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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역사를 색으로 깨웠다

한국일보

‘대일 전승기념일’(V-J Day)인 1945년 8월14일 일본의 항복 소식에 기뻐하며 뉴욕 타임스퀘어에 몰려나온 수많은 인파 속 수병이 간호사에 기습 키스하는 장면을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가 촬영한 사진. ‘더 키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진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됐다. 윌북 제공

색은 진실이다. 세상은 생생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하다. 색깔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낯설다. 흑백은 그런 점에서 위조다. 그러나 사진만큼은 흑백이 용서가 됐다. 1839년 사진 기술이 상용화된 이후 한 세기 동안 사진은 흑백의 매체였다. 흑백 사진은 희미해진 과거를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역사의 색 : 이토록 컬러풀 한 세계사’는 빛 바랜 흑백 사진에 다채로운 색을 입혀 역사를 되살렸다. 색을 덧칠했을 뿐인데, 흑백의 과거는 생동감 넘치는 현재로 눈 앞에서 꿈틀거린다.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다. 선명한 사진을 중심으로 기억한 역사책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였던 1850년부터 1960년까지 촬영된 1만장의 사진 중 여러 대륙과 문화를 고루 포함한 200장을 엄선해 10년 단위로 분류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사건과 인물들이 무심코 등장한다. 폭군과 혁명가, 여왕과 황후, 술탄과 차르, 정치가, 천재 과학자와 대문호, 억압받는 노동자와 흑인 노예, 마지막 인디언 추장은 요동치던 역사의 증인들이다.


색을 더하자 이들은 살아났다. 아돌프 히틀러의 탁한 회색 눈동자, 철의 여제 서태후의 위엄 있는 표정, 체게바라의 구릿빛 피부, 아이슈타인과 마르크스의 희뿌연 머리칼, 비장미 넘치는 명성황후의 검붉은 복식까지. 색을 입히지 않았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역사의 소중한 색깔이다.


색을 복원하는 과정은 역사와 예술이 혼합된 융합 프로젝트였다. 철저한 고증 작업이 필요했다. 한 명의 병사 사진에도 그 시대 등장하는 군복, 메달, 리본, 계급장, 군장 등의 시각 자료와 문서를 전부 검증해야 했다. 그 시대의 분위기와 빛을 고려해 수백 개의 색을 칠하고 또 칠했다. 역사 사진 채색 전문가인 브라질의 미술가 마리나 아마랄이 2년 간 컴퓨터그래픽 작업으로 완성했다. 영국의 유명 역사가인 댄 존스의 핵심을 관통하는 간결한 설명은 다채로운 색감만큼이나 역사를 살아 숨쉬게 한다.

한국일보

역사의 색

댄 존스, 마리나 아마랄 지음ㆍ김지혜 옮김

윌북 발행ㆍ456쪽ㆍ1만9,8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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