 스스로 느껴요. 제가 염소처럼 말하고 있을까 봐 제 영상을 보는 게 스스로 무서울 정도죠. 근데 나중에 제 영상을 찾아보니까 스스로 보기에도 안 떠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안 떠는 것처럼 보이는 재주가 있나 봐요, 하하하. 그렇지만 정말 엄청 떨었어요. 매 순간 떨었어요. 저도 제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고, 잘 못 하면 유튜브에 '박제'될 걸 알았기 때문에 잘하려고 무지 노력했어요.


Q : 문화외교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했나요.


A : 너무 놀랐던 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팀은 어딜 가던 슈퍼스타였어요. 특히 봉 감독님은 모두가 그분을 뵙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죠. 사실 미국이란 나라는, 특히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라서 외국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대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영화학 개론을 들었는데, 다 미국 영화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영화 개론 수업인데 다 미국 영화들뿐이었죠. 특히 세계에서 자막영화(외국영화)에 대해 관심이 없는 곳이 미국이에요. 그런 곳에서 영어 한마디 없는 전형적인 한국적 영화가 큰 호응을 받는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A : 사실 지금까지 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양쪽 언어를 사용하고 양쪽 문화를 이해하지만, 둘 사이에 합쳐지거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알아?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알아?'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로 너무 많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봉 감독이 가장 많이 들은 말도 "우리나라도 이래" 거든요. 마치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영화 '기생충'에서) 본 것 같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건 정말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회상에 대해) 기사를 읽는 것과 문화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전에 가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서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 속임수'로 접하게 되다 보니까, 파급력이 엄청 컸던 거죠.


Q : 영화의 길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요.


A : 결정적 계기는 없었지만, 어렸을 때 잠을 잘 못 잤어요. 중학교 때부터 잠이 안 오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화를 두 편씩 보면서 제일 잘 아는 게 영화가 됐고, 제일 좋아하는 게 영화가 됐어요. 그냥 제일 좋아하는 거였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무조건 영화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저한테는 당연했어요.


A : 사실 무섭기도 했어요. 예술 분야라고 하면 굶어 죽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처음 (수업) 들었던 게 영화이론이었는데, 이론을 공부할수록 이론보다는 진짜 영화 창작에 관심이 커졌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창작이란 것 자체에 말이죠. 혼자 글을 쓰는 것보다 힘을 합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 인정하기가 무서웠어요. 영화는 진짜 진짜 위대한 사람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내가 대체 어떻게?'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무서워하는 걸 해보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게 맞지 않을까. 앞으로 제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또 영화를 만드는 건 엄청난 운과 재능이 필요하지만, 지금 나는 그걸 해보려는 과정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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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금 작업 중인 시나리오가 있나요.


A : 있긴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기엔 너무 이른 시기인 것 같아요. 이제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완전히 딴 이야기가 될 수 있고 해서(웃음)


Q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A : 영화는 어떤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엠파시(empathy·공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도 되지만, 공감과 연민을 얻을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죠. 또 어두운 이야기에서 밝은 순간을 그려내는 것, 또 밝은 이야기 속에서 어두운 순간을 찾아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Q : '기생충' 전과 후 가장 달라진 게 뭔가요.


A : 정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 기회였고 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창작에 좀 더 몰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사실 전에는 창작 외에도 영화산업 내에 다양한 분야도 (진로로) 고민했었어요. 근데 지금 보니 제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 저는 이번 일로 제가 연출과 창작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A : 그리고 또 사실 칸이나 아카데미는 정말 세계에서 제일 큰 무대잖아요. 친구들과 모여서 챙겨볼 정도로 정말 큰 무대인데, 그런 명성이나 명예 같은 게 다 인간의 일이라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절대적인 범주의 일이 아니라 그냥 우리 모두의 일이구나. 존경하는 감독님들 지금도 엄청 존경하지만, 그분들도 사람이구나 이런 것도 느꼈어요.


Q : 시상식 이후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A : 사실 저는 그게 제일 기쁘죠. 제 일상은 '기생충'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아요, 크게 달라진 건 없죠. 하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게 너무 뿌듯하고, 속칭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얻게 된 것 같은 기분이죠. 부모님도 온 동네에 끊임없이 자랑하고 다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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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부모님은 영화 공부를 지지하셨나요.


A : 사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제대로 말씀을 안 드렸어요. 물론 부모님은 늘 저를 굉장히 믿어주시는 편이지만, 당연히 외교 쪽으로 나갔으면 하셨죠. 전공 뭐 할지 물어보시면 "몰라 몰라" 하면서 미루다 (대학 입학) 원서를 내야 할 때쯤 영화가 하고 싶고, 이미 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부모님께서도 입학원서 낼 때 제가 써낸 긴 에세이를 보여드렸는데, 그 글을 읽어보시더니 해보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Q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A : 지금은 글을 열심히 쓰겠습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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