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CEO “탄산음료기업에서 탈피하자”
글로벌 Biz리더
미 애틀랜타의 코카콜라 본사 코카콜라 로고 앞에 선 제임스 퀸시 CEO. |
“탄산음료에만 머물지 말고 종합적인 음료 기업이 돼야 한다.”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5월 취임하며 ‘뉴 코크(Coke) 신드롬’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코카콜라는 창립 132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소비자들의 식습관 변화와 탄산음료가 비만과 당뇨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여러 국가에서 설탕 규제에 나서면서 최근 4년 연속 매출이 급감했다. 퀸시가 CEO로 취임하기 직전인 지난해 4월엔 미국 애틀랜타 본사 직원의 20%(1,200명)에 대한 감원 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퀸시는 코카콜라의 위기를 돌파하는 방안으로 탄산음료 대신 생수와 차 등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퀸시가 내세운 ‘뉴 코크 신드롬’도 기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탄산음료에 매달리기보단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영역에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카콜라는 지난해 한 해 동안 500가지 이상의 신제품과 변형 제품을 선보였다. 한 달 평균 40가지 넘는 신제품을 전 세계 시장에 출시한 것이다. 퀸시는 “우리가 실수하지 않는다는 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통해 시장에서 혁신을 이루고, 효과가 없는 것은 빠르게 걸러내는 방식으로 코카콜라의 성장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코카콜라 로고. |
코카콜라 위기와 퀸시
코카콜라가 위기는 경영진의 안이한 판단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소비자들 사이에 ‘웰빙’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변화를 읽지 못했다. 미디어는 0.5ℓ짜리 탄산음료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성인의 하루 당류 섭취량(50g)보다 많은 54g이 함유돼있다고 고발했고, 학교에선 비만과 당뇨의 주원인인 탄산음료 퇴출 바람이 불었다. 2011년부턴 핀란드에서 시작된 당 성분 제품에 과세하는 ‘설탕세’가 유럽에 이어 미국 남미 등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2016년 기준 코카콜라의 매출은 418억6,300만달러를 기록, 2012년 대비 13% 급감했다.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북미 지역 매출은 같은 기간 반 토막 났고, 신흥 시장으로 코카콜라가 대대적으로 투자했던 남미 시장도 10억 달러 줄었다. 웰빙 바람이 유독 강한 유럽 시장에선 매출 하락 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2016년부턴 아예 중동ㆍ아프리카와 매출을 묶어서 발표하고 있다. 퀸시는 “130여년 역사를 가진 코카콜라가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데에만 집착하고, 경영진들이 변화에 지나치게 신중했다”며 “사내에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비판했다.
퀸시는 1996년 코카콜라에 입사한 후 해외 사업부를 두루 경험하며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비(非) 탄산음료 브랜드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주도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탄산음료 위주의 비즈니스에서 탈피해야 했던 코카콜라로선 최적의 CEO였던 셈이다. 전임 CEO였던 무타르 켄트는 “퀸시는 방대한 업계 지식, 코카콜라 브랜드와 가치,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퀸트는 코카콜라에 입사하기 직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매켄지에서 전략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1996년 코카콜라에 남미그룹 전략 이사로 합류, 2003년 남미사업부 사장에 임명됐고, 2005~2008년엔 멕시코사업부 부장으로 임명돼 연간 수익 10억 달러 이상인 현지 음료기업 ‘후고 데바예’를 인수, 기업의 외연을 확대했다. 2008~2012년 북유럽사업부 사장을, 2015년엔 코카콜라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퀸시는 중국 곡물 음료 회사를 인수하고, 유니레버 대두 음료 브랜드를 확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전 세계 소비자가 움직인다면 코카콜라도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며 “소비자 입맛과 취향에 맞춰 설탕 사용을 줄인 음료를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카콜라가 최근 인수한 글로벌 커피 전문점인 코스타. |
코카콜라 금기 깨는 퀸시
코카콜라가 일본에 출신한 주류 제품 '레몬도' |
퀸시는 코카콜라가 그간 금기시하던 사업영역에까지 진출하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올해 중순 일본에 주류 제품을 출시한 일이다. 코카콜라는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와인 공장을 보유해 한때 알코올음료 출시 가능성이 제기된 적이 있을 뿐 회사 역사상 단 한 번도 주류를 출시해본 적이 없다. 이와 관련 퀸시는 지난 4월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실험을 시작했다”며 주류 출시가 탄산음료 위주의 비즈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큰 도전임을 밝혔다.
코카콜라가 일본에 내놓은 첫 주류 제품은 저(低) 알코올 칵테일인 ‘레몬도’다. 레몬도는 일본 소주에 탄산과 레몬 등 과일 맛을 가미한 일본 탄산 소주 ‘츄하이’의 일종이다. 일본에선 2000년대 이후 다양한 맛을 가미한 츄하이에 대한 인기가 커졌고,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여성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츄하이가 일본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제품으로 떠 오르자 퀸시도 적극적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지난 8월엔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인 ‘코스타’를 39억파운드(약 5조7,700억원)에 인수하며 코카콜라의 커피 시장 진출도 선언했다. 코스타는 유럽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점으로 전 세계적으론 스타벅스에 이어 두 번째이다. 퀸시는 “따뜻한 음료는 코카콜라가 지금껏 글로벌 브랜드로 확보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탄탄한 플랫폼을 보유한 코스타는 코카콜라에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스타 인수는 코카콜라가 탄산음료업체 이미지를 벗고 종합음료업체로 탈바꿈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설탕과 탄산이 들어간 음료를 멀리하면서 관련 업체들은 다른 기업 수익원을 찾고 있다’며 “코카콜라의 커피 시장 진입은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엔 미국 외신들에서 퀸시가 마리화나(대마초) 성분이 들어간 음료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코카콜라가 캐나다 마리화나 업체 오로라 칸나비스와 손잡고 마리화나에서 추출한 성분인 ‘칸나비디올(CBD)’을 이용, 염증과 통증 등을 진정하는 효과가 있는 건강음료 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루과이, 캐나다 등 전 세계적인 마리화나 합법화 추세로 시장이 커지자 코로나 맥주를 만드는 콘스텔레이션, 조니워커ㆍ기네스 등을 생산하는 디아지오 같은 주류 제조업체와 일부 담배회사들이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코카콜라 역시 시장 선점에 나섰다고 분석한다. 다만 퀸시는 지난 10월 애널리스트들과 만난 자리에서 “CBD 주입 음료에 관심은 있다”면서도 “우리 회사가 현 단계에선 마리화나 산업에 진입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CEO가 지난 4월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카콜라의 실적 개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CNBC 방송 캡쳐 |
퀸시의 코카콜라 브랜드 살리기
코카콜라는 올해 초 자사가 판매한 용기를 모두 수거, 2030년까지 재활용 100%를 달성하겠다는 글로벌 환경비전 ‘쓰레기 없는 세상(World Without Waste)’을 발표했다. 손에 꼭 들어맞는 곡선으로 유명한 코카콜라 병은 20세기 최고의 상품 포장재이자 가장 아름다운 병 디자인으로 꼽힌다. 코카콜라는 1915년에 이 병을 처음으로 선보인 이후 약 100년간 3,000억병을 넘게 팔았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코카콜라 병과 페트병이 해양 생물을 죽인다고 비판한다. ‘쓰레기 없는 세상’은 코카콜라가 판매한 용기를 전부 수거해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2030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퀸시는 “소비자들은 지구를 염려하고 있고 기업들이 행동에 나서길 원한다”며 “코카콜라는 ‘쓰레기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통해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퀸시의 이러한 행보는 코카콜라가 그간 유럽 전역에서 빈용기 보증금 회수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입법화를 막기 위해 로비를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퀸시는 취임 이후 용기 재활용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소비자들에게 이를 적극 알리는 캠페인에 집중했다. 탄산음료가 미국 내 급증하는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며 실적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도 곤두박질치자, 환경문제 해결에 나서 코카콜라가 ‘양심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의도다. 영국 컨설팅회사 브랜드파이낸스는 2007년 코카콜라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1위로 선정했지만 지난해엔 27위로 추락했다.
퀸시는 코카콜라에서 ‘설탕’ 이미지를 지우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퀸시는 북미 지역에서 기존 ‘코크 제로(Coke Zero)’ 상품 대신 설탕 함유량을 대폭 낮춘 ‘코카콜라 제로 슈가(Coca-Cola Zero Sugar)’를 출시했다. 지난 2분기 기준 코카콜라 제로 슈가는 전체 탄산음료 매출을 1% 정도 끌어올렸다. 코카콜라는 앞으로도 설탕을 적게 사용하거나 기존 다이어트 음료를 이용한 마케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퀸시는 “지난 130년간 우리가 거둔 성공이 앞으로의 130년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2019년까지 추가 인력감축을 통해 획기적인 비용 절감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