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의 아내로 살고팠던 빅토리아 여왕, 그녀를 토닥인 알버타 부부와 로키
캐나다 알버타,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과 역사가 깃든 로키산맥의 심장. 레이크 루이스부터 선주민의 유산까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알버타의 특별한 여행.
진짜 로키, 캐나다 알버타주의 감동
알버타 로키, 모레인 호수 [함영훈 기자] |
캐나다 알버타(Alberta) 주의 명칭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넷째 딸, 루이스 캐롤라인 알버타(Louise Caroline Alberta:1848-1939))의 이름에서 따왔다.
알버타는 9남매 중 유일하게, 아버지이자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1819~1861)를 자기 이름 속에 품었다. 엄마인 여왕이 지어준 이름이다.
순정만화 같은 빅토리아의 사랑
빅토리아는 16세때, 미남,훈남이며 선비기질에 바람기 전혀 없는 알버트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일주일을 함께 보내지만 지엄한 왕실의 법도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이별후 소녀는 식음을 전폐한다.
2년 뒤 18살에 여왕이 되어서는, 짐짓 안보고싶은 척했지만, 결국 참지못하고 3년 뒤 자신이 먼저 알버트에게 청혼하고 만다.
빅토리아를 너무 사랑했지만 지엄했던 여왕인지라 낮에는 애정 표현을 꾹 참고, 국정 조언만 했던 알버트는 밤에 여왕이 자기 방을 노크했을 때 “퀸(Queen)”이라 그러면 열어주지 않았고 “와이프(Wife)”라고 말하면 열어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버킹검궁 정문 [함영훈 기자] |
멀대 같이 크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알버트가 42세에 죽자 여왕은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녀는 미망인 여왕 40년간 ‘해지지 않는 영국’를 건설하는 동안, 매일 남편을 위한 추모공간에 정한수를 갈아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캐나다 로키의 동쪽 아름다운 곳을 ‘알버타’로 부르자고 제안한 것은 알버타의 남편 론(Lorne) 후작(1845~1914)이었다. 장인 알버트가 사망한지 10년이 지났어도 장모인 여왕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자, 당시 이곳을 부인 알버타와 여행했던 론 후작이 이같은 지명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넷째딸 알버타의 남편, 애교많은 총독 사위
남편 이름을 품은 넷째 딸을 보면 늘 남편이 떠올랐을 여왕은 이를 허락한다. 그리고 론 후작은 나중에 여왕으로부터 영국령 캐나다의 4대 총독으로 임명된다. 공주와의 결혼, 알버타 총독, 캐나다 총독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의 이름은 ‘아가일 공작 존 조지 에드워드 헨리 더글라스 서덜랜드 캠벨’로 길어졌다.
그리고 이 애교 많은 총독 사위는 알버타와 로키산맥 곳곳에 빅토리아 여왕이 사랑했던 사람, 챙겼던 부하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로키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인 ‘루이스’는 여왕의 첫째딸(Victoria Adelaide Mary Louise)과 넷째딸 알버타(Louise Caroline Alberta)이름에 모두 들어가 있는데, 정황상 알버타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 보다는 딸, 특히 첫째 딸을 사랑했고, 애교 많은 사위 론-알버타 부부도 많이 아낀 것으로 알려진다. 알버타와 론 부부 사이엔 자식이 없어 더욱 마음이 갔을 것이다.
얼어붙은 루이스호수의 경우 얼음예술과 스케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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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타주 헤리티지 파크 스태프들은 빅토리아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7세왕 시절 의상으로 코스프레한다. 빅토리아의 꾸중을 자주 듣던 바람둥이 왕이라 몇몇 스태프들은 의상을 바꾸자고 했지만, 여왕-남왕의 시대가 거기서 거기라 유지하기로 했다. 이처럼 캐나다 알버타 주는 빅토리아 여제 왕실이 너무도 아끼던 곳이었다.
소득 20% 높고, 많은 것을 가진 알버타
“알버타는 광활한 풍경과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입니다. 서쪽으로는 로키, 동쪽으로는 대초원과 접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야생동물을 보호구역등 다양한 공원과 야생지가 있습니다. 예술, 문화, 쇼핑, 고급 레스토랑, 다양한 숙박시설로 붐비는 타운 등 모든 취향을 만족시킵니다.”
캐나다 알버타주 관광국이 한국 등 세계의 여행자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캘거리, 에드먼튼, ‘로키의 꽃’ 밴프 등을 품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주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동과 서로 로키산맥을 나눈다.
알버타 주에 대해 여행 마니아들은 로키의 밴프와 자스퍼를 잇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캔모어 세자매봉, 캘거리 카우보이문화, 서부활극 헤리티지파크, 레이크루이스-모레인호수 등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룬 여행지로 기억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농업-광업 자원도 풍부해 캐나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70%를 공급하고, 7대 건강식재료(감자, 소고기, 카놀라유, 꿀, 밀, 블루베리, 들소 바이슨)를 산출하는 부국의 기반, 푸드웰니스의 중심이기도 하다. 알버타주 가구 소득은 캐나다 평균 보다 20% 이상 높다.
알버타주 캘거리 근교, 자연속에 숨은 석유화학공장 |
선주민과 이주민 모피거래
수만년전부터 동북아시아 출신 퍼스트 캐내디언 선주민이 살던 구대륙에, 300년전쯤 유럽발 이민자들이 “신대륙” 이라고 거짓말을 운운하며 상륙한 북미지역 중, 선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비교적 적었던 지역의 특징은 모피 거래가 성했던 곳이다.
알버타 주 역시 선주민의 모피를 사들여 유럽에 팔던 모피무역의 거점이었다. 상거래 관계이다 보니, 선주민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이주민들의 야만적 행태가 적었다고 한다. 알버타 주에는 도시와 마을, 산 이름 중 상당 부분이 선주민 언어이다.
알버타주 문화해설사들은 기골이 장대한 선주민들은 이주민들이 지닌 총,균,쇠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모른 채, 왜소하고 꾀죄죄한 유럽 불청객들을 마을 외곽에서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불쌍하다고 여겨, 뭘 좀 먹이려고, “카나타”라고 했다고 한다. 카나타는 선주민 말로 ‘마을’을 뜻한다. 이 말은 캐나다의 국호가 됐다. 일부 학자들은 한민족 언어 ‘가 나 터’(가자 나의 터전으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북미 지역 여러곳에선 본색을 드러낸 이주민들은 선주민을 무기로 위협해 그들의 것을 빼앗았고, 선주민들은 300~400년 내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듯 살거나 죽어야 했다.
“선주민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날 캐나다는 총리가 직접 나서 눈물을 흘리며 선주민에 대한 수백년 홀대와 야만 행위를 사죄했다.
빅토리아가 사랑했던 첫딸 이름 속 애들레이드, 국정 파트너 멜버른(영국 총리)을 도시 이름으로 채택한 호주도, 뉴질랜드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데 비해, 미국은 과거사 반성에 조금 인색한 편이다. 아마 난 미국이지 영국은 아니다라고 여기는 측면이 강해, 영국이 사죄해야지 왜 우리가 스스로 사죄하냐고 느낄 것이다.
알버타에선 선주민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알버타 주는 문화관광 분야 출간물을 낼 때나 주 차원 또는 중심도시의 중요한 행사를 할 때, 선주민에 대한 감사인사부터 한다. 문구는 다음과 같다.
북미 선주민 출신 알버타 프린세스 |
‘알버타는 원래 선주민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합니다. 원주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돌보고 살아온 역사적, 현대적 땅 안에 우리가 위치해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조약 4, 6, 7, 8, 10의 영토와 블랙풋 연맹, 크리, 덴, 나코타 수, 술토, 스토니 나코다, 쓰우티나, 다코타, 나코타, 라코타 국토를 포함한 그 서명국을 존중합니다.
또한 메티스 부족의 고국, 오타페미시왁 메티스 정부, 역사적인 노스웨스트 내 8개 메티스 정착지도 존중합니다.
우리는 앨버타 주 전역의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원주민을 인정합니다. 현대 국경이 전통적인 토지 사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감사드리며, 역사적으로 이 땅을 여행하고 거주해 온 앨버타 외곽의 이웃 원주민 커뮤니티를 존중합니다.’
인천발 웨스트젯 직항으로 알버타를 잇는 곳, 캘거리 국제공항은 다양한 레스토랑, 실내 파티오, 테이크아웃 옵션, 활기찬 매장 선택권 등 예상치 못한 편의를 많이 제공한다. 인구 170만 도시의 공항 치고는 크고 잘 해놨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인 YYC Express를 구축했고,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순수하며, 편견 없이 잘 응대해준다.
[헤럴드경제(캐나다 알버타주 캘거리)=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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