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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고... 불타오르고… 축제는 못 해도 꽃은 피었다

평창 이효석마을과 백일홍 축제장

한국일보

강원 평창 봉평면 '이효석 문학의 숲' 가는 길 산자락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었다.

강원 평창 봉평은 국내 메밀꽃 축제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맘때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의 고향인 봉평면 일대는 ‘산허리에 온통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변신한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1930년대 봉평과 인근 대화장을 오가는 장돌뱅이 허 생원이 걸었던 풍경 그대로다.


코로나19로 축제는 열지 못하지만 메밀꽃은 올해도 시절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가는 길목의 비탈밭이 가장 소설과 가깝다. 녹색이 짙어 어둑한 숲과 새하얀 메밀꽃이 눈이 부실 정도로 대조를 이룬다. 예전에 비해 메밀밭이 줄었다는 점은 아쉽다. 아무래도 메밀보다 돈이 되는 약용작물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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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의 숲 입구에 최근 무장애 탐방로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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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의 숲의 무장애 탐방로. 자작나무 사이를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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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의 숲’은 소설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공간이다. 아담한 계곡 주변 산자락을 따라 충주집과 물레방앗간 등 소설에 등장하는 민가와 주요 장면을 촬영 세트처럼 설치해 놓았다. 입구에는 최근 무장애 산책로를 조성했다. 자작나무 사이로 설치한 덱을 따라가면 문학의 숲으로 이어진다.


문학관 부근 ‘효석달빛언덕’ 역시 최근 개장한 시설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조금은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한 공간이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달빛나귀 전망대’가 가장 눈길을 잡는다. 작은 책방으로 꾸민 내부에서 일대가 두루 조망된다. 산자락으로 발길을 옮기면 이효석이 평양에서 거주했던 ‘푸른집’을 재현해 놓았다. 가족과 함께 지냈던 거실, 집필 활동에 몰두했던 서재 등 작가의 행복했던 시간을 담고 있다. 이름과 달리 붉은 지붕에 벽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곱다. 바로 뒤편 산자락에 커다랗고 새하얀 원형 조형물이 있다. 창밖의 달을 몽환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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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달빛언덕의 나귀 모양 전망대. 내부는 작은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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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달빛언덕에 평양에서 거주했던 '푸른집'과 둥근 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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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소설을 다양한 미디어로 재현한 근대문학체험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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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관 부근의 메밀밭.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라 사진 찍기는 좋지만 산자락 메밀밭에 비해 감성은 다소 떨어진다.

근대문학체험관은 이효석이 활동했던 근대의 시간과 공간을 다양한 매체로 보여준다. ‘메밀꽃 필 무렵’ 외에 ‘개살구’ ‘영서의 기억’ ‘산협’ 등 다른 작품 속 서정적 문장들도 접할 수 있다. 문학관 앞에도 관광객을 위한 메밀밭을 조성해 놓았다. 메밀밭 사이로 여러 갈래의 산책로를 내고 원두막을 세웠다. 사진 찍기는 좋지만, 잘 정비한 공원 같아서 농촌 마을의 사실성과 문학적 감성은 다소 떨어진다.


매년 추석에 맞춰 열리던 평창의 또 다른 가을꽃 축제도 코로나에 막혔다. 평창 읍내를 통과하는 평창강 둔치는 이맘때면 일천만 송이의 백일홍으로 뒤덮인다. 연분홍에서 진한 홍색까지, 꽃잎이 빈약한 것부터 속이 꽉 찬 탐스러운 꽃송이까지 각양각색의 백일홍이 일대를 화사하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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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결로 뒤덮인 평창강 둔치의 백일홍 축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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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없는 평창백일홍 축제장.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예년 같으면 대형 꽃 장식과 꽃 터널이 등장하고 먹거리 장터도 흥겨웠겠지만, 올해 축제장엔 붉은 백일홍만 불타오른다. 그래도 이래저래 알고 찾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원두막에서 풍차 전망대까지 붉게 장신된 꽃밭을 여유롭게 걷거나 사진을 찍으며 가을 정취에 빠져든다. 나만의 거리두기 여행에 딱 알맞은 곳이다.


평창=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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