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짓고 세우는 제주 건축의 미학, 건축기행
제주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가 지어 올린 공간은 제주에서 만나는 또 다른 예술이다.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만나며 색다른 제주여행을 떠나보자. |
자연이 바라는 건축을 짓는다 본태박물관 / 지니어스로사이 / 글라스하우스
ANDO TADAO 안도 다다오
기계과 고등학교 졸업,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 외국에 나갈 수 있다기에 선택한 프로 권투 선수. 건축을 따로 교육 받은 적도 없고, 떠돌이 여행자로 몸소 건축을 만나면서 하나하나 배워간다. 여느 건축가와는 확연히 다른 안도 다다오의 이색적인 이력은 오히려 ‘안도식’이라고 불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콘크리트 건축을 만들어 낸다. 서양의 콘크리트 건축은 더 크게, 더 높이 자신의 위엄을 떨치는데 급급하다. 거기에 안도 다다오는 자연과 두루 어울리는 동양의 미학을 더하기로 한다.
1. 박물관 앞마당에 펼쳐진 연못에 제주의 하늘이 담겨 있다. 최근 공사로 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더한다. 2. 직사각형의 노출콘크리트 건물은 단순하기 그지없어 오히려 제주의 자연과 더욱 잘 어울린다. 3. 안도 다다오의 명상의 방으로 향하는 좁은 길 사이에 한줄기 빛이 와르르 쏟아진다. |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본태박물관
사계 바다와 산방산이 훤히 내다보이는 제주 중산간 상천리에 자리한 본태박물관 역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프랑스어(bonte)로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한자어(本態)로는 ‘본래의 형태’를 의미하는 본태박물관은 인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색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설립자 이행자 씨가 지난 40년 동안 수집한 전통 수공예품과 현대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전통미과 현대미의 교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미로처럼 깊고 좁은 통로를 따라 한국의 전통적인 담벼락으로 이어진다. 가느다란 냇물과 작은 다리로 계속되는 길은 물과 빛, 그리고 자연이 천천히 채워져있다. 제1전시실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한 획으로 이어진 듯 한 내향적인 공간 안에서 다채로운 소반과 목가구, 보자기들과 화려한 전통 자수공예와 목공예품을 만날 수 있어 전통의 멋과 향기가 전해진다.
이층 높이의 깊은 처마 아래로 웅장한 홀이 먼저 마주하는 곳은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제2전시실이다. 살바도르 달리, 페르낭 레제, 이브 클라인, 백남준 등 현대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나며, 유리창을 통하는 빛을 통해 외부 공간을 소통하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가장 깊숙한 곳에는 안도 다다오의 명상의 방이 있다. 두 칸 남짓한 사랑채 안으로 한국 모시 조각보를 형상화한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고요하고 아늑한 빛이 스며든다.
은은한 호수가 햇빛으로 반짝이는 산책길은 가는 길마다 로트르 클라인-모콰이의 ‘Gitane’, 자우메 플렌사의 ‘Children’s Soul’ 등 거장들의 작품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연출한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안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본연의 아름다움, 본태박물관으로 문화여행산책을 떠나보자.
4. 전통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의 담벼락은 한국 전통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5. 제1전시관에는 우리의 본래 모습, 그러니까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용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
- 주 소 :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록남로 762번길 69
- 전화 : 064)792 – 8108
- 관람시간 : 오전 10시~ 오후 6시 (연중무휴)
빛과 물, 바람과 풀, 하늘로 연결된 명상공간 지니어스로사이 / 글라스하우스
정동향으로 손을 쫙 벌리고 있는 기하학적 형태의 글라스 하우스는 태양의 정기와 바다 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위풍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
지니어스로사이의 가장 큰 매력은 사각 프레임으로 비춰지는 성산일출봉의 풍경이 보는 각도에 따라 색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
글라스 하우스에서는 성산 일출봉이 떠 있는 동쪽 바다의 풍광을 바라보며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다. |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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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또 다른 작품은 성산일출봉을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섭지코지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다.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는 빛과 물, 바람과 풀, 하늘이 연결되어 있는 신비로운 명상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이 외관에서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먼저 만나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니 완전히 다른 별천지 세상이다. 너른 마당에는 삼다 정원이 먼저 반기고 있다. 척박한 제주의 땅, 현무암들이 무더기로 펼쳐져 있는 돌의 정원을 지나, 여인을 상징하는 붉은 꽃(송엽국)이 피어있는 여인의 정원은 제주의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사각 구조의 담을 내고 사람 키 높이의 억새풀들이 자리한다. 그 안을 지나면 쏴~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제주의 바람을 맛볼 수 있다. 지니어스로사이로 가는 길에는 양쪽 비스듬한 사선의 벽면으로 물이 흘러내린다. 얕지만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내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깊고 좁은 길을 따라 명상의 공간으로 향한다. 문경원 작가의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세 공간을 접하게 된다. 나무의 성장을 담은 ’다이어리(Diary)’는 생명의 순환을 가만히 바라 보게 한다. 바닥에 놓인 ‘어제의 하늘’을 걸으며 잠시나마 이 순간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성산 일출봉의 하루를 온전히 담은 ‘오늘의 풍경’을 바라보며 있으면 신비로운 공간 속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니어스로사이를 나와서 좀 더 올라가면 정동향을 향해 손을 쫙 벌리고 서 있는 듯 한 글라스하우스가 있다.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곳 또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1. 가로로 열린 건축공간인 지니어스로사이의 뷰파인더 사이로 성산일출봉이 내다보인다. 2. 지붕이 열린 현무암 복도는 하늘을 쳐다보며 걸어보자. 높고 긴 길목을 따라 명상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다. 3. 명상의 공간 안에는 김남숙 작가의 몽글몽글 꿈꾸는 제주먹돌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
- 주 소 :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27-2번지
- 전화 : 064)731-7000
- 지니어스로사이 관람시간 : 09:00 ~ 18:00 (매주 토요일, 일요일 및 공휴일 관람 가능)
- 민트레스토랑 영업시간 : 11:00 ~ 22:00
ITAMI JUN 이타미 준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타미 준은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늘 경계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건축 또한 자연과 건축과의 경계에 놓여있다. 대학 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간 한국에서 민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한국의 자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놔두고, 일부러 잔디를 깎거나 심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마당으로 삼는 한국의 정원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흙, 돌, 나무 등의 재료를 통해 최소한의 가공으로 자연 본연 모습을 존중하며 자연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의 자연주의 철학은 포도호텔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제주 오름이 망울망울 맺힌 한 송이, 포도호텔
제주 중산간 자락 봉긋 솟아있는 오름을 닮은 지붕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단층 건물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송이 포도와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포도호텔.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제주 자연 속에 스며들어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세속의 어지러움과 번잡함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이상적인 공간이다.
1. 객실의 테라스는 굳이 정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2. 포도호텔의 복도 정중앙에는 캐스케이드와 창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어 내부 공간에서도 제주의 자연이 그대로 스며들어 온 것 같다. 3. 격자무늬 창 너머로 제주 중산간 생태습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정원이 슬쩍슬쩍 비쳐진다. 4. 높은 천장으로 비치는 빛 조차도 건축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 |
제주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들다
호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과 그 안에 자라는 유채와 보리가 자라나는 모습은 제주의 시골집에 온 듯 정겹다. 객실에서는 정문을 통하지 않아도 테라스로 나오면 바로 자작나무 숲을 산책할 수 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 된 듯 하지만 밖으로 자연스럽게 열려있는 공간을 통해, 경계와 공존, 숨김과 자유로움, 닫힘과 열림을 이미지화했다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중앙에서 캐스케이드(CASECADE)를 마주하게 된다. 하늘을 향해 그대로 뚫려 있는 커다란 유리관 안에는 제주도의 풍경을 툭 갖다 두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온전한 자연을 받아들이며 하늘과 밖을 바라 볼 수 있어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창을 따라서는 물이 흐르고 있어 마치 돌로 된 바닥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이 나온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격자무늬 창은 ‘저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라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높이만큼 덮여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제주 한라산의 생태 습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풀들과 돌, 나무들이 슬쩍 슬쩍 비춰 운치를 더한다.
건축 그 자체가 예술이자 작품
포도호텔에서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 하나도, 나무의자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조명이나 작은 소품까지 작가가 직접 고르고 배치한 손길과 배려가 묻어있고, 베르나르 뷔페와 이왈종 화백의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마치 호텔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제2회 아시아 주거문화 및 주거경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한 이타미 준의 국립기메동양미술관에서 열린 ‘전통과 현대 전’에서 메인 작품으로 전시되기도 할 만큼, 포도호텔의 예술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무조건 건물은 위로, 크게 쌓아올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어 자연과 하나가 된 공간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에게 더없이 이상적인 안식처이다.
- 주 소 :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 62-3
- 전화 : 064)793-7000
- 포도호텔 레스토랑의 왕새우튀김우동은 담백한 국물과 탱탱한 면발로유명하다.
- 포도호텔 인근 방주교회와 비오토피아 역시 이타미 준의 작품이다. 비오토피아는 본래 입주자 외에는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클럽하우스 내 레스토랑을 예약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섭지코지의 보석, 아고라
MARIO BOTTA 마리오 보타
스위스 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는 강력한 기하학 형태, 홈이 파인 띠로 구성되는 피사드, 그리고 철저한 디테일의 3대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밖에서 보면 조각을 한 듯 단순하지만 섬세한 디테일이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고, 내부 공간은 천장에서 내려온 빛이 구석구석을 비추어 환상적이다.
우두커니 솟아있는 아고라는 밤이 되면 홀로 등대처럼 반짝이는 섭지코지의 보석이다. |
아고라 광장 중앙에 걸려있는 스테인리스 구가 내부로 빛을 다시 한번 비추어 더욱 찬란한 빛을 만들어낸다. |
기하학적이면서 극적으로 간결하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마리오 보타의 건축은 우리나라에도 꽤 있다. 서울의 교보 빌딩과 리움 미술관이 그것이고, 제주도에서는 고급 별장인 힐리우스와 아고라가 존재한다. 아고라는 고급별장 회원들에게만 공개하는 비밀스럽고 사적인 공간이다. 마리오 보타는 적색 벽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아고라는 제주의 자연과 어울릴 수 있도록 콘크리트, 유리와 스틸, 그리고 현무암만으로 만들어졌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광장을 두고, 천장에 매달린 안종연 작가의 작품인 7미터 지름의 스테인리스 구(球)가 유리를 통해 들어온 빛을 다시 한 번 굴절시켜 깜깜한 밤중에도 등대처럼 반짝인다. 광장 중앙에 서면, 이집트 파라오의 미이라가 수천 년 동안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피라미드의 신비한 공간 에너지를 가득 받는 느낌이다. 바닥은 아고라를 똑바로 위에서 바라본 모습을 패턴으로 만들어, 치밀하게 계산된 듯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아고라의 뷰포인트는 역시 앞에 놓인 야외 수영장이다. 수면이 수평선과 맞닿아 있어 마치 바다에서 수영하는 듯한 황홀감을 안겨준다.
- 주 소 :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27-2번지
- 전화 : 064)731-7000
세한도의 집 한 채, 제주 추사관
HYO SANG SEUNG 승효상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의 근본을 잊지 않고, 길과 땅을 나누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건축을 통해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은 비움으로 집을 가득 채운다.
마을사람들은 추사관을 처음 보고는 꼭 감자창고와 같다고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건축가 승효상은 유배를 떠난 추사 선생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기에 겸손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
아무런 꾸밈없이 높은 천장과 노출 콘크리트 벽체로 이루어진 추모공간은 고요한 빛만이 조용히 내부를 비춘다. |
동그란 창이 나 있는 소박한 서재와 노송 한그루, 곰솔 세 그루가 그려진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명작으로 꼽는 문인화이다. 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대정읍에 위치한 제주 추사관이다. 처음 추사관이 세워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꼭 감자창고와 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기념관에 비하면 4백 평이라는 작은 규모에 지하로 이어지는 건물은 수수하기 그지 없다. 화려하지 않고 소탈하면서 열린 공간을 짓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은 추사 선생이 9년간 유배 살던 대정읍성의 풍경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추사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이기에 그가 그린 세한도처럼 겸손하게 지었다고 말한다. 지하로 통하는 비스듬히 합판을 깔아놓은 듯 한 계단은 추사 선생의 고단했던 유배길을 의미한다. 추사체를 완성하기도 한 이 곳에는 추사의 귀한 글씨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두 개 층으로 열려있는 추사홀에는 아무런 치장이 없는 노출콘크리트의 벽체와 높은 천정이 경건함을 들게 하는 추모공간이다. 전시관을 나오면 추사가 머물된 당시 모습대로 초가집 세 채가 덩그마니 놓여져 있다. 제주추사관은 추사 선생이 지냈던 유배길을 따라 걷는 유배문화여행이다.
- 주 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
- 전화 : 064)794-3089
- 관람시간 : 09:00 ~ 18:00 (17:30분까지 입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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