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대만 반도체 시장 리뷰
- 삼성전자(DS부문) : 매출 13.73조 원, 영업이익 -4.58조 원, 재고자산 31.95조 원
- SK하이닉스 : 매출 5.08조 원, 영업이익 - 3.40조 원, 재고자산 17.18조 원
예년과 달리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던 4월 마지막 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3년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손실 규모를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양사 합계 8조 원에 달하는 역대급 분기 영업 손실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손실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올해 내내 손실 규모가 지속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마이크론,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적극적인 감산에 가세했지만 이들이 양손 가득 들고 있는 재고는 쉽사리 줄지 않고 있다. 언론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바닥을 찍었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 hynix는 이제 반등할 일만 남았다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올해 3분기만 되면 모든 악재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메모리 업체들이 가진 재고 규모와 재고의 구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기대가 얼마나 근거 없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새 분기 매출액의 2배(삼성전자), 3배(SK hynix)가 되어 버린 재고 자산의 규모는 증가세가 멈추기 않고 있으며 이미 패키징이 완료된 제품의 비중이 늘어 가는 것은 분명 전방 시장의 약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작년 11월 ChatGPT로 인해 촉발된 인공지능 반도체의 수요 증가는 분명 HBM(High Bandwidth Memory-광대역폭 메모리)의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지만 일부 고기능 제품의 판매만으로 메모리 사업 전체의 손실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와 데이터 센터 같은 대량의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침체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23년 4월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쪽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동안 끝도 없이 감소하던 저사양 반도체의 생산량이 드디어 바닥을 다지고 대만과 중국의 OSAT를 중심으로 생산량이 반등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Lead Frame 기반의 QFN 패키지는 가장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가진 패키징 방식으로 반도체 전체 생산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자기기 한 개에 적게는 서너 개, 많게는 수십 개의 QFN 패키지가 탑재된다. QFN 패키지는 선단패키지 대비 생산 공정이 간소하고 생산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많은 Fabless와 IDM들이 Mid-Low 기능의 반도체를 QFN 타입으로 설계하고 있다. 2010년대 QFN 패키지의 수요량이 급증하던 시기에는 QFN 패키지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OSAT의 생산 Capa. 를 가늠했던 적도 있다.
역대급이었던 2021년 하반기의 반도체 생산 정점을 지난 2022년 1월, 중화권 OSAT업체들을 시작으로 QFN 패키지 생산에 사용되는 원자재의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OSAT업체들과 EMS업체들의 반도체 과재고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되면서 QFN 패키지에 대한 혹독한 재고 조정이 시작됐다. 근 1년여의 재고조정 끝에 QFN 패키지의 생산량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지난 2018~2019년에 있었던 반도체 다운사이클 시기에 QFN 패키지의 재고조정 기간이 6개월이 채 안 됐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다운 사이클에는 1년가량으로 재고 조정 기간이 두배로 늘어난 셈이다. 그만큼 2021년의 반도체 생산량이 역대급이었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4월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5월 중순 현재 상황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QFN에 대한 시장의 재고 수준이 관리 가능한 범위까지 안정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OSAT을 중심으로 QFN 패키지 생산을 위한 원자재의 발주가 늘어나고 있다. 단, QFN 패키지의 생산량 반등이 곧 반도체 전체 시장이 2021년 하반기로의 회귀를 뜻하지는 않는다. 긴 재고 조정 끝에 QFN 패키지 생산량이 다시금 2019년 수준으로 올라섰을 뿐이다. 4월~5월에 포착된 반등 신호가 확실하다면 이는 반도체 시장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QFN패키지의 하락세가 비로소 멈췄다는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럼 메모리 반도체의 반등은 언제쯤으로 예상할 수 있을까. 2018~2019년 QFN 패키지의 재고조정에 6개월이 소요되었을 때, 메모리 반도체의 조정에는 약 12개월이 소요됐다. 이번 QFN 패키지 재고조정이 2배로 늘어 1년이 걸렸던 만큼 메모리 반도체의 재고 조정기간은 24개월이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2년 3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의 시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3분기까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마저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뿐만 아니라 공급망 곳곳에 천정부지로 쌓은 재고의 양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도전적인 예측이다.
전방 산업의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사소한 호재라도 있으면 이를 침소봉대하기 바쁘다. 불과 몇 달 이후에 상황이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자본 시장과 현실은 별개이기 때문에 현실을 자본 시장에 투영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본 글은 현황을 이해하는 정도의 참고 자료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대만 업체들의 4월 실적을 살펴보면 일부 EMS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체들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 2020~2022년 동안 대만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왔던 Foundry 업체들의 Wafer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OSAT업체들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2021년 하반기, 생산량 최정점을 지나면서 OSAT업체들은 신규 투자를 통해 생산력을 대폭 확충하고 고객사 물량을 대응하기 위한 생산 인력을 늘렸기 때문에 고정비 증가로 몸이 무거운 상태이다. 전체적인 생산 능력은 증가하고 생산량은 줄었기 때문에 OSAT업체들의 가동률은 40%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대만의 OSAT업체들도 규모가 작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종업원들을 일주일에 2~3일만 출근시키기 시작했다. Global no. 1 OSAT인 ASE조차 오후 3시 이후 엔지니어들의 업무를 줄여 조기 퇴근을 유도하고 있다. 3월 초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QFN 반도체의 생산량이 반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패키징 위탁 비용이 낮기 때문에 다운사이클의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4월 출장 중 만난 대만 반도체 업계 지인들은 QFN 패키지의 생산 수량이 반등하는 것은 맞지만 반도체 시장 전체의 반등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Fabless업체들이 미처 취소하지 못한 주문이 많고 공급망 내 적체된 재고가 상당한 수준임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전자 업계의 실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단기적인 반등에 그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사용한 지 3년이 넘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아직 한참은 더 사용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만 EMS업체들의 실적을 보면 대만 지인들의 말처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이맘때, 중국의 주요 도시가 봉쇄되면서 중국 내 전자제품의 생산이 원활하지 못했다. 올해에는 작년과 같은 봉쇄도 없고 리오프닝으로 인한 기대가 가득했음에도 전자 제품의 생산과 소비가 예년만 못하다. 중국 리오프닝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소비 여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적체된 전자 제품 재고가 쉽사리 소진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른 전자 제품 업체들의 전자 제품들이 팔리지 않으면서 당초 기대와 달리 반도체 재고가 좀처럼 소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시 악순환이 되어 반도체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반도체 경기의 반등을 지연시킨다.
경기 악화 따른 소비 감소 → 전자 업체의 전자 제품 과재고 → 반도체 발주 주문 취소 & 입고 연기 → Fabless 업체의 반도체 위탁 생산 물량 감소 → Foundry 업체 Wafer 가공 수량 감소 → OSAT 업체 Test & 패키징 위탁 생산량 감소 → 반도체 설비, 원소재 발주 감소 → 경기 침체로 인한 전자 업체의 재고 소진 지연 → 반도체 주문량 감소
현재 반도체 시장 상황은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려운 안갯속과 같다. 일부 패키지에서 생산량 반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재차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지금의 반등세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확실한 턴어라운드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2023년 4월을 떠올렸을 때, 다운 사이클의 분위기에서 희망을 찾았던 달로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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