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교활하다고? 쥐를 위한 변명
고은경의 반려배려
쥐는 간지럼을 타는가 하면 사람과 장난치는 걸 즐길 정도로 사람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제공 |
2020년 올해는 경자년(庚子年), 흰쥐의 해다. 십이지(十二支)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쥐는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과 다산 능력으로 인해 부지런함과 영민함, 풍요를 상징한다. 특히 흰쥐는 쥐 가운데서도 우두머리로 매우 지혜롭다고 한다. 십이지를 사용하는 일본에서도 쥐의 이미지는 비슷해서 생명의 시작, 자손의 번영을 뜻한다. 쥐의 해를 맞아 언론에서 쥐띠 유명인을 소개하거나 유통가에서 쥐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쥐는 설화나 만화, 영화 등 역사와 문화 속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고대 역사서에서 쥐는 예지력을 지닌 동물로 나타나며, 설화 속에서는 인간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도 대체로 십이지 속 긍정적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 주자는 아이들뿐 아니라 키덜트(kids+adultᆞ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까지 사로잡는 캐릭터 미키마우스다. 만화 ‘톰과 제리’,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똑똑하고 귀여운 존재로 등장한다.
반면 현실에서 쥐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사람들에게는 기피, 나아가 박멸 대상이거나 인간을 위한 실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시행됐던 쥐잡기 운동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 한일 정부와 실험 동물 관련 협회 자료 등을 취합해 보면 두 나라에서 연간 실험에 동원되는 쥐는 적어도 각각 300만마리 이상으로 파악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실험 동물 약 1억마리 가운데 85%가 설치류라는 국제동물보호단체의 통계도 있다.
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태도는 일관성 없고 이중적이다. 하지만 쥐의 입장에서 더 억울한 건 아마 ‘간교하고 더럽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소비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활하고 약삭빠른 이들을 낮춰 부를 때 쥐를 소환한다.
물론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건 아니다. 쥐는 인간의 곡식을 먹어 치우거나 농기계 전선을 갉아 먹어 피해를 끼치곤 했다. 또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옮기는 흑사병으로 인해 14세기 유럽 인구 3분의 1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쥐는 유해 동물로 여겨져 왔다.
시궁쥐로 알려진 래트는 마우스(곰쥐)와 함께 실험에 가장 많이 활용되지만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있다. 크리스티나 도드킨 제공 |
그렇다고 해도 쥐에 대한 오해가 큰 것은 사실이다. 쥐는 교활하다기 보다 오히려 동정심, 이타심을 느끼고 똑똑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에서 설치류 구조 입양 단체의 홍보와 모금을 돕는 크리스티나 도드킨 동물옹호자인터내셔널(ADI) 연구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특히 설치류 가운데서도 크기가 크고 얼굴이 짧은 래트(rat)는 사회적 동물로 다른 동료 쥐에 대한 동정심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가을 국내에서 실험에 동원됐던 쥐 20마리를 입양 보낸 동물책 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도 처음에는 쥐가 두려웠지만 같이 지내면서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또 해외 다수 연구 결과에서 쥐는 숨바꼭질을 즐기며 상황을 판단할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쥐는 인간과 유전자가 99% 유사하다는 이유로 실험에 희생되고 있지만 관심과 동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감사 인사는 못 받더라도 최소한 교활하고 더럽다는 오해라도 풀리면 쥐 입장에선 덜 억울할지도 모른다.
도쿄=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