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이런 짤을 왜 자꾸 보내실까
좋은 의미인 줄 알지만 무분별한 짤폭탄에
답장할 땐 ^^, 속마음은 ㅜㅜ
주로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와 문구를 합성한 짤. 좋은 의미를 담은 것은 알지만 무분별한 짤폭탄은 받는 이를 난감하게 만든다. 기사에 소개된 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상에서 떠도는 이미지를 캡처한 것이다. |
‘좋은 아침’을 맞이 하라는 의미의 짤. 복붙(Ctrl+c Ctrl+v)된 듯한 상투적 표현에 어떤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
SNS 상에는 출처불명의 민망한 짤도 적지 않다. |
‘짤’은 사진을 뜻하는 인터넷 속어다. 이 기사에서는 사진이나 영상에 다양한 문구를 합성해 SNS 등을 통해 공유하는 이미지를 모두 ‘짤’로 표기했다.
“시아버지께서 SNS 가족 채팅방에 짤을 자주 공유하시는데, 가끔 정체 모를 여성 사진으로 만든 안부 인사나 가부장적 가치관이 담긴 글귀가 올라올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좋은 취지인 건 알지만 오해를 살 만한 메시지를 문제의식 없이 공유하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 결혼 2년 차 최모(32)씨
“엄마한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받는다. 사실 이런 짤을 받으면 그 안에 있는 글을 다 읽어야 하나 고민스럽다.” – 김해천(24)씨
“작은 이모부께서 보내는 짤을 처음 봤을 때 ‘이런 걸 도대체 어디섴ㅋㅋㅋ’ 싶기도 하고 ‘나보다 휴대폰 더 잘 쓰시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엔 그냥 약간 무시한다.” – 오승진(25)씨
재미도 없고 공감도 쉽지 않은 내용의 짤을 어른들은 왜 자꾸 보내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버님의 짤 메시지는 모바일 시대를 사는 어르신 세대의 새로운 소통 문화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60대 10명 중 8명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고 50대의 90.7%가 주 5일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스마트폰 사용 빈도가 높아진 어르신들이 모바일 방식으로 그들 세대의 문화나 가치관을 공유하며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충북 음성에 사는 임정용(64)씨는 지인들로부터 받은 좋은 글귀나 짤을 매일 아침 SNS를 통해 가족들과 공유한다. 임씨는 “아침에 좋은 글을 받으면 힘이 난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받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젊은 세대에게는 온전히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서로 간의 경험이나 문화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모(22)씨는 얼마 전 집안 어른으로부터 ‘따뜻한 커피 한잔 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커피 사진을 SNS로 받았다. 이씨는 “커피 기프티콘도 아니고 그냥 짤뿐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힘도 빠졌다”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과 유행 지난 디자인, 낡고 상투적인 문구도 ‘읽씹(읽고 나서 무시함)’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요일 별 인사말 짤 모음. |
맞춤법이 틀린 짤 모음. |
연예인 잡지 화보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짤. |
그렇다면 이 같은 짤은 애초에 누가 만들고 유통하는 걸까. 다방면으로 추적해 본 결과 무수한 짤 공유 경로의 상위에 지방자치단체가 고령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정보화 교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PC 및 모바일 교육을 통해 정보 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인데, 사진 또는 영상에 문구를 넣거나 ‘gif’ 방식을 활용한 ‘움짤(움직이는 사진)’ 제작 실습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참가자들이 수업시간에 만든 짤은 본인 또는 가족, 지인에 의해 공유되면서 SNS 상으로 순식간에 퍼지고 있다.
교육 차원에서 만든 경우 외에도 무수히 많은 출처 불명의 짤이 돌고 돌다 보니 부작용도 우려된다. 배경으로 쓴 사진의 원 저작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흔하고, 노출이 심한 여성 사진이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글귀 등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짤이 가족 채팅방에 공유되면서 분란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초상권 침해 가능성도 있다. 서울 마포구청에서 정보화 교육을 맡고 있는 강사 정경은(47) 씨는 “수업 시간에 만든 작품들이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만큼 이미지나 동영상을 제작할 때 저작권,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어르신 중에는 모바일 메신저의 전파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성희롱적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보내 대화 상대로부터 차단되거나 계정을 정지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이를 사전에 예방할 장치를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커피 등 음료를 이미지로 사용한 짤 모음. |
음료 짤의 경우 키프티콘에 익숙한 세대는 오히려 어색해 하기도 한다. |
일단 받으면 다른 이에게도 보내야 하는 짤. 과거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가 연상된다. |
조잡한 구성에 맞춤법까지 틀린 경우도 많지만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짤에 담긴 의미만은 따뜻하다. 계절, 요일, 시간에 맞춰 안부를 묻거나 건강을 기원하거나 노년 생활을 서로 위로하기도 한다. 강무성(77)씨는 “아들과 며느리가 ‘우리 아버지가 만든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여기서 배운 것을 잘 활용하면 자녀들과 소통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이모티콘이나 짧은 영상으로 소통하는 것처럼 엽서나 달력 문화에 익숙한 어르신 세대가 그 방식을 새로운 기기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대가 변하고 매체가 바뀌어도 향유해 온 문화를 떨치기 힘든 만큼 세대 간 소통 문화에 차이가 있음을 서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