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없는 주식학 #23 철강&금속
|철강: 깨끗하게, 가볍게, 예쁘게.
#POSCO #현대제철 #동국제강 #KG동부제철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생국가였다. 그런데 앤드루 카네기, 존 데이비슨 록펠러 등 위대한 기업가들이 산업혁명을 이끌면서 세계 패권국가로 도약했다. 마찬가지로 1960년대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상처에서 막 벗어난 황무지에 불과했다. 미국에 '철강왕 카네기'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철강왕 박태준'이 있었는데, 군인이자 정치인이자 기업인이기도 했던 그는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철강 회사를 일구어내며 '한강의 기적'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늘은 한때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이었던 철강 산업을 알아볼 것이다. 새로운 변곡점에 들어선 철강 산업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1968년 'POhang Steel COmpany(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이라는 공기업이 설립되었다. 당시 정부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제철소를 지으라는 임무를 받은 박태준 명예회장의 주도로 1973년 포항제철소, 1985년 광양제철소가 준공되었다. 대한민국의 중공업을 이끌고 명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 발돋움한 포항제철은 2000년 민영화 작업을 완료하고, 2002년 포스코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0년대까지 중국의 가파른 성장으로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서 포스코는 밝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2010년대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무리하게 인수합병을 추진하던 포스코에게 암흑기가 찾아왔다.
포스코 안에는 본업인 철강 부문과 더불어 종속회사를 통해 영위하는 무역, 건설, 기타 부문이 있다. 철강 부문이 전체 매출의 50%에서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실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철강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을 통한 무역 부문은 매출은 높지만 마진이 낮고,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건설 부문과 포스코케미칼을 포함한 기타 부문의 실적 기여도는 미미한 수준이다. 자동차, 조선, 건설, 에너지 산업에 쓰이는 냉연, 열연, 스테인리스, 후판, 선재가 대표 철강 제품인데 최근에는 Neo Mobility, Mega City, Eco Energy라는 세 가지 메가트렌드에 맞춰 INNOVILT, e-Autopos, Greenable 등 3대 친환경 철강 브랜드를 런칭했다.
2022년 포스코는 민영화한 지 22년 만에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포스코라는 이름은 철강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포스코그룹을 철강으로만 한정짓는 족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포스코홀딩스라는 지주사를 설립하고 포스코는 철강 사업을 전담하는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했다. 그리고 그린철강으로 탈바꿈한 본업과 전고체배터리로 대표되는 신사업으로 양 날개를 펼쳤다. 그룹 전반에 걸쳐 ESG를 강조하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한 '친환경소재 포럼 2022'에서는 이차전지소재와 수소환원제철기술을 포괄하는 친환경 마스터브랜드 'Greenate(그리닛)'을 공개했다.
현대제철은 국내 2위 철강 업체로 철강 부문 매출액만 살펴보면 포스코와 맞먹는다. 1953년 대한중공업공사라는 공기업이 1966년 민영화 이후에도 경영난에 시달리자 1978년 현대그룹이 인수했고,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 편입 이후 2006년 현대제철로 사명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판재 및 선재를 주로 생산하던 포스코와 철근 및 형강을 주로 생산하던 현대제철은 경쟁관계가 아니었으나 현재는 공통되는 사업 영역이 많다. 현대차그룹이라는 뒷배를 둔 덕분에 현대제철은 포스코가 주춤했던 2010년대에도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보여줬다. 그러나 2020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현대차그룹이 곤경에 처하자 현대제철 역시 적자를 면치 못했다.
철강 밖에서 답을 찾고 있는 포스코와 반대로 현대제철은 철강 안에서 답을 찾고 있다. 현대차그룹 또한 전기차 패러다임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차체의 무게를 줄이면서도 안정감을 높이는 철강을 만드는 현대제철은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핵심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의 고객 맞춤형 자동차 솔루션인 'H-SOLUTION'은 자체적인 소재기술과 응용기술을 적용해서 초고강도 경량차체를 실현하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자동차 기술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가장 역점을 두고 개발하는 고기능성 철강은 튼튼하면서도 무게는 가볍기 때문에 자동차 뿐만 아니라 건설 등 다른 산업군에서도 활용도가 매우 높다.
철강 3인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국제강과 KG동부제철(KG스틸로 사명 변경)은 컬러강판 시장에서 맞붙었다. 철강의 꽃이라 불리는 컬러강판은 프리미엄 가전 시장과 함께 성장했는데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 수요가 늘면서 동국제강과 KG동부제철의 실적도 호조를 보였다. 동국제강은 국내 최초로 바이오매스를 60% 이상 사용한 친환경 컬러강판을 개발하여 수익성이 높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반면 KG동부제철은 국내 컬러강판 업체 중 최초로 12개 제품군에 대한 환경성적표지(EPD) 인증을 취득하여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추가적인 설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워런 버핏의 투자 회사로 잘 알려져 있는 버크셔해서웨이는 2007년 포스코의 지분을 4.5% 가량 매입했다. 기업을 보는 눈이 깐깐한 버핏조차 '놀라운 철강 회사'라고 극찬했던 포스코조차 글로벌 경기둔화, 중국의 경쟁심화, 강력한 정부규제로 암울한 2010년대를 보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전방산업이 살아나면서 철강 업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고 있고, LNG선 등 친환경 선박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재건축과 재개발이 착수되고 있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누가 철강이 지저분하고, 묵직하고, 칙칙하다고 했는가? 이제는 깨끗하고, 가볍고, 예쁜 철강이 대세가 될 것이다.
|금속: 금, 은 대신 아연, 구리?
#고려아연 #영풍 #픙산
전세계 증시가 다 같이 상승했던 2020년은 주식 시장 만큼이나 원자재 시장도 분위기가 좋았다. 금 가격은 9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고, 은과 구리 가격도 급등했다. 일반적으로 위험자산에 해당하는 주식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에 해당하는 금은 내려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020년은 중앙은행이 시장에 화폐를 쏟아내면서 경기를 떠받치는 이례적인 시장 환경이었기 때문에 현금의 가치만 떨어지고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 대부분 자산의 가치는 치솟았다. 이번에는 금, 은 같은 원자재와 함께 사이클을 타는 금속 산업을 살펴볼 것이다. 금과 은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금속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
금속 제련은 광산 업체로부터 정광을 수급하여 금속을 제조하고 고객에게 판매하는 비즈니스이다. 금속 업체와 광산 업체는 보통 1년 단위로 TC(Treatment Charge)라고 불리는 제련수수료를 계약하고, 정광의 수급에 따라 계약TC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하면서 스팟TC로 거래한다. 정광을 수급한 제련 업체는 주로 철강 업체에게 금속을 판매해서 수익을 낸다. 이외에도 광산 업체가 보전해주는 제련 손실액(free metal),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타 부산물(by-product), 고객사가 제련 업체에 지불하는 가격할증(premium)이 금속 기업의 매출액에 더해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금속 기업의 실적을 결정하는 것은 계약TC와 스팟TC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금속 제련 기업으로는 고려아연, 영풍, 풍산이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영풍그룹의 계열사로 아연을 주로 제조 및 판매한다. 특히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서 경영권을 둘러싸고 최대주주 간 지분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풍은 지배회사를 통한 비철금속 제련 사업 외에 종속회사를 통한 인쇄회로기판 제조 사업과 반도체 패키지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한편 풍산은 아연을 주력 제품으로 하는 영풍그룹 계열사들과 달리 구리를 전문으로 제조 및 판매한다. 풍산은 신동 사업 뿐만 아니라 방위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는데, 기술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군용탄과 스포츠탄 해외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부터 고려아연을 예시로 금속 기업의 실적을 견인하는 요소들을 알아볼 것이다. 먼저 금속 생산량이 증가하거나 금속 가격이 상승하면 당연히 금속 기업의 실적이 좋아진다. 하지만 생산량과 가격은 제련 업체와 광산 업체의 협상력에 따라 사이클을 타기 때문에 지속성이 떨어진다. 금속 기업의 실적이 구조적으로 상승하려면 원가 개선이 필요하다. 고려아연도 2015년 공장 증설 이후 2016년부터 공정 합리화, 즉 생산 효율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동안 전세계에서 전기료가 가장 저렴한 대한민국에서 수혜를 입은 고려아연은 자체적으로 마진 개선 노력을 많이 한 결과, 확실하게 자리잡은 본업에 유망한 신사업을 얹고 있는 중이다.
고려아연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금속 제련 기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친환경 신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일명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알려진 고려아연의 세 가지 신성장 동력은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 자원순환, 2차전지 소재이다.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 사업에서는 2050년까지 그린에너지로 생산된 그린징크로 100% 전환하고 더 나아가 그린수소 판매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자원순환 사업에서는 폐배터리를 분해해서 리튬, 니켈 등을 추출하고 새 배터리를 만드는 순환경제의 핵심 축으로 부상할 것을 선포했다. 2차전지 소재 사업에서는 양극재의 중간 소재인 전구체와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전지박 사업에 진출했다.
영풍은 올해 세계 최초로 건식용융 방식의 폐배터리 재활용 파일럿 공장을 가동했다. 현재 국내외 대다수 공정에서는 배터리를 셀 단위까지 분리해서 재활용 원료를 제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리튬, 니켈 등 유가금속이 손실된다. 하지만 영풍의 건식용융 방식 공정에서는 배터리를 팩이나 모듈 단계에서 파쇄하여 재활용 원료를 제조하기 때문에 공정처리 속도를 단축하고 유가금속 회수율을 90% 이상으로 높여 제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또한 내년 상반기에는 제련소 내에 습식 공정 설비를 추가하여 건식용융 공정에서 회수한 유가금속을 탄산리튬과 황산니켈 등 제품으로 생산하여 배터리 원료로 재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풍산은 올해 방산 부문을 물적분할하여 자금을 조달하려는 사업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지만 주주가치 훼손 우려로 철회했다. 신동 부문과 방산 부문은 산업적인 특성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시너지를 창출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 부문의 실적이 악화될 때 다른 부문의 실적이 보완함으로써 기업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풍산은 신동과 방산이라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두 사업 부문의 가치를 동시에 상승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만약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심으로 경기 모멘텀이 되살아나고, K-방산이 중동과 동유럽에서 자리잡으면 풍산은 구조적인 실적 개선을 노려볼 수 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금과 은 같은 금속 가격과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왜 굳이 금속 기업에 투자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원자재 투자를 직접 해본 사람은 원자재 가격이 얼마나 빠르게 등락을 반복하는지 알 것이다. 게다가 원자재는 오직 수급에 따라서만 가격이 변동하기 때문에 가치평가가 어렵다. 한편 금속 기업은 실체가 있고 실적에 따라 배당도 지급한다. 그리고 금속 제련 비즈니스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고 정광 수급을 위해서는 광산 업체와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본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으로 경제적해자를 넓혀가는 금속 기업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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