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이름처럼 빨려든다
비행기 13번 탄 ‘남미 답사 12일’
아르헨티나 쪽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 전경. 목구멍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한 달에 2, 3명은 된다고 한다. |
‘가르간따 델 디아블로’(Garganta del Diablo), 악마의 목구멍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화물칸 짐짝처럼 비행기에 실려가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12시간 30분, 샤를드골 공항에서 3시간 30분을 기다렸다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11시간 45분, 국내선 환승수속 후 대기시간이 4시간 20분, 그리고 1시간 45분 걸려 이과수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서 출발해 33시간 50분이 걸려서야 이과수의 훈훈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니까 꼭 1년 전이었다. 지난해 3월16일 오후 2시 인천을 날아오르며 시작된 남미답사는 12일째인 같은 달 27일 낮 12시55분 다시 인천에 발을 디딜 때까지 비행기만 13번 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비행기에 신물이 날 정도로 타고 또 탔다.
이과수에서는 브라질리아, 리우데자네이루, 페루 리마를 경유해 볼리비아 라파스, 우유니, 산타크루즈, 상파울루,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하늘에만 있었던 시간은 65시간 40분이었고, 공항 이동 및 체류시간을 더하면 100시간이 넘었다. 기내 숙박만 3일이었다.
공항에서 긴 줄에 늘어서 짐을 부치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후 여권심사를 받는 절차만 생략해도 비행기를 탈만 했다. 보안절차 까다로운 동네에서는 신발과 허리띠까지 벗어야 했다. 빠르면 우리나라도 올해 안에 공항에서 신분증 없이도 지문과 손바닥 정맥 생체정보를 통해 신원확인하고 출국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하니 좀 편해질지 모르겠다.
여행객들이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을 보기 위해 철제다리를 걸어 입구를 통과하고 있다. 오전 8시쯤 출발하는 첫 코끼리열차를 타지 않으면 인파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
미래보고서 책을 읽다 보면 이미 중국에서는 상용화된 안면인식기술을 공항에 도입해서 탑승객의 신원과 항공편 정보가 공항 진입 때부터 자동체크 된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문도 필요 없이 그냥 어디든지 통과하면 되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테러리스트 여부도 자동 식별되니 굳이 보안절차 등을 거치는 번거로움은 사라지겠지만 인권침해 논란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 같다.
출국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황열병 예방접종이었다. 황열병은 모기가 옮기는 아르보 바이러스에 의한 출혈열인데, 피부가 누렇게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발병 환자의 15%가 독성 증세를 보이고, 그 중 절반이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대구의료원에서 황열병 주사를 맞았는데 3일 정도 약간의 두통과 초기 감기증세가 뒤따랐다.
그런데 이 예방접종은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입국을 막는 나라는 볼리비아였다. 사실 열대 우림 아마존의 전염병 위험도가 수백 배 큰데도 브라질은 무사통과였다. 멕시코 페루 쿠바 등 대다수 남미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이름도 생소한 라탐항공 비행기를 타고 이과수 공항에 도착했다. 옷은 상파울루 공항에서 반팔로 갈아 입었다. 이곳 공항에서 비행기는 모두 리모트 방식으로 청사 먼발치에 섰다. 브리지로 연결할 이유가 없는 공항이었다. 트랩에서 내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청사를 통과했다.
여행객들이 브라질 쪽 전망대에서 이과수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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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없이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직행했다. 티켓을 끊고 산책로 초입부터 걸었다. 나무가 우거진 틈 사이로 언뜻언뜻 폭포가 보였다. 폭포의 끝과 끝이 4.5㎞에 이르고 물줄기만 300개 가깝다고 하니 눈에 보인 폭포는 그 중 일부에 불과했다. 누가 폭포 줄기 숫자를 272개라고 했는데, 봐도 봐도 물줄기를 따로 세어볼 재간은 없었다.
전망대 쪽에서는 떨어지는 물줄기를 아주 가깝게 볼 수 있었다. 선 곳마다 사진포인트였다. 가장 웅장한 폭포줄기를 볼 수 있도록 인공 산책로가 나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다 보니 물보라가 마구 몸을 두들겼다.
병풍처럼 펼쳐진 폭포 줄기를 보니 비행 피로가 한꺼번에 달아났다. 시차적응도 필요 없었다. 그냥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팔을 활짝 펼쳐 물보라 세례를 받는 여행객도 많았다. 세계인들이 위대한 자연 앞에 한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여행객들이 이과수 폭포 전망다리에서 물보라를 맞으며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
폭포수를 제대로 맞아보지 않고서는 이과수를 갔다고 말하기 힘들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보트투어에 나섰다. 보트는 전속력으로 폭포를 향해 달렸다. 눈앞에 물줄기가 크게 다가오고 보트 속도가 줄었다고 느끼는 순간 물의 중력가속도를 온몸으로 버텨야 했다. 보트 가장 앞쪽에 앉은 터라 물도 먼저 맞았다. 보트는 물줄기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계속 반복했다.
온몸은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됐는데, 파란색 싸구려 우의를 왜 구명조끼 안에 걸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을 피하는데 도움이 전혀 안됐을 뿐만 아니라 물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정면승부가 최선이란 사실을 여행에서 배운다.
보트투어 한 직원이 보트가 이과수 폭포 아래로 들어가기 전 여행객 동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고프로를 점검하고 있다. |
이과수 폭포 보트투어에 나선 여행객들이 폭포 진입 직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
이과수의 속살은 그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날인 18일 오전 7시 버스는 브라질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달렸다. DMZ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국경검문소 풍경이 너무 평화로웠다. 버스를 탄 지 1시간 정도 만에 아르헨티나쪽 이과수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코끼리열차를 20분 탄 후 이과수 폭포 상류의 강 위 철제다리를 1.1㎞ 걸어갔더니 “쏴아”하는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과수에서 가장 높은 80m 지점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 악마의 목구멍이었다. 전망대에서 폭포까지는 2, 3m에 불과했다. 물안개로만 몸이 흠뻑 젖을 지경이었다.
브라질에서 병풍처럼 둘러보는 이과수와 아르헨티나 낙수지점의 이과수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려다보니 폭포에 빨려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매달 2, 3명의 여행자가 악마의 목구멍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악마의 목구멍인가.
기자가 아르헨티나 쪽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 앞 전망대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
1986년 영화 ‘미션’의 촬영지도 아르헨티나 쪽에 있었다. 노예상인 멘도사(로버트 드니로 분)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분) 신부를 따라 돌짐을 지고 절벽을 오르는 곳, 가브리엘의 오보에 ‘넬라 판타지아’가 폭포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침 내 휴대폰 컬러링과 벨소리도 ‘가브리엘의 오보에’다.
글ㆍ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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