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왜 3월에서야 금리를 올렸을까
실업률 4% 선에 그 향방이 있었다
이전 글(미국은 언제까지 기준금리를 올릴까?)에서 한가지 간과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내 고용률에 대한 부분이었는데요,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조절을 하거나 자산매입 등을 하는 데 있어 보는 주요 지표가 실업률이란 부분입니다. 포워드가이던스(선제안내) 측면이 강한데, 연준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갖고 시장에 신호를 줍니다. '어느정도 수준이 되어야 행동에 옮기겠다' 정도로 해서 시장에서 느낄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것이죠.
© 중앙일보
이 부분은 '이지코믹'님께서 댓글로 지적해주셨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의 반비례적 경향성을 보여준 '필립스곡선'에 대한 것도 말씀주셨고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시중 채권 매입을 통한 자산매입을 할 때도 주요 지표로 삼았던 게 바로 실업률과 신규고용인력 등이었다는 것이었는데, 인플레이션이라는 하나의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좀 치우친 결론으로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플레'를 잊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는 2020년말부터 이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각국의 기준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이 국채 매입까지 나서다보니 시중 통화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때까지는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황이 크게 우려되던 때였습니다. 시중 통화량이 늘어난다고 한들 경기 자체가 침체인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통화량이 어느 정도 늘어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적을 것이라는 생각은 2000년대 일본의 디플레이션 상황과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굳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예로 일본은행은 1990년대 후반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낮추고 2001년 직접 국채를 매입하며 '양적완화'를 전세계적으로 소개합니다. 2013년 이후 '아베노믹스'로 또다시 많은 양의 엔화를 살포했고 2016년 당좌예금 등에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했음에도, 일본 물가는 거의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최근 15년 기준 미국내 물가지수(CPI) 상승률. 코로나 펜데믹 이전까지 평균점 2% 밑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어땠을까요? 물가상승보다는 경기 침체 등의 우려가 더 컸습니다. 미국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금리를 낮게 가져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맞으면서 이 같은 생각은 더 강해집니다. 당장의 고용 안정과 경기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은행과 정부 금융기관들이 나서서 채권을 매입하고, 기준금리를 낮추고 했던 것도, 기업의 대량도산에 따른 실업 증가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2020년 상반기 세계 경제는 너무나 긴급했습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컸던 것입니다. 극약처방으로 국민들의 주머니에 직접 돈(ex. 재난지원금)을 찔러넣어주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금리는 낮고, 양적완화 등을 통해 풀린 돈에 정부의 지원금까지 겹치다보니 통화량은 단기에 크게 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에 가리워졌을 뿐,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회복 기대감, 인플레이션을 자극
이같은 불안감은 현실이 됩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오면서, 각 나라별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이 습득되고, 백신도 개발되면서 '곧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커진 것입니다. '다시금 예전처럼 나갈 수 있다'라는 희망이 커진 것이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의 소비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67~69%에서 변동했지만, 지난 2021년에는 70% 이상까지 급등했습니다. 여행이나 외식 등 직접적으로 코로나19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들도 있지만, 일부 기업의 직장인처럼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의 재정지원까지 더해져 각 가계의 소비 여력이 축적됐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장기채 금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을 보면 2020년 8월 0.5% 밑선에 있던 게 2021년 3월 1.7%까지 올라갑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
인플레이션이란 측면만 놓고 보면,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자자들은 이미 이때부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조금더 나아가면 인플레이션에 따라 중앙은행이 자산매입을 중단하고 기준금리에 나설 시기가 보다 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죠.
이는 요렇게 볼 수 있습니다. 채권 수요와 가격, 그리고 수익률(금리)를 기준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은 기존 채권의 가치 하락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3% 표면이율로 발행된 10년만기 채권이 있다고 한다면, 금리 인상에 따라 5% 표면이율로 발행된 10년만기 채권보다 매력도가 떨어집니다. 3% 표면이율 채권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면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수자의 수익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같은 이자를 받지만, 원금보다 싸게 매수했으니까요.
인플레이션을 기준으로 놓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채권 발행자에게 보다 많은 금리를 요구하는 것이죠. 왜냐,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기에, 높은 인플레이션은 장기채 투자자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그만큼 원금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니, 이를 보완할 정도로 추가 금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2021년 현실이 된 인플레
시장의 경고와 우려는 실제 지표로도 나타납니다. 2021년 4월부터 미국내 도시 CPI 상승률이 전년동월 대비 4% 대 이상을 기록합니다. '평균 2%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갖고 있었던 연준의 스탠스도 조금씩 변화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른바 '테이퍼링'이라고 해서 자산매입의 규모를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었죠.
그래도 기준금리를 바로 올리지 않았던 것은 실업률 때문입니다. 실업률 목표치를 완전고용의 상징점(3%)보다 윗선인 4% 선으로 잡고 있던터라, 좀더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반기 미국 실업률은 5~6%대로 목표치보다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업률이 낮아지기 전까지 어느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인플레 진화에 나섰다가 실업률을 높일 수도 있었죠. (필립스 곡선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미국 실업률 (%)
이후 2022년 1월 실업률은 목표치였던 4% 밑선인 3.9%를 기록했고, 2월 이후에도 죽 4% 밑선을 보이자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물가 상승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만큼 높아진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경기를 희생시키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목표 아래 자이언트스텝까지 밟게 됩니다. 어찌보면 '기준금리 인상에 실기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이후 행보를 보면 '연준이 과단성있게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연준이 기준금리를 이렇게까지 높일 수 있는 배경에는 또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 11월 발표된 미국 10월 실업률은 3.7%로, 목표선인 4% 밑선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실업률 목표치만 놓고 보면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나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과도하지만 않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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