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하차 이후 또 오류 논란 tvN '벌거벗은 세계사'
5주 만에 방송 재개 '벌거벗은 세계사'
장항석 의대 교수가 중세유럽 '페스트' 강연
박흥식 교수 "사료 해석할 줄 모르는 의사가..."
제작진 "페스트, 의학사적 관점으로 구성"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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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tvN '벌거벗은 세계사'가 또다시 구설에 휘말렸다. 역사 강사 설민석 하차 이후 5주 만에 방송을 재개했지만 역사학자 등 전문가가 아닌 의대 교수가 출연해 역사 강연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의학사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라며 의대 교수를 강연자로 내세운 것에 해명했다.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벌거벗은 세계사'에 대해 "내용도 구성도 꽝이었다"고 문제 제기하고 나섰다. 박 교수는 흑사병 관련 전문가로 '흑사병과 중세 말기 유럽의 인구문제' 등 논문을 집필했다.
그는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흑사병을 다룬다기에 어제 부분적으로 보고, 오늘 아침 재방을 다시 봤다"며 "흑사병을 10년 넘게 공부하였고, 중세 말기 유럽을 전공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중세 사회에 대한 이해도 거의 없고 당시 사료도 해석할 줄 모르는 한 의사가 청취자들에게 왜곡된 인식만 키웠다"며 "흑사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목표였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카파(흑해 연안 항구도시, 현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야) 공성전에 대한 자료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고, 신뢰할 수도 없는데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해석해 나쁜 것은 다 아시아에서 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켰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프로그램 제작진도 비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하려 들면 끝도 없을 듯 하고 그럴 가치도 없다"면서 "설민석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문제인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힘들게 자문해 주었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는데, 그럴려면 이름은 왜 넣겠다고 했는지"라며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 엉터리로 역사적 주제를 전달하려면 프로그램을 당장 폐지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벌거벗은 세계사'는 중세유럽의 '페스트(흑사병)'를 다루면서 장항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출연해 강연했다. 그는 흑사병을 다루면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 등 당시 전반적인 유럽 역사를 언급했다. 이어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몽골에 의해 이탈리아에 전파됐다고 전했다.
'벌거벗은 세계자' 제작진은 논란이 일자 1일 이에 대해 해명했다. 제작진은 "페스트와 관련된 내용을 의학사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방송 전 대본과 가편본, 그리고 자막이 들어간 마스터본을 관련 분야의 학자분들께 자문을 받고 검증 절차를 마친 후 방송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청률은 5.1%(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했다. 1~3회까지는 설민석이 진행했는데 시청률 5%대를 유지했다.
'설민석 논란' 어땠길래, 또?<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설민석은 지난해 12월 19일 방송에서 이집트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 왜곡'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이집트고고학 전문가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이 설민석의 강의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오류를 지적했다.
곽 소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을 보고 있다"며 "사실 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며, 지도도 다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정말 황당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곽 소장은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풍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해줘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이어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설민석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으며, 제가 자문한 내용은 잘 반영이 안 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지 마시라"고 피력했다.
곽 소장은 앞서 박흥식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진에 자문까지 했던 것도 언급했다. 그는 "제 이름을 크레딧에 올려줄 수 없다고 해서 황당하고 어이없었다"면서 "항의 끝에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곽 소장의 지적으로 인해 역사 왜곡 비난이 일면서 설민석은 하차했고, '벌거벗은 세계사'는 5주 동안 휴방했다가 장항석 의대 교수를 앞세워 지난주 방송을 재개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