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대만 반도체 시장 리뷰
작년 말,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챗봇 "ChatGPT"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뜨겁다. 검색 시장 점유율 90%에 달하는 구글의 검색 서비스가 ChatGPT에 의해 잠식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한때 구글의 주식이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구글에서는 ChatGPT의 등장을 역사상 최대의 위협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Chat GPT를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ChatGPT도 기존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다른 챗봇들과 유사한 채팅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챗봇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 수준이 스마트폰 초기의 "심심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ChatGPT를 통해 경험한 인공지능의 발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심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도 30초 남짓의 짧은 시간에 답변을 내놨다. "인공지능의 찬반에 대해 빌게이츠의 관점에서 300 단어로 작성해 줘."라는 질문에 단 30초도 안되어 깔끔한 문장으로 글을 써냈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확인한 ChatGPT의 강력한 성능에 무서운 느낌까지 들었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관련 영상을 통해 ChatGPT의 폭넓은 가능성은 정말 무궁무진했다.
특히 코딩 관련해서는 ChatGPT를 활용함으로써 많은 부분을 보조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직 보완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예상치 못한 단시간 내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ChatGPT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소모되기 때문에 채팅서비스로 인해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hatGPT를 개발한 OpenAI는 무료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수집할 충분한 인풋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 버전의 출시가 단기간 내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챗봇의 등장으로 인해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인류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팽팽하다. 이 글에서는 반도체 산업에서의 파급력에 대해서만 접근하고자 한다.
2022년, IT산업계는 "메타버스"라는 모멘텀을 조성하여 성장 패러다임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하다 보니 어느새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2023년에 즈음하여 인공지능 기반의 챗봇으로 반도체 업계에 미약하나마 훈풍이 불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메타버스든 인공지능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반도체 산업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강력한 모멘텀이 필요하다. 닷컴 버블 시기의 "인터넷", 리먼 사태 때의 "스마트폰", 2017년 메모리 과잉을 한방에 날린 "데이터 센터"까지 침체에 빠진 IT산업을 위기에서 탈출시켜 준 것은 바로 강력한 모멘텀의 등장이었다. 인공지능의 원활한 구동을 위해서는 연산을 위한 고기능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를 원활히 구동하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한 다양한 반도체들의 보조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에 의한 반도체에 대한 신규 수요가 발생하게 되면 적체된 반도체 재고의 소진과 더불어 반도체 생산량 증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다운 사이클이 시작되며 중단된 신규 반도체의 개발을 재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도체 생태계의 선순환이 유지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붐이 반도체 산업 반등의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어느덧 봄을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되었지만 반도체 업계의 한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만 반도체 OSAT업체들의 2022년 1월 & 2023년 1월 연간 매출액 비교(YoY) 자료를 보면 현재의 심각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Test업체인 Ardentec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장사가 작년 1월 대비 9~63%의 매출이 줄어들었다. 일부 업체들은 지속적인 매출감소로 인해 어느새 코로나 이전 수준보다 더 매출액이 감소한 곳도 있다. 마지막까지 악전고투 중인 Ardentec조차 3월이면 YoY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OSAT의 연간 매출액 감소의 의미는 생산되는 반도체의 양이 작년 대비 줄었다는 것을 뜻한다. 반도체의 생산량이 줄었다는 것은 곧 전자 기업들의 반도체 수요량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전자 제품의 재고가 소진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다. 반도체 생산량이 지속 우하향하면서 1월 기준 대만 OSAT업체들의 원자재 사용량은 바닥으로 떨어진 뒤 요지부동하고 있다. 더 이상의 급격한 추락은 없을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등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상당기간 현재와 같은 지지부진한 가동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OSAT업계 사람들에게 시황 예측에 대해 물어보면 올해 2분기까지 상황 반전이 어렵다고 확신한다. 다만 3분기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이다. 이성적으로는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올해 안에 상황이 반전되는데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대만의 Foundry와 EMS 업계를 대표하는 TSMC와 Foxconn 2곳 만이 굳건한 모습이다. TSMC는 1월 매출액 NTD 2천억(8.2조 원)으로 작년 동월 대비 16%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 12월 매출액 NTD1,950억(8.1조 원)에서 소폭이나마 매출액도 증가했다. 대부분의 대만 기업들이 1주일이 넘는 설연휴를 갖었음에도 TSMC의 1월 매출액은 최대치를 갱신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전체가 휘청이지만 아직 TSMC는 영향권 밖에 있다. 하지만 TSMC를 제외한 모든 Foundry업체들의 Wafer 출하량이 감소했다. 이들로부터 Wafer가 지속 유입되어야 OSAT의 가동률이 유지될 수 있는데 Wafer 생산량이 도리어 줄어버리자 OSAT의 가동률 또한 지지부진하다.
2021년만 해도 영원히 성장할 것만 같았던 Foundry 업체들이었다. 2022년 시작된 다운 사이클로 인해 규모가 작은 업체들부터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생산량 감소는 중대형 업체들로 번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Foundry 비중이 높은 Powerchip의 경우, 작년 동월 대비 1/3 수준의 매출로 큰 폭의 감소가 있었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일반적인 다운 사이클의 경우, 급속한 Wafer 생산량 감소 후 "V"를 그리며 회복하는 것이 기존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번 다운 사이클은 점진적인 생산량 감소로 인해 관련 업체들을 말려 죽이는 듯이 괴롭히고 있다. 코로나 펜더믹 기간 중 매분기마다 Wafer 가공비를 올렸던 UMC와 TSMC도 상황이 악화되면 가격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Foxconn은 작년 10월 코로나로 인한 중국 정조우 공장의 생산인력 이탈로 인해 미처 출하하지 못했던 2022년 4분기 물량 일부가 1월에 출하되었다. 애플향 아이폰의 출하량 증가에 힘입어 1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일로이기 때문에 2월 이후는 매출액이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아이폰에 탑재되는 모듈을 생산하는 ASE Holdings의 자회사 USI의 매출 또한 증가했다. 다른 EMS업체들은 전자 제품 수요 감소와 긴 연휴로 인해 매출이 감소했다.
2023년 1월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 폭이 심상치 않다. 특히 중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의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무역수지를 끌어내렸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는 메모리 반도체를 탑재하는 전자 제품의 생산량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대만의 DRAM생산 업체인 난야는 자사 제품을 주로 중국 전자 기업들에게 판매한다. 현재 중국 전자기업들은 재고가 포화 상태에 다다르자 수익 개선을 위해 최신 고사양 제품 생산에 집중하여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전자 기업들이 재고가 가득 쌓인 중저가 제품의 생산량을 줄이면서 DRAM 수요량도 감소하고 있다. 전방시장이 교착상태를 보이면서 난야의 재고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난야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보다 규모 면에서 열세이다 보니 한국의 경쟁자들과 같이 Wafer 패키징을 지연시키며 물량을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난야는 패키징이 완료된 제품 상태의 재고의 비중이 높다. 제품화가 이미 완료되었기 때문에 중국 고객사들의 Order Cut Risk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제품 재고 비중이 높은 난야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가진 재고를 떨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 남짓이라고 해서 난야의 몸부림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난야에서 던지는 가격이 곧 시장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16조 원에 달하는 재고를 안고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난야의 행보에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난야의 1월 매출액은 NTD22.5억(923억 원)으로 작년 1월 매출 NTD67.7억(2,931억 원) 대비 67% 감소했다. 월 매출액이 최저점을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유사한 월매출을 찾으려면 2012년 12월까지 1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심각한 매출액 감소에 직면해 있다. 우려되는 사항은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시차를 두고 난야와 유사한 패턴의 매출 감소를 보인다는 것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Fabless 3곳(MEDIATEK, NOVATEK, REALTEK)과 중소형 Fabless인 HOLTEK의 매출액 변화 추이를 살펴보자. 2020년 1월을 기점으로 2022년 초반까지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2년 중반을 기점으로 매출액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약간의 시차가 있으나 OSAT의 매출 감소가 시작된 이후, Fabless의 매출 감소가 뒤따랐다. HOLTEK의 경우, 이미 2020년 1월 매출액을 하회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가 바닥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MEDIATEK은 삼성전자와 중국 제조사의 스마트폰에 AP와 통신칩이 탑재되면서 큰 폭의 성장을 이뤘다. 2021년 기준 글로벌 Fabless 5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봉쇄를 비롯한 복합적인 이슈가 겹치면서 스마트폰의 판매가 부진하자 그 여파를 그대로 얻어맞았다. DDI(디스플레이 구동칩)을 설계하는 NOVATEK과 PC용 오디오 코덱의 강자인 REALTEK 또한 전자 제품 생산 감소로 인해 매출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칩을 생산하는 Foundry와 OSAT의 매출이 감소했음은 물론이고 칩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가동률은 처참한 수준이다.
Fabless 매출의 지속적인 하락은 반도체 시장의 과재고 상황이 여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단시간에 상황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에 반도체 생태계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장기전을 대비해야 할 시기라로 생각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다운 사이클도 우상향 그래프 중 하나의 작은 굴곡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을 직시하고 최악의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를 넘기고 생존한 기업만이 다음 반등의 시기를 도모할 수 있다.
중국에 위치한 몇몇 IDM과 OSAT가 패키징 라인의 가동을 멈췄다고 한다. 일부 업체에서는 패키징 물량이 없어 직원들이 일주일에 2~3일만 출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본시장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친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 붐업으로 인해 후끈하지만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바닥을 치고 반등할 시기에 다다랐다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안고 가도 될 만큼 경기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경기 연착륙은 커녕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기 침체를 피하려면 제조업의 가동률이 유지되면서 전반적인 생태계가 선순환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본격적인 하락기에 진입했다. 다운 사이클이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만큼, 경기 반등 시점까지 어떻게 버틸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붐업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상승기류가 발생했으면 한다. 새로운 모멘텀의 등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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