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ETF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국채를 매수하는 사람들
| 러시아 국가 부도 위기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 3월 16일 만기가 도래한 국채 2건에 대한 이자를 JP모건 러시아 계정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러시아가 이자를 지급했다 안했다 논란이 많았지만, 일단 달러화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당장의 디폴트 위기는 넘겼습니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의 이번 디폴트 위기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등 다양한 광물의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부국이며 외화보유액도 64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사실상 부도의 우려가 없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제재로 보유 외환 중 상당 규모를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자금 흐름이 나빠졌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진다면 러시아 내부 경제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러시아 ETF 투자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증시가 요동치는 가운데, 러시아 ETF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습니다. 러시아 증시가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급락했고, 전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으로 매수세가 유입된 것이지요.
이른바 '지정학적 위기'는 대체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되고, 이후에는 가격이 결국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러시아 ETF를 매수한 것이지요.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서방의 제재가 예상보다 심해지면서 러시아 관련 투자의 리스크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러시아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KINDEX 러시아 MSCI' ETF의 경우, 올해 초 3만 원 선을 횡보하다 3월 3일 기준 1만 4380원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이 같은 하락에도 일부 투자자들은 오히려 매수를 했습니다. 최근 개인은 267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기관 등이 내놓은 물량을 대부분 소화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러시아 관련 상품은 손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MSCI는 러시아를 신흥국 지수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러시아가 신흥국 지수에서 제외되면 각종 펀드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러시아 증시 전반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 국내에는 총 8개의 러시아 펀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자산운용사는 러시아 펀드에 대한 환매 중단 절차에 들어가면서 러시아 펀드는 현재 신규 가입과 환매가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월 말부터 자국의 주식 시장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뉴욕 증시 등에 상장된 러시아 주식 역시 거래가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해외 증시의 러시아 ETF를 매수한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러시아 ETF 중 일부는 이미 상장폐지가 결정되었고 아직 상장폐지가 결정되지 않은 ETF의 수익률도 매우 저조하기 때문입니다.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채 매수
한편, 일부 투자자들은 우크라이나 국채를 매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바닥으로 추락한 채권 가격이 종전 후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만기 때 1달러를 지급하는 우크라이나 국채 가격이 달러당 22센트까지 추락하자 일부 투자자들이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에도 우크라이나가 어떤 형태로든 독립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우크라이나가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부터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여 우크라이나 국채 가격이 다시 오를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입니다.
국가 부도 위기까지 직면한 러시아 국채도 가격이 폭락하자 매수하고 있습니다. 일부 신흥국 펀드매니저들은 이미 러시아 채권을 샀거나 매수 시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최근 2047년 만기 러시아 달러 표시 국채 가격은 달러당 17센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위기와 기회
사실 이런 투자법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도 세계 2차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의 국채를 매수해서 140배의 시세차익을 얻었고, 또 옛 러시아제국 국채를 매수해서 6000배의 시세차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 국채는 아니지만, 워런 버핏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버핏의 투자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버핏이 30대 중반이던 1963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스캔들에 휘말려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버핏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비록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했지만 핵심 사업은 타격받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을 한 후, 주당 65달러에서 35달러로 떨어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13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2년 후 아멕스 주가는 세 배로 뛰었고, 5년 뒤에는 주당 189달러가 되었습니다. 이 거래로 버핏은 큰돈을 벌었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사례는 버핏의 전형적인 투자기법의 한 예에 불과합니다. 버핏은 항상 훌륭한 기업이 비틀거릴 때를 주목했습니다. 즉, 우량한 기업이 일시적으로 어렵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좋은 투자 기회라 생각한 것이지요.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많이 받은 업체일수록 코로나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가장 빨리 주가를 회복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최근 경제 위기 속에서 버핏이 싼 가격에 많은 우량 기업에 대한 출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 러시아 ETF나 우크라이나·러시아 국채를 매수한 투자자들도 이와 같은 사례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언론이나 전문가는 이들을 무모하다며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행위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기회는 항상 위기와 함께 오며, 리스크 없는 투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투자의 결과가 문제인데, 다른 사례와는 달리 현재 서방의 제재가 워낙 심해 원금의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당사자국의 주식이나 채권을 거의 휴지 값으로 구입한 뒤 나중에 가격이 정상화되면 되판다는 전략은 쉽게 생각하기도 어렵고 쉽게 결행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투자란 본래 그런 것입니다. 리스크를 부담하며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지요.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다른 사레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런 기회를 제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회복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도 모릅니다. 빠른 종전과 좋은 결과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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