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형! 도대체 세상이 왜 이래?"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 칭한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기원전 400년 경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형’이라 무람없이 부르는 가수의 배짱에 대한 감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답을 동시대 안에서 찾기 어려울 때, 앞선 시대의 현인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대처 방법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열린책들 제공 |
그런 점에서, 지난 2016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는 언제든 달려가 지혜를 구할 수 있는 현인이 되었다. 최근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은 도무지 이 미친 세상을 이해할 길이 없어 보일 때 찾아가 도움을 구하기 좋은 책이다.
에코는 잡지 ‘레스프레소’에 ‘미네르바의 성냥갑’이라는 제목으로 수십 년간 칼럼을 써왔다. 앞서 출간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가재걸음' 등이 이 칼럼을 묶어 책으로 낸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에코가 2000년부터 타계 전까지 이 잡지에 기고했던 55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였던 에코가 후손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책의 이탈리아 원제는 ‘파페 사탄 알레페: 유동 사회의 연대기’다. ‘파페 사탄 알레페는 단테의 ‘신곡’ 지오편 제7곡 첫머리에 나오는 말로, 세상의 온갖 나쁜 짓을 이르는 표현으로 쓰인다. 책은 이같은 황당하고 뻔뻔하고 피곤하고 엉망진창인, 분야를 가리지 않는 세상의 온갖 나쁜 짓에 대한 에코의 촌철살인 일침들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까지 불린 이탈리아 출신 학자이자 소설가다. AP 연합뉴스 |
에코는 논란과 스캔들로 유명했던 이탈리아의 전직 총리 베를루스코니가 꾸준히 인기를 누렸던 데는 그를 비판한다며 1면에 줄기차게 베를루스코니를 소환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한다. 침몰한 배의 구조작전을 진두 지휘한 선장을 둘러싼 과도한 영웅주의에서는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나라의 단면을 읽어낸다. 누군가 사고를 당해도 달려나가 도와주기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로 올리는 세태에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는 씁쓸한 현실을 발견한다.
샤를리 엡도 사건, 파리 테러, 히잡 착용, 유명인사들의 트위터 정치 등 국제사회의 최신 현안을 다루는 동시에, 사랑과 증오, 시간과 역사, 젊음과 늙음, 죽음 같은 인류사의 오랜 주제에 대해서도 웅숭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또한 파시즘과 음모론에 반대하며,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을 경계한다.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며, 인터넷보다는 책을 더 신뢰한다.
그리 길지 않는 글 한 편 안에는 복잡한 세상 구석구석 가 닿는 냉철한 분석과 따뜻한 시선이 한데 녹아들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종교를 모두 아우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옆집 할아버지처럼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게 풀어내 누구라도 장벽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다. 특히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사건이 가져온 경악과 공포에 대해 쓴 ‘우리의 파리’ 글에서는 세상의 무수한 지식을 통달한 학자지만 냉소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인생과 사회, 사랑과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비록 상상 속 허구의 세계이지만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그 파리에서 배웠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날의 테러는 우리 모두의 집, 그러니까 주소지 등록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던 그 집에 대한 테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기억에서 새삼 희망을 긷는다. 여전히 ‘센강은 흐르고, 또 흐르고' 있으니.”
물론 책이 모든 문제에 대한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에코 스스로도 “이런 경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나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을 보며 한번쯤 이렇게 외쳐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질지도 모른다. “에코 형! 세상이 왜 이래!”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