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강화도 밴댕이 맛도 잡았다…위스키 제친 국산 증류주의 정체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중앙일보

‘만복정’의 밴댕이 세트(회·무침·구이)에 소머리국밥, 바지락칼국수를 더하고 주변 식당에서 장어구이까지 구해서 차린 안주상. [사진 이승훈]

2022년 5월 인천 강화도에 새로 문을 연 ‘주연향’ 양조장을 방문했다. 주연향의 술은 진작 맛봤기에 그 품질은 알고 있었지만 양조장을 직접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통상 양조장 역사의 시작은 양조면허를 받은 때부터 계산하지만 실제 제품을 생산해서 유통하는 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양조장은 2022년 시작됐다지만 주연향의 제품들은 전통주 시장에서 따끈따끈한 신상들이다.


주연향의 제품은 강화 섬쌀인 찹쌀과 멥쌀 반반에 전통누룩만 사용해 빚은 ‘주연향 탁주 화이트’, 강화 섬쌀과 강화도 교동에서 생산되는 찰흑미에 역시 전통누룩만 사용해 빚은 ‘주연향 약주 레드’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쌀과 차조가 들어간 쌀 소주 ‘야수R53’, 고구마와 쌀을 사용한 고구마 소주 ‘야수S53’, 강화 6년 근 인삼과 쌀을 넣은 인삼 소주 ‘야수G53’ 등 강화도 특산물을 이용한 증류주를 추가로 선보였다. 한국가양주연구소 출신으로 서울 무형문화재 ‘삼해소주’ 고 김택상 명인의 제자인 김양식 대표가 만든다.

밴댕이 주 메뉴지만 국밥, 칼국수 수준급

사실 이번 취재의 주인공은 술보다 강화도의 밴댕이가 먼저다. 3월에 다른 일로 강화도를 찾았다가 오랜만에 강화풍물시장을 방문했는데 2층 식당가가 몰라볼 만큼 깔끔해졌다. 밴댕이 회·무침·구이 등 세트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업력이 오래된 곳 중 하나인 ‘만복정’을 추천받아 방문했다.


혼자였음에도 세트 주문을 흔쾌히 받아주고 음식 맛도 뛰어나 당초 취재를 하러 간 것이 아님에도 1945년생 김민숙 대표, 1970년생 김해론 따님과 함께 가게의 역사와 강화도 밴댕이에 대한 긴 얘기를 나눴다. 이 인연으로 5월에서 7월까지가 가장 제철인 강화도 밴댕이와 이에 어울리는 강화도의 우리술을 페어링 하게 됐다.


중앙일보

강화 섬쌀로 빚은 ‘주연향’의 탁주와 약주, 고구마·인삼 등을 사용한 소주 3종. [사진 주연향]

지난 5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세계 3대 주류 품평회로, 특히 증류주 분야에서 권위 있는 24년 역사의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에서 주연향의 쌀 소주 ‘야수R53’과 인삼 소주 ‘야수G53’이 가장 높은 등급인 더블골드 메달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위스키를 제외한 국산 증류주가, 그것도 동시에 두 제품이 더블골드를 수상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전 세계에서 온 70명의 증류주 전문가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심사한 결과, 5500점이 넘는 출품작 중 수상작은 3974점. 그 중 더블골드를 수상한 제품은 위스키까지 모두 포함해도 854점뿐인데 세계적으로 쟁쟁한 증류주들 중 이제 갓 오픈한 양조장이 어깨를 함께하게 됐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당초 밴댕이 요리와 함께 주연향의 탁주와 약주만 페어링 하려던 계획을 바꿔 증류주도 함께 맛보기로 했다.


만복정은 강화도 외식업 역사의 산증인이다. 울산 출신의 김민숙 대표는 결혼과 함께 상경해 무려 54년 전인 1970년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강화도에서 노점상으로 외식업을 시작했다. 자리를 옮겨가며 포장마차·해물집·중국집 등 다양한 형태의 외식업장을 운영했고 1979년 ‘만복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상호를 지었다. 강화풍물시장 건물이 아직 없던 시절인 2000년부터 복개천 자리에 컨테이너로 만든 식당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밴댕이를 주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이전에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던 경험에 힘입어 만복정에는 다른 밴댕이 판매식당들과 비교해 한우소머리국밥, 순대국, 바지락칼국수 등 메뉴가 다양하다. 심지어 그 수준이 높고 판매해 온 역사가 길다보니 방문하는 단골들을 위해서라도 메뉴를 줄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만복정에선 주연향의 술들을 팔지 않기 때문에 술 반입에 대해 사장님께 미리 양해를 구한 후, 밴댕이 세트에 한우소머리국밥과 바지락칼국수를 추가 주문하고 민물장어 구이도 추가했다. 강화풍물시장에는 또 다른 명물인 민물장어를 구워서 판매하는 업장이 1층 입구에 두 집 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1㎏를 받아 주안상에 더한 것이다.


만복정의 밴댕이 세트 메뉴는 비린 맛이 덜하고 식감은 부드럽다. 무침의 소스도 덜 자극적이면서 밸런스가 좋아 이유를 물었더니 “생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만복정에선 제철에는 강화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물을 사용하고 그 외 계절에는 연평도·신안·통영 등 시기별로 타 지역에서 잡힌 생물을 가능한 공수해온다. 무침용 소스를 만들 때도 손님상 나가기 바로 직전에 직접 만든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식초 등과 섞어 신선하게 무쳐서 내는 것이 비결이다.


드디어 맛을 볼 순서. 주연향의 탁주는 알코올도수 15도로 일반 막걸리의 두 배가 넘는 센 술이지만 막상 맛을 보면 부드럽고 너무 달지도 않다. 가벼운 산미가 느껴지고 과실과 꽃 향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보통의 프리미엄 탁주에 비해서도 두 배에 가까운 발효&숙성기간인 200일의 시간이 더해진 결과다. 역시 막걸리답게 만복정의 모든 메뉴와 가장 무난하게 호환됐고, 그 중에서도 회 무침과 특히 잘 어울렸다.

도수 15도 탁주, 가벼운 산미에 꽃·과실 향

약주도 알코올도수 15도로 재료, 발효, 숙성 등 제법이 탁주와 거의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은 흑미가 들어가고 맑게 여과를 한다는 것. 색은 와인과 비슷해지고 흑미의 개성이 더해져 깔끔하면서도 더 복합적인 향이 났다. 특히 전어를 굽듯 노릇노릇 구워 나온 기름진 밴댕이구이의 살짝 느끼함을 잡아주는 점에서 가장 잘 어울렸다.


증류주들도 소량씩 향을 음미하며 맛봤다. 3종의 증류주는 짧은 양조장 역사 속에서도 모두 1년 이상 옹기 숙성한 53도의 술들이다. 쌀 소주 ‘야수R53’은 가장 익숙한 느낌의 전통 스타일 소주이면서도 균형 잡힌 밸런스에 미세하지만 은근한 배 향이 있어 밴댕이 회와 먹을 때 조화를 잘 이뤘다. ‘야수G53’은 발효단계부터 인삼을 넣은 특이한 경우인데 침출주에 비해 직관적인 인삼 향은 안 나지만 대신 고급스럽고 은은하게 미묘한 향이 나서 숯불 향과 지방 맛이 강한 민물장어 구이와 찰떡궁합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고구마 소주 ‘야수S53’은 재료답게 혀와 코끝을 탁 치는 야성미가 개성 있다. 김양식 대표가 가장 애정 하는 술인데, 한우소머리국밥에 함께했더니 압도적으로 잘 어울렸다.

중앙일보

이승훈 전통주전문가.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외식조리경영학부 겸임교수로 강의 중이다.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