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맨얼굴
콜라주 시드니
“나는 공동묘지를 지나 집으로 간다.”
얼마나 오랫동안 입에 담지 않았는지, 어째 현실감이 떨어지는 ‘공동묘지’를 매일같이 지나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작년 이맘때쯤. 전철 몇 번째 칸의 어느 쪽 출입문이 내리는 역의 플랫폼 출구와 가까운지를 몸이 기억할 만큼 시드니 생활에 익숙해진 무렵이었다.
전철이 역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까만 철제 울타리 너머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엉성한 횡대를 이루며 비뚜름하게 선 일군의 묘비들이 문득 시야에 잡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오래된 듯한 묘비들 뒤로 비슷한 몰골의 수많은 묘비가 널따란 잔디밭 여기저기에 종종 퍼져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해 더 충격적이었던 동네 한복판의 공동묘지도 매일 보니 무뎌졌다. 이제는 집에 다 왔음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에 불과할 뿐, 여느 차창 밖 풍경과 다름없다.
그러던 어느 날, 비는 오고 할 일은 없어 방 안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나는 문득 공동묘지에 가고 싶어졌다. 며칠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다른 동네에서 또 다른 묘지를 봤던 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마침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자 그쳤다. 15분쯤 걷자 공동묘지가 보였다. 울타리를 따라 얼마간 걷다 보니 보행자용 샛문이 나타났다. 양 끝에 말뚝을 달아 박은 기다란 나무 팻말에는 “ROOKWOOD”라고 쓰여 있었다. 묘지 이름인가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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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넘도록 몰랐던 공동묘지의 이름은 룩우드 네크로폴리스(Rookwood Necropolis). 놀랍게도 이곳은 남반구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다. 1868년에 설립된 이곳은 100만 구의 시체가 묻혀있고, 286헥타르의 넓은 부지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샛문을 통해 내가 들어간 구역에는 성직자들의 무덤과 생전 신자였을 이들의 무덤이 많았다. 묘비에 적힌 몰년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인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엉성한 횡대로 모여 비뚜름히 선 모양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울타리 바깥에서 전철을 타고 지나갈 때 보았던 묘비들이다. 가까이서 보니 더 낡은 모습이었다. 무덤가 어귀에는 교회가 있지만, 출입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발목까지 자란 잔디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금고 있던 물기를 흩뿌려 내 신발과 바지 아랫단을 적셨다.
완벽한 타인들의 죽음 속을 목적 없이 거닐며, 이름이 적혔으나 나에겐 익명이나 다름없는 묘비의 물성을 관찰하는 것은 썩 새롭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갑자기 비가 다시 내리는 바람에 금방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게 아쉬워 주말에 한 번 더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엔 다른 동네에 있는 공동묘지로.
본다이 비치에서 쿠지 비치까지를 잇는 두 시간여의 산책로는 시드니를 대표하는 관광 코스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그 산책로의 3분의 2지점에 웨이벌리 공동묘지(Waverley Cemetery)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묘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체스 말처럼 보이는 하얀 묘비들이 깎아내린 해안 절벽 위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서서 바다를 마주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묘지의 나머지 세 면은 사람이 사는 집과 동네가 감싸고 있다.
웨이벌리 묘지를 찾은 날 역시 비가 오락가락했던 터라, 관광객보다는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구름 사이로 햇빛이 고개를 들이민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온 이들은 그 절경을 배경 삼아 달렸다. 더 오랜 인생, 더 건강한 내일을 위해 생을 마감한 이들이 누워 있는 묘지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우리 할머니가 보신다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한국의 공동묘지에서 조깅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생각해본다. 왠지 께름칙하거나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여기는 것도 있겠지만, 애초에 공동묘지는 일상적으로 뛰는 조깅 코스에 포함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는 공간과 죽음이 처리되는 공간은 서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채 따로 존재한다.
십여 년간 한국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은 ‘웰빙’에서 ‘힐링’을 거쳐, 이제는 ‘웰다잉’이 일상의 흐름으로 대두되는 듯하다. 웰빙이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명제에 관한 것이라면 웰다잉은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명제를 다룬다. 근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삶으로부터 유리된 ‘죽음’이 웰다잉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등장했지만, 실은 말뿐이다. 웰빙과 힐링과 웰다잉은 모두 같은 본질로 꿰어진 이음동의어다. 셋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잘 살고 싶은 당신’, ‘상처 입은 당신’, ‘언젠가 죽을 당신’.
“소비하라.”
‘카르페디엠’이란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웰빙은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이상으로 하는 종교와도 같다. 과도기격이었던 힐링도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여 행복하게 살자’라는 논지를 띠며 웰빙의 이념에 보다 가까웠다. 웰빙과 힐링의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에 기반을 둔 즉흥적인 소비문화를 불러일으켰다. 소모적이었고, 무책임했으며 무엇보다 지속 가능하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웰다잉은 이에 대한 대안이다. 웰다잉은 장례, 노후대비와 같은 개인의 책무를 내팽개치지 않도록 하면서, 계획적이고 점잖으며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유도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웰다잉에서조차 죽음은 여전히 막연한 두려움으로서 기능한다.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신성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일상 속에서 죽음의 맨얼굴을 접하고 생각할 기회가 여전히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두 번의 공동묘지 방문으로 내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고도 탁월한 통찰을 얻었을 리는 만무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간다 한들 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느낀 것이라곤, 멋진 풍경과 개성 있게 조각된 묘비에 대한 감탄과 한편으로 내발 아래에 수십만의 백골이 묻혀 있다는 스산함, 그리고 둘이 함께 조성하는 위화감이다. 대단한 통찰력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종류의 자극이었다.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삶의 모양과 느낌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 좋았다.
정작 매일같이 묘지를 누비며 달리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내게 동네 속의 묘지는 양각된 것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이 평평해지기 전까지는 종종 묘지 산책을 하게 될 것 같다.
에디터 류새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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