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대만 반도체 시장 리뷰
지난달 대만 반도체 시장을 리뷰하면서 중국발 더블 딥을 언급했다. 그렇게 7월 소재 출하량이 꺾이는 모습을 보며 마음 졸인 지 얼마 되지 않아 8월 중반부터 긴급 요청량이 늘면서 출하량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증가한 물량을 출하하느라 원자재를 수급하고 생산일정을 잡느라 진땀을 뺐다. 8월 출하량은 지난 5월 수준에 근접하며 올해 3번째로 출하량이 많았던 달로 마감했다. 아직 9월 중순이지만 9월 출하량 또한 8월 물량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10월 초에 있는 중국의 국경절 연휴 탓에 중국 OSAT들이 10월 물량을 일부 당겨 출하된 것도 있지만 중국 Fabless를 고객사로 둔 대만 OSAT의 수요량이 또한 급증했다. 9월 출하 물량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글로벌 경기가 주춤하며 전 세계적으로 전자 제품의 수요가 감소했다. 일 년에 걸친 강도 높은 반도체 재고 조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패키징 소재 출하량의 급격한 반등은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그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7월 출하량 수준으로 시장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했다. 작년 하반기 시장 악화에 따른 기저효과와 매년 9월에 있는 애플 아이폰 출하에 맞춰 EMS, OSAT, Foundry의 가동률이 상승하는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이처럼 예상치를 벗어나는 갑작스러운 원자재 수요 변동은 그 원인을 알아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올해 2분기에 이어 8월까지 예상과 빗나가는 시황 전개를 접할 때마다 한 치 앞의 시장 변화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4~6월 3개월 동안 패키징 소재 출하량이 급증한 것은 중국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것으로만 단정했다. 하지만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패키징 소재 출하량이 3개월 연속으로 치솟은 것에 대해 의문이 남았었다. 9월 초 중국 정부가 자국 공무원들에게 아이폰을 포함한 외산 통신기기의 사용을 금지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때마침 출시한 화웨이의 Mate60과 중국 정부의 외산 통신기기 금지를 하나의 연장선에서 놓고 보자 현재 패키지 소재의 시황 변화를 추정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이폰 15의 발표를 1주일 앞두고 중국 정부가 공무원과 국영기업 종사자들에게 외산 통신기기 금지를 흘린 것은 중국 내부적으로 외산 제품 금지에 따른 수요 전환에 대한 대처 준비가 끝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중국 정부는 새로 출시될 아이폰의 중국 내 판매 수량을 낮추고 자국 전자 기업들의 재고 소진과 신제품 출시를 촉진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 듯하다. 때를 맞춰 출시한 화웨이 Mate 60이 7nm에 준하는 미세회로 선폭을 구현했다는 뉴스는 중국인들의 애국 마케팅에 불을 지폈다. 언론에서는 중국 정부의 외산 제품 제재가 아이폰을 겨냥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패키징 소재의 출하 Application을 분석했을 때에는 이번 제재는 비단 아이폰뿐만 아니라 외산 태블릿, 노트북 등 모든 외산 전자제품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올해 5월부터 중국 OSAT로 출하되는 센서 제조용 패키징 소재의 출하량이 증가했다. 해당 센서는 본래 애플의 아이패드에 주로 실장 되는 센서로서, 본래 대만 ASE 가오슝 공장에서 센서를 패키징하여, Foxconn 중국 공장으로 납품되던 제품이었다. 애플의 아이패드 생산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동일 센서는 태블릿 외 스마트폰에는 탑재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패드의 빈자리를 메꿀 다른 제품의 생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ASE 가오슝에서 사용 중인 소재의 소진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을 보며 아이패드의 생산량도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패키징 소재의 출하 물량이 증가하던 시기에는 출하량 증가의 의미를 캐치하지 못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복기해 보면 아이패드의 대항마가 될 중국산 태블릿에 실장 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중국 전자기업들이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기업들은 컨트롤 가능한 범위로 들어온 반도체 재고를 다시 늘려 전자 제품 생산 증가를 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전자 기업들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도 내심 4분기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중국 전자 제품의 수요가 얼마나 촉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물론 중국 전자 기업들의 반도체 재고 소진과 신규 반도체 발주는 단기적으로 반도체 업체들과 관련 소재 업체들에게 가뭄 후, 단비와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전자 기업과 非중국 전자 기업 간의 시장이 분할되면서 중국 시장에 전자 제품을 팔던 외국 기업들의 제품 판매가 둔화되면서 보유한 반도체 재고가 이슈 될 수 있다.
시장의 파이는 한정되어 있기에 풍선 효과로 인해 다른 쪽이 부풀어 올라도 풍선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자칫 향후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어 중국만을 위한 공급망과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으로 분리 운영될 우려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분리된 중국 반도체 산업은 자국 기술과 소재, 장비를 사용한 갈라파고스화된 반도체와 국제 표준을 따르는 반도체로 분할되어 이중으로 운영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시장이 다운사이클에 들어선 지 일 년 남짓 되면서 연간 매출액 하락률이 서서히 갭을 메워 간다. 먼저 매를 맞은 업체들 중에는 이미 플러스로 돌아선 곳도 있다. 또한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몇몇 대만 업체들은 중국 기업들의 주문량 증가로 매출 일부가 개선되었다. 다만 중소형 규모의 OSAT 몇 곳의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시장의 방향을 전환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대만 전자 업계의 각 부문별 1위 업체의 매출 현황을 살펴보자.(* 매월 평균 환율로 원화 전환을 했기 때문에 대만 현지 통화를 기반으로 한 대만 전자기업 연간 매출액 변화와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감안해 주길 바란다.) 대만의 전자기업들은 매년 9월마다 발표되는 신규 아이폰 출시 효과로 8월부터 큰 폭으로 매출이 증가한다. 그러나 2023년 8월은 예년과 달리 애플 효과가 지연되는 양상이다. 시장을 주도해야 할 TSMC와 Foxconn 양사의 라인 가동률이 신규 아이폰의 출시가 임박했음에도 큰 움직임이 없다. TSMC는 아이폰 15에 탑재될 신규 AP의 생산 물량이 라인 가동률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다른 반도체 업체들의 Wafer 위탁 생산량이 저조한 상황이다. 이는 대만 반도체 Substrate Big 3인 UNIMICRON, NANYA PCB, KINSUS의 매출 부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 업체 중 Foxconn의 매출 트렌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전자 제품의 생산량 증가는 곧 Foxconn의 매출액 증가로 이어지며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지부진한 Foxconn의 매출 트렌드는 글로벌 전자 산업이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4개월 동안 큰 폭의 변화가 없으면 자칫 2021년 이전 수준으로 매출이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 반도체 업체 중 가장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업체는 대만의 DRAM 업체인 Nanya Technology이다. 2021년 슈퍼사이클의 정점에서 월매출액 3천억 원이 넘는 기염을 토했던 업체가 월매출액이 1/3로 쪼그라든 채로 횡보 중이다. 최근 인공지능으로 핫한 삼성전자, SK hynix의 HBM은 Nanya에게는 아직 먼 얘기이기 때문에 주력으로 판매 중인 중저가 라인업으로 상황이 타개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DRAM생산을 위한 Wafer 투입이 장기적으로 줄어들면서 Nanya의 협력업체인 FATC의 라인가동률이 급감하며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국내 OSAT들이 처한 상황도 FATC와 별반 다르지 않다. 원청업체조차 자신들이 운영하는 자사 패키징 라인이 비어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OSAT업체들에게 물량을 할당할 수 있을까. 메모리 가격의 반등을 기대한다는 기사가 최근 자주 보이지만 현실에서 악전고투 중인 업체들의 현실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대만 최대 Fabless업체인 MEDIATEK의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MEDIATEK은 2021~2022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간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 모바일 업체로의 매출 비중이 높아 당시 중국 모바일 기업들의 성장을 추종하며 글로벌 Fabless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큰 폭의 매출 변동이 있었다. 작년 하반기에 MEDIATEK의 통신칩 패키징에 사용되는 소재를 OSAT로 출하했다가 유효기간 내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별다른 호재 없이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MEDIATEK 역시 2021년 매출액을 밑돌 것이 확실하다.
대만 전자 업체들은 국내외 업체들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비중이 높지만 대만 국내 업체들 간에도 긴밀하게 엮여 있다. Fabless-Foundry-OSAT-EMS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중 어느 하나라도 개선되는 신호가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다음 단계의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살아나며 선순환을 이어갈 수 있다. 중국발 수요 증가의 온기가 일부 있지만 8월의 마감 자료를 기반으로 봤을 때, 전자 산업 업황의 반등은 아직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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