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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부잣집 vs 반지하, 극과 극 공간의 엄청난 공통점

이하준 미술감독이 말하는 디테일

'옥자'이어 봉 감독과 연이어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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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봉테일' 감독님 맞아요. 모든 계획과 구상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고, 그걸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스태프에게 정말 상세히 설명해주거든요. 엄청나게 커다란 배를 능수능란하게 잘 움직이는 선장님 같아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을 함께한 이하준 미술감독의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책임진 대저택과 반지하, 극과 극의 두 공간은 배우들의 연기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기택(송강호)네와 박사장(이선균)네의 형편을 한눈에 보여주는데다 대부분의 사건이 두 집에서 벌어진다. 봉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런 공간을 완성한 그는 가장 큰 도전으로 "세트를 만들지만 세트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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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이냐리투 감독도 봉 감독에게 박사장네를 두고 "어디서 그런 완벽한 집을 구했냐"고 물었다가 세트라는 말에 깜짝 놀랐을 정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하준 미술감독이 들려준 엄청난 디테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공간이 또 하나의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기생충' 배우들 전부 엄청 연기 잘하셨잖아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공간이 세트처럼 보인다?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미술팀에게 반지하 동네의 경우 만들려 하지 말고 '구해오자'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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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재개발 지역에서 얻었다. 오래된 실제 벽돌을 실리콘으로 떠서 벽돌을 만들었는가 하면, 문짝·새시·방충망·유리창·대문·연통·전깃줄 등을 미술팀·소품팀·제작부가 나서 몇 달에 걸쳐 구하거나 사들였다. 기택네 집만 아니라 그 동네가 모두 세트. 20동의 건물에 40가구 가까이가 산다는 설정으로 경기도 고양 스튜디오에 만들었다.

미술팀은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스토리까지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을 "해병대를 나와서 자부심이 엄청난 전파상""동네 근심을 해결해주는 무당집""유튜브를 하는 동네 백수""아이가 많은 1층 다세대 새댁" 등으로 설정하고 "할머니가 아들딸을 분가시키고 혼자 폐품을 주우며 근근이 생활하는 집" 앞에는 폐종이가 가득한 유모차를, "근처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는 집"은 창문 근처에 고추장·오뎅 등 재료상자를 쌓아두었다.



디테일은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냄새'도 예외가 아니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진짜 냄새나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까지 소품팀이 만들어 실제 촬영 때 파리 모기가 윙윙거리게 했다"며 "반지하집에서 미술팀·소품팀이 삼겹살을 구워 가스렌지 주변에 기름때를 만들고 벽지에 냄새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오래된 옷가지, 가구 등이 들어오면서 "지하 특유의 곰팡이 냄새까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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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네 집은 바닥 보다 높이 솟은 변기 등 기이하면서도 현실적인 디테일이 두드러진다. 반지하를 꾸미는 데는 봉 감독의 정교한 시나리오, 미술팀의 자료 수집에 더해 미술감독 자신의 체험도 더해졌다. 그는 "대학 때 잠시 선배와 자취했던 반지하의 기억을 몸으로 더듬어 계단의 높이 같은 걸 그렸다"고 했다. 계단 역시 이 영화에서 부잣집, 가난한 집 모두 중요한 부분. 그는 "계단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보기는 처음"이라며 "공간의 특색과 배우의 연기에 맞게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박사장네 집은 전주에 만든 세트. 실내는 물론 정원에 나무까지 새로 심었다. 봉 감독이 원한 것은 "곧게 뻗은 초록색의 나무"였다. "정원이 잘 돼 있다는 곳들을 갔다가 정말 오래된 향나무를 보게 되었는데 겸손하면서도 나무의 무게감과 동글동글한 모양이 박사장네와 상반된 느낌을 받았어요. 미술팀장과 함께 여기저기 농장을 다니면서 나무를 골랐죠. 한 그루 두 그루 심을 때마다 방향 체크하고 위치 조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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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 공사도 필수였다. 정원에 비가 쏟아지는 장면이 있기 때문. "축구장 잔디처럼 배수가 잘 될 수 있도록 바닥에 배수관을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심었죠. 근데 태풍도 오고,날도 유난히 더워서 잔디가 많이 죽었어요. 다시 작업하고 힘들게 촬영을 맞췄죠. 덕분에 조경에 대한 공부가 어마어마하게 쌓였어요. "

영화에 이 집은 유명 건축가가 지은 곳으로 나온다. 하지만 봉 감독이 구상한 실내 구조를 갖고 실제 건축가들에게 물어보니 집을 그렇게 짓진 않는단 얘기가 돌아왔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쓸 때 생각한 평면도를 보면서 내부 디자인을 시작했고,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레퍼런스를 보면서 외형을 연구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따로 찍느게 아니라 그냥 집이어야 했거든요."


영화에는 부잣집의 동네 골목도 등장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박사장네 차고와 외벽도 세트. 세트를 만들어 촬영한 뒤 골목과 CG로 합성했다.



박사장네 소품도 만만치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쓰레기통이 250만원"이라며 "반납할 때도 혹여 흠집날까 봐 달달달 떨면서 했다"(영화 주간지 '씨네21'과의 인터뷰)고 전하기도 했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공들인 소품으로 '인디언텐트'를 꼽았다. 인디언 놀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박사장 아내 연교(조여정)가 미국에서 '직구'로 샀다고 나오지만 실제는 "미술팀·소품팀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텐트"이자 "10개 넘는 견본을 만들어 패턴 디자인하고, 소재 고르고, 조립 방법을 연구해 정말 정이 가는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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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과의 작업은 '옥자'에 이어 두 번째. 그는 '독전''관상''도둑들''미인도' 등의 미술감독에 앞서 2003년 '국화꽃 향기' 데코팀으로 출발했다. "그때는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연극·뮤지컬·오페라 같은 무대미술작업을 하다가 선배님을 통해 영화미술을 처음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너무 모르고 부족했죠."

그는 "그만둬야지, 가 아니라 내가 언젠가는 하고 만다는 오기가 생겼다"며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보다"고 했다. "스승이신 주병도 미술감독님, 민언옥 미술감독님이 늘 말씀하셨어요. 진정성으로 일해라! 그때는 귀에 안 들어왔는데 저도 오래 하다보니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가끔 합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 전 그게 감독님들이 얘기하셨던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봉 감독은 앞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무대에서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아휴...이건 뭐...벅찰 수밖에 없죠. 평생 잊지 못할 수상소감이었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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