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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만 300개, 카이스트 발명왕이 바리스타 로봇 만든 사연

바리스타 로봇 개발 라운지랩 황성재 대표

로봇이 사람 대신해 핸드드립 커피 내려


발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발명대회에 참가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특기자로 대학도 들어갔다. 이후에는 발명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상상만으로는 발명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뭐든 배워야 했고, 알아야 했다.


학부 졸업 후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인간 중심의 컴퓨터 사용 환경을 만들기 위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연구했다.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낸 특허만 300개에 달한다. 현재는 국내 최초의 로봇 협업 카페 라운지엑스를 운영하는 라운지랩 황성재(39) 대표의 이야기다.

라운지랩 황성재 대표. /라운지랩

밤새워서 논문 써도 읽는 사람 적어 특허 내기 시작

“수업 듣기 싫어 수업 시간에 깨작깨작하던 게 발명이라면 발명이었죠. 그러다가 발명대전을 알게 됐고, 상을 받으면 서울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참가했죠. 그렇게 일정한 길이가 되면 덮개가 내려와 휴지를 끊어주는 일명 ‘낭비 방지 휴지 걸이’를 만들어 대회를 나갔는데 상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처음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명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대학원에서 특허를 출원한 기술만 수백개에 달한다. ‘카이스트 발명왕’으로 통했다고.


“대학원에서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는데요. 힘들게 논문을 써도 읽는 사람이 200명이 채 안 됐어요. 허탈했죠. 한번은 논문에 쓴 기술을 들고, 기술을 살만한 기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이디어를 뺏기지 않기 위해 특허도 출원했죠. 그랬더니 정말 기술을 사겠다는 회사들이 나오는 거예요. 정신 차려보니까 1억5000만원에 기술 인수 계약을 마친 후였습니다. 그때부터 특허 출원을 했고, 300여개 중에서 약 30건은 삼성전자 등 국내외 대기업에 이전했어요.”


-당시 특허를 냈던 기술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손가락이 두꺼우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오타가 날 확률이 높아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오타를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모음 다음에 자음이 와야 하는데 모음이 오면 오타일 확률이 높다고 인식하는 거죠. 이외에 멀티터치 기술이라고 한 손으로도 두 손을 이용하는 것처럼 화면을 줄이거나 움직일 수 있고 스크린을 작동할 수 있는 ‘가상 손가락’을 발명했습니다. 한 손을 대고 있으면 화면에 가상 손가락 하나가 더 생겨나고, 이를 이용해 두 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스마트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뉴스에서 멀티터치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 대표(왼)와 황 대표가 안드리아 비안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개발한 자석을 이용한 스마트폰 입력 기술. /MBC 방송화면 캡처, KAIST

-발명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재미인 것 같아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실행하고 또 그런데 그게 실제 쓰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화되는 것들을 경험하고, 예측해서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이 발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낸 특허 중에는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아요. 예를 들어 스마트 워치가 의복에 전류를 흘려줘서 스마트 의복을 만드는 기술도 있었어요. 이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지만 공학도로서, 발명가로서 미래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삼성이 최초로 인수한 한국 스타트업 창업 경험도

-박사 과정을 마친 후에는 발명가에서 연쇄 창업가로 변신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가 인수한 첫 스타트업인 플런티를 창업했습니다. 플런티는 자연어 처리 기술 등을 보유한 AI 스타트업이었는데요. 누구나 쉽게 대화형 AI 챗봇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을 출시하기도 했었습니다. 2017년 삼성전자에 인수되면서 플런티의 기술은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인 빅스비 (Bixby) 개선과 정교화에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술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도 설립했다고.


“스타트업 육성 기업 퓨처플레이를 창업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보육·투자하면서 흥망성쇠를 많이 봐왔었는데요. 성공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실패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에요. 성공한 회사를 봤더니 실패 요인들을 지속해서 줄여가고 있었죠. 저도 회사를 운영할 때 항상 실패 요인들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는 라운지랩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라운지랩은 비대면 자동화 기술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바리스타 로봇 ‘바리스’가 내려준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로봇 협업 카페 라운지엑스가 대표 브랜드에요.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희는 사람이 꺼리는 업무, 인력난에 시달리는 업무, 힘든 업무를 로봇이 대체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바리스타 로봇 바리스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모습. /라운지랩

-리테일테크(retailtech) 주목한 이유는.


“온라인 구매 비율이 늘면서 오프라인 시장이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여기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물리적인 노동인구가 줄고 있죠. 청년들은 일자리 없다고 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육체노동을 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영업자 대부분이 비용을 투자하기보다 자신의 노동력을 희생해가면서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을 활용해 로봇이 대신할만한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라운지랩을 시작했어요. 100년 넘게 이렇다 할 혁신이 없었던 리테일 시장을 기술을 활용해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원두 특성 고려해 커피 내려···재미뿐 아니라 맛도 좋아

-첫 작품을 바리스타 로봇으로 정한 이유는.


“로봇을 만들고, 기술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큰 시장이 필요했습니다. 국내 커피 시장은 세계 3위 정도 되는 큰 시장이에요. 2018년 통계를 보면, 국민 1명이 1년 동안 마시는 커피가 364잔에 달한다고 해요.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신다고 할 수 있죠. 규모가 커 기술력을 시험하기 좋은 시장이라고 판단했어요. 또 커피는 액체이기 때문에 정량적으로 기술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객관화가 가능한 시장이라 로봇화가 적합하죠.”


바리스는 핸드드립 커피만을 담당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커피를 분쇄한 후 주전자를 들고 물을 내려 핸드드립 커피를 만든다. 라운지랩 소속 바리스타의 핸드드립 방식을 기반으로 원두 특성을 고려해 물을 붓는 속도와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도록 알고리즘화했다. 사람이 아닌 로봇이 커피를 내리기 때문에 항상 맛이 일정하다는 것 또한 라운지랩 핸드드립 커피의 장점이다. 

라운지엑스 강남점과 구로점 매장 전경. /라운지랩

-바리스가 에스프레소 샷이 아닌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이유도 있나.


“출시 전 바리스타분들께 어떤 로봇이 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을 때 핸드드립을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어요. 3분 정도 주전자를 들고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고 팔, 어깨에 힘도 많이 들어가죠. 그 때문에 로봇이 대신하기 적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객 반응도 궁금하다.


“신기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바리스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분들도 많죠. 어떤 분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던, 또 잘 모르던 분이셨는데 로봇이 내리는 커피가 신기해서 마셔보니까 맛있었고, 그 후로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로봇으로 인해 커피 시장에 새로운 고객이 한 명 늘어난 거죠. 천편일률적이었던 커피 시장에 새로운 접점을 만들다 보니 신규 고객이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바리스 수출해 로봇 커피 산업 주도하고 싶어”

소비자들뿐 아니라 기업도 협업을 위해 라운지랩을 찾는다. 지난달 말에는 현대자동차 오프라인 체험관 ‘아이오닉5 스퀘어’에서 바리스가 쇼룸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제공했다. 포르쉐와도 협업했고, 워커힐 호텔에서도 바리스가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기존에는 대부분 여성분이 쇼룸을 찾은 고객들에게 커피를 내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남자도 여자도 아닌 기계가 서비스해주니까 젠더리스해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람이 아닌 기계여서 고객이 갑질을 할 수도 없다고 했죠. 현재는 로봇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게 어색하지만, 앞으로는 로봇이 서비스하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정용 커피 시장에도 진출했다고.


“집에서도 라운지랩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콜드브루 원액과 드립백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커피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전문 바리스타가 제조해 만든 제품이에요. 바리스가 내린 커피처럼 항상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캡슐 커피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홈 바리스타 키트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어요.”


-바리스 외 다른 로봇들도 출시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로봇 ‘아리스’를 출시했는데요. 아리스는 터치 화면에서 원하는 맛과 모양을 선택하면 로봇 팔이 움직여 캡슐 아이스크림을 추출해서 컵에 담아냅니다. 자체 브랜드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했어요. 아이스크림 가게 역시 로봇과 사람의 협업 매장으로 꾸몄습니다. 두산 사옥 1층 카페에는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 에스프레소 샷을 반복적으로 뽑아내는 ‘바리스 에스프레소’가 있어요. 상주하는 인원이 500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음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들었죠. 이외에 커피를 캔에 담아 실링 포장을 해주는 로봇 ‘바리스캔’도 있습니다.”

(위부터 순서대로) 라운지랩이 개발한 아이스크림 로봇 아리스와 바리스 에스프레소, 바리스 캔. /라운지랩

-목표는.


“오프라인 리테일 업계가 너무 힘들어요. 직접 해보니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누적 가치는 거의 없었죠. 하루하루 노동하지만, 가치가 누적되지 않다 보니까 또 바뀌고 다른 브랜드가 생기고 하는 것의 연속이었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사업을 주로 해왔던 제 입장에서는 그 문제가 오히려 기회로 보였습니다. 그동안 혁신이 없었고, 문제에 대한 분석이 부족해 솔루션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오프라인 시장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오프라인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남들 다 온라인으로 갈 때 오프라인으로 향했습니다. 힘든 오프라인 시장을 뒤집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희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또 현재 커피산업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주도하고 있는데요. 한국은 커피 소비는 선도하고 있지만,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는 못해요. 로봇커피라는 분야만큼은 저희가 산업을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궁극적으로는 수출도 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글 CCBB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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