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부터 극비까지... 김정은의 회의실 부심
북한 노동당 청사 내 소규모 회의실. 북한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18일 당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회의와 비공개 회의를 열고, '전쟁 억제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19일 보도 했다. 조선중앙TV 캡쳐=뉴시스 |
북한 노동당 청사 내 중간크기의 회의실 . 지난해 9월 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일 제13호 태풍 '링링' 북상에 대비해 비상확대회의를 지도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북한 노동당 청사 내 대규모 회의실. 지난해 12월 29일 북한 노동당 청사에서 열린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전경. 김정은 시대 들어 당 전원회의가 이틀 이상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참석자도 역대 최다 규모로 추정되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북한이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군 수뇌부의 비공개 회의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전쟁 억제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회의 장면에서 단연 관심을 끈 것은 최초로 공개된 회의실 내부 시설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모니터 여러 대가 회의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모습은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실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공개 회의가 NSC와 비슷한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진 만큼 김 위원장이 유사시 긴급하게 상황 보고를 받거나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장소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 같은 극비 회의장을 공개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벽처럼 둘러 설치된 회의장에서 군 수뇌부가 김 위원장의 지시를 받는 모습을 통해 외세의 무력 시위 등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한 것은 아닐까.
북한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18일 당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회의와 비공개 회의를 열고, '전쟁 억제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19일 보도 했다. 평양=조서중앙TV 뉴시스 |
2017년 7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28일 밤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기습 발사한 것과 관련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사실, 북한은 이번 비공개 회의 장면 외에도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 있는 다양한 회의실 모습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 왔다. 일반적으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나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확대회의 등 김 위원장이 주재하는 공식 회의는 대게 평양의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린다. 북한이 최근 몇년간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한 주요 회의 장면을 보면 거의 매번 다른 방에서 회의를 열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공개된 방까지 더하면 김 위원장이 평상시 사용하는 방은 최소 20여 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수백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강당 형태의 대규모 회의실부터 좌석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강의실 모양의 회의실, 참석자들이 빙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회의실이나 벽에 대리석을 붙인 회의실 등 다양하다. 지난해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그의 집무실로 알려진 고급 서재 컨셉트의 방에서도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열렸다.
2019년 1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예전과 달리 올해는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김정은 북한 국무원장 집무실에서 열린 회의 2019년 12월 22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열고 국방력 강화하기 위한 문제를 논의했다고 22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회의를 주재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
사실, 우리 정부 청사나 국회의사당을 떠올리면 방이 많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대다수 사무실과 회의실의 색깔이나 내장재를 동일한 컨셉트로 마감한 것에 비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김 위원장이 회의실로 쓰는 방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각 회의실마다 벽이나 천정의 마감재와 모양이 다르고, 당 깃발이나 엠블럼, 김씨 삼부자의 그림 등 상징물의 배치도 회의실마다 변화가 있다.
더구나 이처럼 각각 다른 분위기의 방 수십 개를 최고지도자가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청와대 본관과 여민관에서 국무회의 또는 수석ㆍ보좌관회의를 여는 회의실이 정해져 있다. 이처럼 고급스럽게 꾸민 다양한 회의실을 보여줌으로써 김 위원장의 지도력과 권력 장악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 수준에 비해 과도한 사치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지난 6월 7일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자립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 화학공업 발전, 평양시민 생활보장, 현행 당규약 개정, 조직(인사)문제가 토의됐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지난 5월 24일 김 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지도했다고 밝혔다. 이날 김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긴 막대기로 직접 화면 속 내용을 간부들에게 설명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
김 위원장은 회의실 선택을 통해 현명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과시하기도 한다. 지난 6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차 13차 정치국 회의는 원형 회의실에서 참석자 30여명이 원탁에 둘러 앉았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받아 적는 방식을 탈피하고, 수평적 소통을 시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반면, 회의실 분위기를 바꿈으로써 강력한 지도력과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건강 위중설’이 불거진 지난 5월 잠행 3주 만에 등장한 김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높은 무대가 있는 회의실에서 열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무대 위에 꼿꼿하게 선 채로 긴 지시봉을 들고 북한군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지시와 설명을 이어갔다.
2019년 12월 29일 북한이 지난 28일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어 '국가 건설'과 '국방 건설'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토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참석자들. 앞쪽에 보이는 흰색건물이 회의실과 김 위워장의 집무실에 있는 노동당청사.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