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싱글남과 다섯 마리의 멍냥이를 위한 요새 같은 집
집 공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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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반원통 모양에 돌이 촘촘히 박힌 집(건축면적 171.37㎡ㆍ51평) 한 채가 올해 6월 경기 파주시의 야트막한 산기슭에 새로 들어섰다. 일반적인 집의 형태에서 한참 벗어난 이 집은 은퇴를 앞둔 박진성(59)씨와 그의 반려동물이 함께 사는 ‘시타델 카&페(Citadel Ca&Fe)’다. 이혼하고 혼자가 된 박씨는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기른다. 집 이름은 그가 노후를 준비하며 감명 깊게 읽은 영국 작가 A. J. 크로닌(1896~1981)의 소설 제목인 ‘성채(The Citadel)’에서 따왔다. 그의 가족, 개(canine)와 고양이(feline)의 약자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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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돌, 유리로 지어진 집
서울의 아파트에 살던 박씨가 회사 발령으로 파주에 온 것은 2016년. 키우던 개 두 마리와 함께 심학산 밑의 한 전원주택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구가 늘어났다. 반려동물 인터넷 카페에서 주인을 찾는 새끼 고양이의 딱한 사연에 덜컥 고양이를 맡게 됐다. 이듬해에는 산에서 고양이떼가 내려와 박씨의 집 마당에 진을 쳤다. 고양이들은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있었다. 박씨가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에 튼튼해진 고양이들은 대부분 어디론가 떠났고, 그 중 두 마리만 그의 곁에 남았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무역업에 종사해온 박씨는 내년 2월 은퇴한다. 노후를 준비하면서 그는 오랫동안 꿈꿔온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같은 곳에 살고 싶었다. 한때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요새 같은 집에 빠지기도 했다. 소박한 전원생활을 그린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숲 속의 생활’과 영국 작가 A. J. 크로닌의 ‘성채’ 등을 읽으며 그가 꿈꿨던 집은 구체화됐다.
“제가 꿈꿔온 집을 압축해보니 ‘무언가를 지켜주는 ‘성채’에 가까웠어요. 저는 사회에서 살짝 벗어난 삶을 살아온 변방의 존재예요. 저 자신도 지켜야 하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반려동물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지켜주는 그런 돌 성채를 짓고 싶었어요.” 그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주변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캠핑 트레일러를 닮은 집의 형상은 그가 직접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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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상상한 집을 설계로 현실화한 정이삭 건축가(에이코랩 건축사사무소 소장ㆍ동양대 교수)는 “처음 건축주를 만났을 때 캠핑 트레일러부터 지하묘지(카타콤)와 요새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가져왔고, 요구사항도 매우 특이했다”라며 “하지만 제 작업도 주류가 아닌 나머지 것을 다뤄왔듯이, 평범하지 않은 건축주의 집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둘이 의기투합해 지은 ‘돌 성채’는 집에 대한 통념을 산산이 깬다. 벽체에 지붕을 올리는 집의 공식부터 허물어졌다. 벽과 천장의 경계가 없다. 무덤이나 동굴처럼 천장이 벽과 이어져 둥글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꿈꿔온 아이디어를 듣고, 어쩌면 동굴처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집이 건축주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안팎의 경계도 지웠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집을 원했던 건축주는 집 내부를 외장재인 돌로 마감해달라고 요구했다. 나무나 대리석처럼 매끈한 바닥은 동물들이 잘 미끄러져 관절이 망가지고 다치기 쉽다. 벽을 긁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벽지는 불필요하다. 집은 오롯이 쇠와 돌, 유리로만 지어졌다. 집 바닥은 나무 대신 돌(트래버틴)이 깔렸다. 벽에는 종이 대신 붉은 고벽돌이 붙었다. 건축가는 “동물은 밖에서 사는 게 낫고, 그에 비해 인간은 내부의 공간이 필요하다”라며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려면 내부이면서도 외부인 공간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거친 벽과 바닥 덕분에 자연스럽게 동물들의 발톱이 닳아져서 억지로 다듬어줄 필요도 없고, 동물들이 뛰어다녀도 미끄러지거나 다칠 위험도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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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
반지하~2층인 집은 각 층의 경계가 느슨하다. 채광과 환기 등을 위해 지하지만 대지 위로 1m 가까이 올라왔다. 땅과 연결된 지하층 외부에는 심학산 출신의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한 작은 거처가 있다. 돌을 두텁게 쌓아 올렸고, 바닥에는 열선도 깔고 단열재도 넉넉하게 넣었다. 안쪽 창을 열면 언제든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박씨는 “산고양이 출신인 두 마리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생활하는 ‘실외파’”라며 “밤에 돌아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잔 뒤에 나가선 집 안으로는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1층에 맞춰 집의 외벽을 따라 두른 테라스에서는 동물들이 서로 쫓고 쫓으며 마음껏 뛰논다.
1, 2층의 수직 공간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둥근 벽체를 따라 높이 6m의 천장이 이어지고, 집 중앙의 둥글게 말린 나선형 계단이 층을 나눈다. 2층에는 아예 벽이 따로 없다. 대신 난간만 설치했다. 반원통의 집 안에 작은 박스 두 개를 넣은 듯하다. 두 개의 바닥으로 나눠진 2층은 폭이 좁은 다리 하나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된다. 건축가는 “둥근 벽체와 높은 천장고 등은 인간에 맞춰진 것이 아니다”라며 “이 집은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한 원시적인 형태와 현대적 주거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방과 거실, 박씨의 방이 일렬로 배치된 1층은 화장실과 박씨의 방을 제외하곤 문이 따로 없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가구와 소품도 최소화했다. 대신 고양이 배변상자, 화장실 살균조명 등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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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위한 집이지만 역설적으로 동물들은 집 밖을 선호한다. “이 집에 오니 실내에만 지냈던 동물(실내파)들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해요. 집 주변을 탐색하고, 집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어요. 아무리 돌 바닥을 깔아놔도 자연이 주는 것만 하겠어요. 실외파의 완벽한 승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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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기에 불편하진 없을까. “이 집이 무덤 같잖아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나요. 남들은 집을 보고 ‘특이하다’, ‘사람 살집이 아니다’ 그러지만 저에게 이 집은 소우주예요.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하고, 나무와 꽃을 가꾸고, 마당에 있는 화덕에서 음식을 해먹어요. 모든 게 자연스럽고 편안해요. 유명한 철학가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잖아요. 동물과 자연이 함께하는 이 집이 어쩌면 진정한 인간의 집이 아닐까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