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의 부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사진 속의 인물은 2006년 작고하신 대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ESG를 다루기 전에 난대 없이 15년 전에 작고하신 경제학자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사람이 ESG 전까지 글로벌 경제 및 금융 산업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는 이 사람의 유산이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해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사상의 창시자가 바로 프리드먼이다.
밀튼 프리드먼은 1970년 New York Times Magazine에 6 페이지 분량을 기고하는데 이 글의 이름은 바로 다음과 같다.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유명한 경제학자의 글 치고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6페이지 분량의 글은 NYT에 기고된 이후 지난 반백년의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지배했다. 프리드먼이 기고한 글의 제목에는 그 자체로 시대의 신념과 패러다임이 집약돼 있다. 87년 베른린을 방문해 서독과 동독의 통일을 촉구하며 외쳤던 레이건 대통령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이 벽을 허물어 버립시다” 및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와 같이 시대를 지배했던 만트라에 가깝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변한다. 프리드먼의 글은 50년간 미국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지배해 왔던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ance)라고도 불리는 바람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의 대전환이 깔려 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이윤을 극대화해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몫을 키우는 게 아닌 회사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에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SG 혹은 Stakeholder Capitalism은 사람의 성장 단계에 비유하면 신생아에 가깝지만 그 지배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첫 번째로 어젠다 설정을 담당하는 Financial Times와 같은 언론사가 있다. 두 번째로는 ESG의 요소를 가미한 인덱스를 만들어 내는 MSCI 및 S&P Global과 같은 지수 제공업체들이 있다. 이들은 S&P 500 및 MSCI China와 같은 금융 지수들을 만들어내는데 기존의 보편적인 시장 지수에 ESG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지수를 탄생시켰다. S&P 500 ESG 지수 혹은 MSCI World ESG Leaders 지수가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으로 Blackrock과 Vanguard와 같은 초대형 자산운용사들이 해당 ESG Index를 추종하는 ETF 상품들을 출시해 자본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ESG와 Stakeholder Capitalism의 어젠다 설정에서부터 실제 자본의 흐름까지의 순환은 현재 수준에서도 완성된 상태로 보이며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다만 Stakeholder Capitalism이 Shareholder Capitalism을 제치고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전환의 과정엔 어느 정도의 충동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과거 주주자본주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프리드먼의 생각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본업을 넘어 환경 이슈에도 관여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담론은 이 글이 쓰인 1970년대에도 새로운 화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기업의 역할을 이윤 추구로 너무나 명료하게 정의했다.
주주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영미계가 그들의 선조이자 동시에 신조인 프리드먼을 대체하고 대척점에 있는 ESG를 선봉에 내세우고 있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금융 패권을 주름잡는 영미계 금융 기관들이 총동원된 이상 ESG가 금융 산업의 주류로 등극할 날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프리드먼의 생각을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해상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대사상가였던 케인즈가 말했듯이 세상을 장기적으로 바꾸는 유일한 힘은 바로 사상이다. 사상의 흐름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현시점 다시 한번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인의 생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 Shareholder / Stakeholder Capitalism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궁극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프리드먼은 50년 전 크게 3가지 차원에서 기업이 이윤 외의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고를 했다.
| "(1) 책임감이란 개개인의 인간만이 지닐 수 있다"
우선 조금 관념적인 이야기지만 프리드먼은 "책임감" 이란 마음 가짐을 지닐 수 있는 주체로 오로지 개인을 상정한다.
"The discussions of the “social responsibilities of business” are notable for their analytical looseness and lack of rigor. What does it mean to say that “business” has responsibilities? Only people can have responsibilities. A corporation is an artificial person and in this sense may have artificial responsibilities, but “business” as a whole cannot be said to have responsibilities, even in this vague sense. The first step toward clarity in examining the doctrine of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ask precisely what it implies for whom."
이 문장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담론은 논리적인 엉성함과 빈약함으로 주목할만하다. 우선 “기업이 책임을 지닌다”는 명제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부재하다. 의무와 책임은 오로지 개개인의 인간만이 지닐 수 있다. 인격체가 아닌 법인(Artifical Person) 형태의 기업이 과연 사회적 책임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비즈니스라는 전체적인 시스템은 더더욱 사회적 책임을 지닐 수 없다. 한마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담론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해당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시장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인간 개인만이 느낄 수 있는 책임감을 비인격의 기업 혹은 사회적 시스템으로 넘기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즉 프리드먼에게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논제이며 현실화되어서도 안 되는 현상이다.
| "(2) 기업의 전문성은 이윤을 창출하는 데 있다"
프리드먼이 두 번째로 지적한 점은 바로 경영진의 전문성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족하지 사회적 책임이란 거창한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ON the grounds of consequences, can the corporate executive in fact discharge his alleged “social responsibilities"? On the one hand, suppose he could get away with spending the stockholders’ or customers’ or employes’ money. How is he to know how to spend it? He is told that he must contribute to fighting inflation. How is he to know what action of his will contribute to that end? He is presumably an expert in running his company—in producing a product or selling it or financing it. But nothing about his selection makes him an expert on inflation. Will his holding down the price of his product reduce inflationary pressure? Or, by leaving more spending power in the hands of his customers, simply divert it elsewhere? Or, by forcing him to produce less because of the lower price, will it simply contribute to shortages? Even if he could answer these questions, how much cost is he justified in imposing on his stockholders, customers and employes for this social purpose? What is his appropriate share and what is the appropriate share of others?"
이 문장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경영진은 명확한 근거 없이 제기하는 “사회적 책임”을 적합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경영진이 주주나 고객 또는 피고용인의 돈을 지출하지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럼에도 이슈는 산적하다. 우선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가령 인플레이션 상승을 억제하는 사회적 가치를 달성해야 한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액션 플랜을 경영진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는 종사하는 산업의 최고 전문가일 수 있다. 제품을 만들고 팔며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자본을 조달하는 일의 대가일 것이다. 하지만 주주들이 그를 경영진으로 선출한 과정은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지식과는 전무하다. 한 분야의 대가는 때때로 다른 분야에서의 문외한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물가 상승을 막는 데 보탬이 될까?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얼마만큼의 비용을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 주주와 고객 그리고 피고용인들에게 청구해야 하는가?
사회적 책임을 수행 한자는 어젠다는 듣기에는 단순하나 실행하기엔 난해하다.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의 부재뿐만 아니라 얼마만큼의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영역에서 제대로 된 전문성을 보유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다. 기업 운영의 대가라 할지라도 조금만 자기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될 경우 문외한에 가까운 상태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전문 분야는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할 경우 이는 기업 본인과 사회 모두에게 선한 의도와는 달리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 "(3) 선행의 비용을 누구에게 청구할 것인가"
프리드먼이 마지막으로 지적한 점이 걸작인데 이는 바로 "누구의 돈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냐의 이슈"다.
"What does it mean to say that the corporate executive has a “social responsibility” in his capacity as businessman? If this statement is not pure rhetoric, it must mean that he is to act in some way that is not in the interest of his employers. For example, that he is to refrain from increasing the price of the product in order to contribute to the social objective of preventing inflation, even though a price increase would be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rporation. Or that he is to make expenditures on reducing pollution beyond the amount that is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rporation or that is required by law in order to contribute to the social objective of improving the en vironment. Or that, at the expense of corporate profits, he is to hire “hard core” unemployed instead of better qualified available workmen to contribute to the social objective of reducing poverty.
In each of these cases, the corporate executive would be spending someone else's money for a general social interest. Insofar as his actions in accord with his “social responsibility” reduce returns to stock holders, he is spending their money. Insofar as his actions raise the price to customers, he is spending the customers’ money. Insofar as his actions lower the wages of some employes, he is spending their money."
이 문장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의 경영진이 사업가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해당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면 이는 피고용인으로서 고용주가의 이해관계를 따르지 않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그는 인플레이션 상승을 막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사 가격 인상이 회사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더라도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환경을 개선하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법이 규정하는 테두리와 회사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수준으로 생산 공정의 단가를 증가시킬 수 있다. 심지어 경영진은 빈부 격차 해소에 일조하고자 가장 능력이 있는 지원자가 아닌 단순히 빈곤 수준을 기준으로 일자리를 채용할 수 있다.
이러한 케이스들이 시사하는 바는 경영진들이 그들 개개인의 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돈(예를 들어 고용주와 주주들의 몫)을 사용해 특정 사회적 가치에 봉사하고 있음이다. 경영진의 사회적 책임이 주주의 몫을 감소시킨 다는 것은 주주들의 돈을 일방적으로 소비함을 뜻한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경영진의 열정이 제품의 가격을 인상시킨다면 이는 소비자들의 부를 빼앗는 행위다. 그의 행동으로 피고용 된 근로자들의 임금이 감소한다면 이는 근로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행동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회적 책임을 행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업은 기업 본인의 돈으로 이를 충당하는가? 아니면 어딘가에서 돈을 끌어와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가?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좋은 의도로 수행하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론의 현실적인 빈약함을 건드린다. 즉 의도가 좋다 한들 실행 과정이 적합하지 않다면 사회의 특정 누군가는 좋은 의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선행은 결국 본인(여기서 이 본인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애매하다)의 돈으로 해야지 남의 동의 없이 남의 돈으로 할 경우 결코 선행이 아니란 점을 프리드먼은 지적한다.
밀튼 프리드먼의 철학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싶으면 실제 글의 일독을 권한다.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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