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야구 휘젓는 환갑의 '여성 포청천'
신체 연령 43세의 10년차 베테랑 김수현 심판
야구하는 아들 뒷바라지하다 직접 뛰어든 그라운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수현 주심. 군산=박상은 기자 |
지난 10일 군산시장기 전국 우수중학교 초청 야구대회가 한창인 군산 월명야구장. 전국의 중학교 야구 감독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10년차 베테랑 김수현(60) 주심이 그 주인공이었다.
김 심판이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다. 아들이 선수로 뛴 초중고 9년 동안 야구부 총무를 도맡았다.
그러다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든 건 아들의 대학 진학 후인 지난 2013년이었다. 명지대에서 열린 야구 심판 학교에 지원했고, 500명의 지원자 중 서류전형과 10주간의 테스트를 거쳐 최종 합격자 90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 나이 51세였다. 지금 아들은 야구를 그만뒀지만 그는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백봉기 대구중 감독은 “처음엔 172cm의 큰 키에 여성 주심이어서 시선을 끌었는데, 경기가 진행될수록 정말 심판을 잘 본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감탄했다”면서 “정확하고 명쾌한 판단, 흔들리지 않는 스트라이크 존, 우렁찬 목소리, 명확한 제스처, 순발력까지 모두 갖췄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김수현(오른쪽) 주심과 대구중 야구부 백봉기 감독. 군산=박상은 기자 |
김 심판은 “판정에 관해서는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벽을 좇는 이상주의자가 심판”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실수는 나오지만 심판은 열심히만 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잊지 못할 경기가 있다. 2018년 소년체전 전북 예선인 전라중과 군산남중의 경기였다. 3회초 군산남중의 공격 1사 1·2루에서 타자가 친 내야땅볼을 전라중 2루수가 잡아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수에 송구했다. 병살 플레이로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었는데, 그는 2루주자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포스아웃 상황을 태그아웃 상황으로 착각을 한 어이없는 오심이었다. 스스로도 판정 직후 아차 싶었지만 번복이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김 심판은 “그 판정이 다행히 경기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최악의 경우는 면했지만, 만약 승부가 뒤바뀌었다면 전 지금 여기 없었을 것”이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오심 하나로 선수들이 피땀 흘려 준비한 1년이란 시간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귀중한 경험이었다”며 “그날 이후로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2시간 30분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심이 발생하면 상대 감독에게 다가가 '죄송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더 집중해서 잘 보겠습니다'라며 바로 인정하고 더 열심히 본다. 심플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이라고 설명했다.
호쾌한 삼진 아웃 콜을 하고 있는 김수현 주심. 군산=박상은 기자 |
더 많은 여성들이 야구장 '유리 천장'을 깨줬으면 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 심판은 "여성들에게도 야구는 보고 즐기는 스포츠에서 직접 경험하며 느끼는 스포츠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소프트볼, 여자야구에서도 여성이 활약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과감하게 참여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이제 '여성 심판'이 아니라 '김수현 심판'이다. "여자 심판이라서 주목받기보다는 경기를 잘 보는 심판으로 현장 감독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후배 여자 심판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