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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국일보

세계를 평정한 K매운맛… 맵고수 배 속은 평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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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 캐릭터 호치. 삼양식품 제공

최근 덴마크에서 한국 라면 ‘불닭볶음면’이 ‘매워도 너무 맵다’는 이유로 리콜 조치됐다가 두 달 만에 규제가 풀려 식탁으로 귀환한 ‘사건 아닌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조사 삼양식품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실제 조리 후 섭취하게 되는 캡사이신 함량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덴마크 식품당국에 제출하는 등 적극 대응한 덕분이죠.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불닭볶음면 판매 재개를 기념하는 선상 파티까지 열렸다고 해요.


불닭볶음면 리콜 해프닝은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집중 보도하면서 도리어 관심이 폭증해 리콜 조치됐던 6월 한 달간 구글에서 불닭볶음면 검색량이 역대 최고를 찍었거든요. 불닭볶음면을 필두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매운맛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죠.


김치볶음밥에도 김치를 곁들이고 고추도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맵고수(매운맛 고수)의 나라답게 한국에서도 ‘매운맛 열풍’은 식을 줄 모릅니다. 맵부심(매운맛 자부심)을 자극하는 여러 식품들이 ‘불맛’ ‘핵불맛’ ‘익스트림’ ‘크레이지’ 같은 화끈한 수식어를 붙이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어요. 일례로 편의점 GS25에서는 올해 2~4월 석 달간 ‘매운’ ‘핫’ ‘스파이시’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9% 늘었고, bhc치킨에서는 1~5월 ‘핫 후라이드’라는 매운맛 메뉴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무려 81.7% 증가했다고 하네요.


특히 K매운맛의 대표주자 라면은 ‘매운맛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한때 사나이깨나 울렸던 신라면보다 2배 더 매운 신라면 더레드, 열라면에 알싸한 마늘 맛을 더한 마열라면, 미치도록 맵다는 뜻을 품은 열광 라볶이, 불닭볶음면의 후계자 맵탱 라면 등 최근 몇 년 사이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져 나와 누가 더 매운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요.


과자계도 매운맛에 점령됐어요. 포카칩 맥스 레드스파이시맛, 꼬북칩 매콤한 맛, 포테토칩 먹태고추장마요맛 등 이름부터 과자답지 않게 칼칼하죠. 심지어 국민 과자 꼬깔콘도 ‘매드핫 고추장 직화구이맛’으로 새로 출시됐는데요. 맵기 정도를 보여주는 스코빌 지수(SHU·캡사이신 농도를 계량화한 수치)가 청양고추(약 1만SHU)에 맞먹는 9,300SHU로, 불닭볶음면(4,400SHU)을 훌쩍 뛰어넘는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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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 리콜 철회를 기념해 8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선상파티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삼양라운드스퀘어 제공

맵고수들은 혓바닥이 불타오르고 눈물 콧물 줄줄 흘려야 쾌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오죽하면 맵파민(매운맛+도파민), 맵도르핀(매운맛+엔도르핀)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요. 하지만 몇 달 전 미국에서 10대 소년이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매운 과자 먹기 챌린지’에 도전했다가 복통을 호소하며 숨졌다는 외신 보도를 보면 매운맛 열풍이 조금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거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을 과하게 섭취하면 위에 염증을 유발해 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고요.


그래서 매운맛이 건강에 해롭지는 않은지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맵고수들이 기뻐할 만한 명쾌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매운맛은 음식의 여러 가지 맛 중에서 건강에 좋은 맛에 속한다”고요. 예컨대 짠 음식은 고혈압, 비만, 골다공증 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가 하루 나트륨 섭취량을 2,000㎎ 이하로 제한하고 각국 정부도 저염식 캠페인을 하지만, 매운맛은 그에 비해 건강에 나쁘다는 근거가 별로 없다는 거죠. ‘매운맛 챌린지’처럼 극강의 매운맛을 비정상적으로 섭취하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건강에 긍정적 효과도 많다고 합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이에요. 뇌는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을 통증으로 인식해 진통 효과가 있는 엔도르핀을 분비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죠. 우리가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 음식이 당기는 건 ‘과학’이라는 얘기예요. 또 캡사이신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신진대사율을 높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요. 혈액 순환을 촉진해 심혈관 질환 위험도 낮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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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물론 매운 음식을 먹은 뒤 배탈, 설사, 구토 같은 증상으로 고생했다는 후일담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매운맛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멀리할 겁니다. 다만 음식의 매운맛을 표준화한 등급이나 식품 속 캡사이신 함유량 기준치 등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매운맛 관련 규정을 둔 나라는 없더라고요.


강재헌 교수는 “매운맛 섭취 허용치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에서 매운맛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작용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한 테이블에서 똑같은 매운 음식을 먹고도 누구는 쾌감을 느끼고 누구는 정반대로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표준화된 기준이 있다한들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란 얘기죠. 식약처도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식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것을 규제하진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괜한 건강 걱정으로 매운맛을 두려워하진 말자. 하지만 매운맛이 몸에 맞지 않다면 자제하자.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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