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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만둣국·빈대떡…입이 즐거운 설날

일일오끼⑫ 서울 설음식

떡 마니아가 찾는 이색 인절미

설날 빈대떡 2000장 굽는 전집

정통 이북 손만두 파는 만두집

길이 28㎝ 무게 1.2㎏ 대왕갈비

카페서 즐기는 부채모양 전병


설의 기억은 대개 음식과 얽혀 있다. 어렸을 적에는 설날 아침 뽀얀 떡국을 먹어야 정말 한 살을 먹는 줄 알았다.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고, 친척이 모이는 저녁상에는 평소 맛보기 힘들었던 갈비찜이 올라왔다.


설을 떠올리면 침부터 고이는 이들은, 요즘 들어 부쩍 간소해진 명절 풍속이 속상할 수도 있겠다.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떡·갈비·전 같은 명절 대표 음식은 물론이고 전병 같은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당과 가게가 있으니 말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서울 맛집 5곳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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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경기떡집’은 떡 마니아의 성지로 통하는 떡집이다. 고급 떡이나 독특한 떡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외려 수수하게 떡을 빚는다. 떡 마니아들은 경기떡집이 추억 속의 방앗간처럼 떡 본연의 맛을 지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경기떡집은 최길선(67)씨가 1996년 차렸다. 최씨는 58년 종로에 개장한 흥인제분소에 다니면서 떡을 배웠다. 최씨의 아들 사형제 중에서 첫째·셋째·넷째가 떡집을 이어받았다. 첫째 대로(38)씨는 경영을 맡고, 셋째 대한(33)씨와 넷째 대웅(31)씨는 떡을 만든다. 대로씨는 “우리 형제는 수능 전날에도 아버지 일을 도왔을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 덕분인지 대한씨는 2011년 25세 나이에 경기도 선정 최연소 ‘떡 명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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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두고 떡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설 전날은 하루 매출이 평소보다 10배나 뛴다. 그날은 가래떡을 어슷하게 썬 떡국 떡(1㎏ 8000원)이 손님 손마다 들려 있다. 올해는 들깨를 넣어 고소한 맛을 살린 ‘들깨 떡국 떡’을 선보였다. 경기떡집에서 지나치면 안 될 떡이 이북식 인절미 ‘이티떡(1팩 4500원)’이다. 인절미 겉을 흰 팥으로 만든 소가 감싸고 있다. 달지 않고 담백하다. 매장 안에 떡 먹을 장소가 따로 없다. 대신 손바닥만 하게 포장한 떡을 판다. 망원동 거리를 걸으며 먹기도 편하다. 2월 6~7일 휴무.

지하철 공덕역 2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재래시장 어귀의 전집을 만나게 된다. 시장의 정식 이름은 공덕시장 먹자골목이지만, 다들 ‘공덕동 전 골목’이라 부른다. 공덕시장 상인회 박종성(61) 회장이 “80년대까지만 해도 점포 수 600개가 넘었던 시장이 지금은 점포 120개로 쪼그라들었다”면서도 “그나마 먹자골목 덕에 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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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파는 식당은 4곳인데, 공덕시장 5호 점포에 둥지를 튼 ‘원조마포할머니빈대떡’이 원조로 꼽힌다. 80년대 초 서문정애(83) 할머니가 과일가게 한쪽에서 빈대떡을 팔기 시작했고, 딸 이순애(56) 사장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10년 전만 해도 전 골목은 직장인의 회식 장소로 인기였다. 비 오는 날은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요즘은 다소 한산한 분위기다. 이순애 사장은 “예전과 달리 회식은 줄었지만, 식구들과 먹기 위해 전을 포장해 가는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이 집 명물은 길이 1.5m에 달하는 대형 프라이팬. 설 전날에는 녹두빈대떡 2000장을 이 프라이팬에서 굽는다. 전 한 장을 부쳐도, 팬을 달구는 화구 4개에 모두 불을 댕긴다. “반죽에 열기가 골고루 닿아야 전이 맛있게 익는다”는 게 이유다. 굴전·버섯전·고추전·파전 등 60가지 전을 판다. 전을 고르면 다시 기름에 부쳐준다. 모둠전(800g) 1만9000원. 2월 5~6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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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만두를 직접 빚어 먹는 집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바빠도 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앉아 밀린 이야기 나누며 만두를 빚곤 했다. 이미 우리 입맛은 인스턴트 만두에 익숙해졌지만, 가정식 만두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그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집이 신사동의 ‘만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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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파는 식당)’에 3년 연속 선정되고, 최근 TV에 소개되면서 젊은 손님이 부쩍 늘었다. 몇 해 전만 해도 20~30년 묵은 단골이 주를 이뤘다. 정통 평안도식 만두를 맛볼 수 있어서 실향민 단골도 많았다.

개업 38년째를 맞은 만두집은 2대 사장 옥혜경(70)씨가 어머니 한동숙(2004년 작고)씨의 레시피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두툼한 만두피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버무린 소가 가득하다. 만둣국 한 그릇에 만두 6개가 나오는데 다 먹으면 배가 두둑하다. 국물은 우래옥 물냉면처럼 소고기 향이 진하다. 만둣국(1만1000원)과 녹두전(1만6000원)이 가장 인기인데 만두전골(6만원)에 술잔 기울이는 사람도 많다. 옥씨는 “어복쟁반을 응용했다”며 “정통 이북식이 아닌 엉터리 음식”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줄지어 포장 만두를 사간다. 한때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상징이었던 맥도날드 입구까지 줄을 섰단다. 옥씨가 “우리 만두 사가서 며느리에게 직접 만들었다고 거짓말하는 시어머니가 많다”며 웃었다. 2월 3~6일 휴무.









갈비는 명절 음식의 최고 경지였다. 명절날 고향에 내려가는 자손들의 손에는 큰맘 먹고 장만한 소갈비 세트가 들려 있곤 했다. 갈비를 토막 내 굽거나 찜으로 먹으면 그만한 호사도 없었다.

삼청동 끝자락의 갈빗집 ‘북막골’은 꽃갈비(6~8번 갈빗대)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 굽는다. 그래서 ‘구석기 갈비(대 9만3000원, 중 5만3000원)’라 부른다. 뼈 길이만 26~28㎝, 무게 1.2㎏에 이른다. 워낙 살이 많고 뼈가 크다 보니, 먹기 좋게 가위질하기도 쉽지 않다.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주얼 쇼크’ 같은 시쳇말이 절로 떠오른다. 김종호(60) 사장이 고기를 뼈째 뜯는 만화 속 원시인의 모습에서 아디디어를 얻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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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은 짧지만, 맛은 두루 인정받고 있다. 2013년 가게를 열었는데 2017년부터 3년 내리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꼽혔다. 김씨는 “젊은 층은 비주얼에 혹하고, 어르신은 맛에 반해 돌아간다”고 말했다.

국민대 앞에 별도로 둔 음식연구소가 비결이다. 여기서 매일 고기를 숙성하고, 2시간 정도 삶은 뒤 다시 급랭하는 과정을 거친다. 육즙을 가두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갈빗대는 와인·배·사과 등을 곁들인 특제 마늘 소스를 흥건하게 부으며 굽는다. 한 입 넣으면 입 안 가득 담백한 육즙이 퍼진다. 2월 4~5일 휴무. 택배 주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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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렇게 말린 부채꼴 모양의 전병. 일본말로 ‘센베이’라 불리는 옛 과자다. 전병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맛난 간식이었다. 온갖 단 것이 넘치는 요즘에도 이따금 전병을 와삭 깨무는 상상을 한다. 전병을 명절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명절 만큼 추억을 되살리는 음식은 분명하다.

전병에 대한 향수를 달랠 만한 가게가 있다. 연희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강성은명과’다. 강성은명과는 99년 경복궁 근처 10㎡짜리 작은 전병 가게로 출발했다. 강성은(68)씨가 운영했던 가게를 아들 강바울(36)씨가 물려받으면서 2017년 본점을 연희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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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본점은 과자를 맛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카페다. 손님 절반은 옛날 전병 맛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이고, 나머지 절반은 옛 과자에서 빈티지한 멋을 느끼는 젊은 층이다. 커다란 카페 창을 통해 단독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연희동을 전망할 수 있다는 점도 2030세대를 카페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

바울씨는 아버지한테 배운 옛 방식 그대로 전병을 만든다. 쌀가루뿐만 아니라 밀가루도 국산을 고집한다. 철판에 과자 반죽을 쭉 짠 다음 호떡을 누르듯 반죽을 얇게 펴서 굽는다. 땅콩·피칸·코코넛 등 고명을 올리는데 파래 가루를 뿌린 파래전병이 가장 인기다. 80g에 4000~5000원. 전병 4~5개를 사면 선물용 박스로 포장할 수 있다.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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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라·최승표·백종현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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