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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ㆍ애환 담긴 건축물…5.17㎞ 길목마다 대전 100년 역사 숨쉰다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


대전역 200m 앞 옛 산업은행, 1912년 세워진 목척교 지나면

대전부청사ㆍ옛 충남도청사, 일본 여학생 교육 강당도 그대로

민간 소유ㆍ상가활용 탓 개방성 부족, 스토리 전할 해설사 없어 아쉬움도

한국일보

1932년 건립된 옛 충남도청사는 일제 식민통치시기 관공서 건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2012년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까지 80년동안 대전 원도심의 핵심기관이었다. 대전시 제공

“대전에도 근현대사와 관련된 건물들이 꽤 있네.”


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충남도청사를 둘러보던 20대 커플이 전시 내용을 살펴보며 나눈 이야기다.


한낱 시골 리(里)에 불과하던 대전이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05년 경부선 철도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당시만 해도 대전역 주변은 갈대가 무성한 황량한 ‘한촌(寒村)’으로 허허벌판이었고, 가구도 수 십 호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부선 철도의 개통은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를 한반도의 교통중심 도시로, 인구 150만의 대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던 도시는 1932년 충남 공주에 있던 도청이 옮겨오면서 또 한번 도약했다. 대전역에서 충남도청사까지 설치된 중앙로 1.1㎞ 구간에 각 기관 청사들이 모여들면서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그러나 1990년대 둔산 신시가지 건설로 관공서와 상권이 대거 이동하고, 2012년에는 급기야 충남도청까지 내포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옛 영화를 간직한 ‘원도심’ 지역으로 남아 있다.


국내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원도심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식민지와 한국전, 그리고 이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일군 한 세기 동안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가 하면, 당시의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생생하고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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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지난달 16일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전국 지방세담당 공무원들이 원도심 탐방을 하면서 옛 충남도청사를 찾아 대전 근현대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전시 제공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탐방로는 근대문화 건축물을 테마로 대전역을 출발해 9개의 근ㆍ현대 건축물을 걸어서 돌아보며 지역문화와 역사를 탐구할 수 있도록 했다. 길이는 5.17㎞로 2018년 7월 공사에 들어가 지난해 4월 완공됐다.


대전근대문화탐방은 여전히 대전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대전역에서 시작한다. 대전역 서광장 지하도를 지나 도청을 향하는 보도에 올라서면 바닥에 붉은 벽돌의 보도블록이 시작된다. 혼잡한 보도에서 인파를 뚫고 200m 가량 걷다 보면 횡단보도 앞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안내선을 만난다. 그 맞은편 건물이 근대문화유산 탐방로의 첫 유물인 옛 산업은행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 식민지 경제수탈 창구역할을 하던 옛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에서 출발했다. 1918년 영업을 시작해 1954년부터는 한국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사용됐다. 1997년 이후에는 현재의 안경점이 들어섰다. 1937년 개축 당시 모습을 잘 보전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 금융건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2002년 등록문화재 19호로 지정됐다.


안내선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아치모양의 교각이 다리를 덥고 있는 목척교가 나타난다. 1912년 대전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대전천에 처음 세워진 다리다. 길이 70m의 나무다리로 하중을 견디기 위해 촘촘하게 세운 교각의 모습이 자(尺)와 같아서 목척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29년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고 한국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71년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개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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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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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척교에서 중앙로 네거리로 올라오면 대전부(府)청사가 있다. 대전이 1935년 부로 승격되면서 1936년부터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로, 해방 후 공공기관과 상공회의소 등이 이용하다 민간에 매각됐다. 중앙로 네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도로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건물이 눈에 띈다. 6차선 도로가 이 건물을 피해 왼쪽으로 돌아갈 정도로 권세를 가졌던 옛 충남도청사다. 1층 주출입구 전면에 설치된 포치, 지붕 처마에 사용된 벽돌 돌림띠, 건물 전면의 스크래치 타일 마감, 원과 사각형을 사용한 기하학적 장식문양 등 일제 식민통치시기 관공서 건축물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층이던 건물을 1960년 3층으로 증축했고, 충남도청사 이전 후 대전 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층 도지사 집무실과 비서실, 접견실, 내실 등을 재현했다. 2018년말 소유권자인 충남도가 집기들을 충남역사박물관으로 옮겨가며 폐쇄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영화 ‘변호인’ 촬영 장소로 이용됐다. 이곳에서 해설사로 봉사중인 김긍원(74)씨는 “겨울철 비수기인데다 신종코로나 등으로 지금은 뜸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며 “당시 건축은 물론 대전의 근대역사를 들여다 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말했다.


도청에서 1㎞정도 떨어진 충남도지사 공관과 관사촌은 도지사와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들이 사용하던 주택으로, 1930년대와 40년대를 전후해 조성됐다. 관사 건물들이 하나의 촌락을 형성하고 있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도지사 공관은 한국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거처로 이용됐고, 유엔군 참전 요청과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불평등조약이 조인된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동쪽 가족공간과 서쪽 접객공간으로 나뉘고 온돌과 일본식 다다미 방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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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충남도지사 공관

관사는 1-10호까지 9동(4호 제외)이 있다. 관사촌은 충남도청 이전 후 ‘테미오래’라는 이름으로 전시실과 근대건축전시관, 작가 레지던스, 청년 공유공간 등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사촌에서 대전고 오거리를 지나 중교로를 따라 대전역쪽으로 내려오면 녹색지붕을 얹은 건물이 눈에 띈다. 대전여중 강당이다. 일제가 일본인 여학생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1921년 개교한 대전공립고등여학교의 강당으로 1937년 세워졌다. 아르누보형의 부드러운 곡선형태 지붕과 넓은 창, 처마선을 받쳐주는 모서리 벽돌 내어쌓기 방식이 특징으로,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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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중 강당

조금 더 내려오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대흥동 성당건물이 보인다. 두 손을 하늘로 향해 모으고 있는 형상으로, 1962년 건립 당시 대전에서 가장 높은 종탑건물로 유명했다. 2014년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맞은편에 있는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1958년 농산물검사소 대전지소로 세워졌다. 대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건축사 사무소의 작품이다. 기능주의 건축의 단순한 평면과 외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측 외벽에 돌출시킨 격자 모양의 창틀과 서측 창문에 설치한 수직 블라인드 등이 눈길을 끈다. 현재는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실험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전역 앞 도로 왼쪽에 위치한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은 현재 신한은행 대전역 금융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1912년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상업은행인 한성은행 대전지점으로 문을 열었으며 1957년 현재의 건물이 세워졌다. 전형적인 은행건축의 외형에서 탈피하여 최대한 장식을 배제한 단순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 탐방에서 아쉬운 점은 건물 개방성의 부족이다. 일부 건물들은 민간인 소유이고 현재도 상가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건축 당시의 내부 모습을 살펴볼 수 없다. 또 문화재 탐방은 귀로 듣는 재미도 있는데 건물의 역사나 관련 스토리를 소개해줄 해설사가 충남도청사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


안여종 대전체험여행협동조합 대표는 “탐방구간이 길지만 내용을 설명해주는 장치나 해설사가 없어 관람객들이 지루해 할 수 있다”며 “탐방로를 세분화하고 거기에 맞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허택회 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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